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파묻힌 아이를 보며…
어느 밤, 아들과 나란히 시간을 보내던 중 문득 아이를 바라보았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책 속에 온전히 빠져 있는 모습.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 이런 게 바로 행복이구나.‘
방울토마토를 건네자, 아이는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둔 게 참 다행이에요.”
그 말이 유난히 깊이 와닿았다.
요즘 아이가 읽는 책은 서양 철학사.
누가 선물해 준 건지 물었더니, 자기가 직접 고른 책이라고 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스스로 책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함께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편식 없는 독서가 아이의 지식 창고가 든든하다]
그 시절, 나는 늘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지루함 없이, 스스로 즐기면서 책을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단순히 책만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독후 활동도 함께했다.
책 속 이야기와 연결된 체험을 계획하고, 다양한 장르를 접하게 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작은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그렇게 쌓인 독서 경험은 공부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어느새 배경지식이 차곡차곡 쌓였고, 아이의 학업 의욕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부모의 뒷배, 책의 뒷배]
예전에 어른들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뭔가 해낼 수 있는 건 다 뒷배가 든든해서지.”
보통은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배경을 떠올리는 말이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나에게 ‘든든한 뒷배’는 돈도, 권력도 아닌 책이었다.
책은 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곁에 있었다.
삶의 원칙을 배우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책 속에서 얻었다.
책은 단순한 지식의 보고가 아니었다.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고, 낯선 세계로 가는 문이었으며, 때로는 위로이자 동반자였다.
나는 아이에게 그런 책들을 조용히 건네주며, 묵묵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그것이 내가 줄 수 있었던 가장 강한 뒷배였다.
세상 그 무엇보다 든든한, 태산 같은 뒷배.
[책은 기억이 되고 길이 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나는, 죽은 후에도 아이들에게 책과의 시간을 남기겠다.
그리고 아이들은 기억할 것이다.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책을 읽던 시간들.
잠들기 전 책장을 넘기던 손끝의 감촉.
함께 질문하고 줄을 그으며 나눴던 대화들.
그 시간들이 아이의 앞길을 밝혀줄 가로등불이 되리라 믿는다.
요즘 내가 짬짬이 읽는 심리학 책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펼쳐본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한지.
도촬 한 장, 그리고 말한다.
“‘일류의 조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읽어볼게요.”
[결국, 가장 든든한 뒷배는 책이었다]
책은 그렇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한 뒷배가 된다.
그 어떤 유산보다 오래 남는, 지식과 지혜의 흔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