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책을 심으면 결국 생각이 자란다 ]
몇 년 전, 아들의 후배가 집에 놀러 왔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라 아들과 함께 한화와 롯데 경기를 보고 난 뒤였다.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본과 1학년.
훤칠한 키에 인상도 좋고, 말하는 태도도 또렷했다.
그런데 아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꽃다발을 건넸다.
“어머님께 드리고 싶었어요” 하며 건넨 그 손끝에서 예의가 몸에 밴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는 무심한 듯 방과 거실을 둘러보더니
“와, 책이 정말 많네요.” 하며 책장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나는 조용히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참 뒤 문득 조용해진 거실을 슬쩍 들여다보니
그 아이는 이미 책 한 권을 꺼내 들고 앉아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책을 천천히 넘기며 읽는 모습은 꽤 자연스러웠다.
[ 책을 즐기는 아이는, 사람을 깊이 있게 만난다 ]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책의 맛을 본 아이구나.’
그 아이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아들 주변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다.
책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도 생각이 깊다.
상대의 말에 쉽게 끊고 들어오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웃으며 대화를 잇는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이가 어떤 친구들과 어울리는가는 결국 부모가 어떤 환경을 심어 왔는가에 달렸다’고……
책과 함께 자란 아이는 결국, 사람을 만날 때도 글을 읽듯 천천히 다가간다.
책 속 인물의 마음을 읽는 법을 익힌 아이는
현실 속 사람의 마음도 조심스럽게 헤아린다.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사람과 관계 맺는 감도, 사실은 모두 책 속에서 조용히 배워진 것들이 아닐까.
[ 책 읽는 습관은 '강요'보다 '스며듦'에서 시작된다 ]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크게 말한 적이 없다.
무조건 책상 앞에 앉혀 놓지도 않았고,
책 몇 권을 다 읽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며 조건을 달아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내 삶에는 늘 책이 있었다.
이불속에서 후레시를 켜고 보던 시집,
밥 짓는 동안 틈틈이 펼쳐보던 짧은 에세이,
퇴근 후 아들, 딸과 나란히 누워 함께 읽던 그림책.
아이는 그런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며 자랐다.
그게 전부였다.
책을 읽는 모습이 당연한 풍경이 된 것.
그것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교육이었는지도 모른다.
[ ‘콩 심은 데 콩 난다’는 말은, 어쩌면 독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
책을 가까이 두며 자란 아이는 자연스레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다.
겉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읽고자 한다.
쉽게 단정 짓지 않고, 사연을 생각하고,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그런 아이는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따뜻한 시선을 가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보다,
보이지 않는 품성과 공감력이 빛을 발한다.
[ 부모에게, 말없이 권하고 싶은 마음 한 조각 ]
혹시 요즘, 아이와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느끼는지 묻고 싶다.
무언가를 가르쳐주려 하면 아이는 자꾸 도망치고,
말을 줄이고, 표정을 감추고, 눈길을 피하진 않는지……
그럴 때, 조용히 책 한 권을 꺼내보면 어떨까?
아이 곁에서 읽고, 아이가 묻지 않아도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그 자체로 아이는 느낄 수 있다.
책은 부모의 철학이 스며드는 도구이다.
지금 읽는 이 문장 하나가 어쩌면 내 아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언젠가 그 아이의 말투와 태도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오늘 밤, 내 아이가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있는지 한 번 떠올려보자.
그 아이의 친구들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감정을 이해하고, 무엇을 존중하고 있을까?
그리고 조용히 책장을 넘겨 본다면 그 손끝에서 아이의 삶이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난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도 조용히, 책을 심어주면 훗날 아이는 튼튼한 나무를 가진 숲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