이어령의 마지막 수업_김지수
죽음 앞에 서 있는 노교수는 참으로 당당해 보였다.
힘겨운 암과의 싸움에서 이어령 교수님은 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과연 나는 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어령 교수님의 다양한 분야에서의 통찰력의 깊이는 우리는 따라가기 어렵다.
한 문장,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리빙이 아닌 라이프‘의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음을 새삼 감사한다.
작년 설 명절 전 날, 네 식구가 함께 모여 설 날 먹을 동그랑땡, 동태포, 호박전 등 음식을 하고 쉬고 있었다.
며칠 전 헬스장에서 러닝을 뛰는데 가슴이 조금 뻐근하고 아팠지만 별로 심하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명 절 날 오후부터 간헐적으로 아프더니 저녁에는 가슴과 등까지 아파왔다.
주기적인 통증에 아들이 맥박과 아픈 증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시작하더니
“아빠, 엄마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야 될 것 같아요!” 하며 우리들은 옷을 들고 차를 탔다.
그 시간이 밤 10시가 넘었고, 충남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심전도 검사부터 시작해서 여러 검사가 시행되었고, 조금씩 아프던 가슴과 등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전도 상 혈관이 막히는 순간이 체크가 되질 않아서 대기하며 아침에 CT를 찍기로 했다.
남편과 딸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아들이 옆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찰나에 급격하게 통증이 진행되었고, 왼쪽 팔이 아프기 시작하였다.
약도 쓰고 모르핀주사도 맞았지만 통증은 더 심해졌고 위에서는 음식물을 모두 쏟아내었고 자꾸 잠이 왔다.
간호사선생님은 잠을 자면 안 된다고 하시며 심전도를 찍었는데 왼쪽 심실 대동맥이 막힌 것이 선명하게 나타났고 나는 바로 스탠스 시술에 들어갔다.
그 시간이 새벽 4시였다.
스탠스 시술을 하고 나서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난 살았다. 다들 아들 덕분이라고 했다.
평소에 남편과도 주말부부로 지냈고, 아이들도 기숙사에 있으니 혼자 있었다면 아마 저 세계로 건넜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심장 혈관이 막히던 그 순간, 이제 죽는 건가? 싶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그냥 죽을 것 같아서, 그 고통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병원에서 대기하며 처치가 바로 들어가서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심장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빨리 낫기를 소리치며 기도하고 울부짖었다.
담담하지 못한 나를 기억한다. 죽음이라는 것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난 아직 젊으니 끼……
이어령 교수님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은 관조적이다.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죽음과 동행하는 것 같은 모습에서 죽음을 담담히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 오, 주여, 나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끝없이 내 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왜 용기가 필요한 줄 아나? 인간은 차마 맨 정신으로 자기의 몸뚱이와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는 거야.’
‘암세포는 내 몸의 지우개였어.
지우개로 지워놓으면 내가 뭘 쓰나? 공백이야’
교수님은 죽음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가지신 분이었다.
용기 있게 남아있는 힘을 다해 지혜를 선물해 주셨다.
마지막을 준비하며 쏟아내는 이어령 교수님의 메시지는 나의 마음을 세찬 파도에 덮어 벼렸다.
지금 있는 이곳에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로 존재하고 있는가?
나만의 생각에 날개를 달고 자기다움을 찾아가기 위해 어떻게 존재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 본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냐고 묻는 교수님의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내가 다시금 존재하게 된 것은 ‘선물‘인 삶이었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파도는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수평선 너머로 돌아가는 인생이 바로 죽음이라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힘든 일들을 떠올리며 아직은 수평선을 넘고 싶지 않음을 생각한다.
선물 같은 주어진 시간이 나의 모습을 찾아가며 그 존재에 나만의 색깔을 입히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나다움을 찾는 것, 그것은 지금 주어진 내 삶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나의 길을 가는 것이리라.
이어령 교수님은 안 계시지만 그분의 주옥같은 문장은 남아 나에게 삶과 죽음을 성찰할 수 있게 된 시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답게…..
나스럽게……
나다움으로 살아가길……
나의 선택은 내 자유의지, 살아있는 내 몫임을 기억하자.
수많은 군중 속에서 자기다움으로 빛이나 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