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느끼는 불안과 그것을 잠시 멈추는 연습
[ 책을 잠시 놓는 시간도, 독서의 일부다 ]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간, 나는 책을 엄청 읽었더랬다.
그 시간을 보내면서 책에 관한 애착이 더 증가하였다.
그런데 작년 몸도 아프기도 했지만, 읽고 기록하던 시간들이 힘에 겨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며칠을 책을 제쳐두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냈다. 그저 꿈같은 시간을 보낸 듯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문득 아이들과 책을 읽고, 아이들의 독서와의 힘겨운 시간들도 생각이 났다.
어른인 나도 힘겨워 놓고 싶은 시간이 있건만 아이들도 오죽했을까 싶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은 내게 한 편의 작은 풍경 같았다.
봄날 창문 틈새로 들어온 햇살 아래, 아이가 책장을 넘기고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던 순간들.
말하지 않아도 흘러가는 문장들 속에 나와 아이의 시간이 눌러앉아 있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책을 읽는 태도가 조금은 변하는 것을 감지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가 갑자기 “재미없어”라는 말을 반복할 때, 나는 처음엔 걱정부터 앞섰다. ‘이러다 책을 멀리하는 건 아닐까? 공부는 괜찮을까?’
그런 조급함이 목 뒤를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조금씩 알게 되었다.
책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처럼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항상 가까이 있을 수 없듯, 때론 떨어져 있어야 다시 보고 싶어 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도 아이도 마음 근육을 키우게 되었다.
아이의 독서 번아웃은 꼭 실패의 신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가 책과 맺고 있던 관계를 스스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읽는 속도에 지쳤을 수도 있고, 남의 말로 가득 찬 페이지 사이에서 자기 생각을 잃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타인의 문장을 너무 오래 빌려 쓰느라 자기 언어가 침묵해 버린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책을 내려놓도록 허락했다.
‘지금은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꺼내어 아이의 등에 조용히 얹어주었다.
그 대신 우리는 함께 걷고, 함께 쉬고, 이야기가 아닌 침묵의 여백 속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을 나누었다.
그 후로 아이는 다시 책을 꺼냈다.
이번엔 조금 다른 얼굴로, 예전보다 더 느린 속도로.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서 다시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책을 놓는 시간은 끝이 아니라 쉼표다.
문장 사이에도 쉼표가 필요하듯, 독서와 독서 사이에는 ‘읽지 않는’ 날들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아이는 생각한다. 그리고 자란다.
부모에게 건네는 작고 단단한 조언
• 조급함을 내려놓기: 아이가 책을 멀리한다고 해서 책과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기다려 주세요. 책은 아이가 필요로 할 때 다시 손을 내밉니다.
• 재미없는 책 대신, 재미있는 ‘경험’을 채워주세요: 자연, 놀이, 대화, 그리고 쉼. 이 모든 것은 결국 다시 책으로 이어지는 숨겨진 길입니다.
•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 아이가 책과 잠시 멀어질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 그것도 독서의 일부입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을 읽는 아이보다 ‘책을 사랑하게 될 아이’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아이가 잠시 책을 내려놓는 것은 쉼표를 하나 찍으며 내면의 자아를 성장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쉼표와 책 사이에 아이의 자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놀이를 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불안하지만, 그것을 통해 잠시 내려놓은 용기를 연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작은 걸음을 걷는 용기를 격려해 주는 것이 부모가 멘토로서 자리 잡는 토대가 될 것이다.
기다리며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야말로 내 아이에게 조용히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