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울수록 아팠고, 무거울수록 진짜였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 밀란 쿤데라

by 서수정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펼쳤다.
벌써 몇 번째 읽는 중인지... 이 책은 옆에 두고 계속 펼쳐보는 책 중 한 권으로 애정하는 책이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제는 줄거리보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오래 머문다.
그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존재는 왜 이렇게 가벼운가

“영원한 회귀의 세상은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한 우리 삶은 가벼움 속에서 자태를 드러낸다.” – 본문 중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인용한 이 문장에서 나는 멈춰 섰다.
삶이 단 한 번 뿐이라면, 모든 선택은 얼마나 가벼울 수 있을까.
그 가벼움은 자유일까, 아니면 무책임일까.

책을 읽으며 나는 반복해서 되묻게 되었다.

“나는 지금 얼마나 무겁게, 혹은 얼마나 가볍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은 철학이었고, 동시에 감정이었다.
삶이 너무 가벼워서, 나는 어느 순간 슬퍼졌다.
무게 없는 존재는 떠다니는 공기 같고,
의미 없는 자유는 외로움으로 스며들었다.

♤토마시, 내 안의 그림자

토마시는 감상 없는 관계를 추구했다.
소유하지 않고, 얽히지 않으며,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했다.
그는 ‘에로틱한 우정’이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관계를 정의하려 했다.

처음엔 그런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그는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내 안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에 상처받고 싶지 않을 때,
깊이 얽히기 두려울 때,
나 역시 감정이 없는 척, 자유로운 척, 멀찍이 선 적이 있었다.

토마시는 내가 되고 싶은 이상은 아니었지만,
사랑을 두려워할 때마다 떠오르던 나의 얼굴이었다.
그는 나의 그림자였다.
회피와 거리감의 다른 이름.

♤테레자, 내 안의 나

테레자는 사랑을 통해 자신을 증명받고 싶어 했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냉소적 얼굴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한 남자를 자신의 거울 속에 가두려 했다.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봤다.

“내가 누구인가”를 사랑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시간들.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묻던 시간들.

테레자는 나의 감정이었다.
나의 두려움이었고,
나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사비나, 나의 분열

사비나는 키치를 싫어했다.
감정 과잉, 사회적 통념, 도덕적 연출…
그녀는 그런 것들에서 도망쳤다.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알게 되었다.

사비나는 내가 규범 속에 있을 때 질식해 버릴 것 같은 또 다른 나였다고.

그러면서도 정작 그녀처럼 떠날 용기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며,
내 안의 분열된 자아를 마주했다.
모든 관계에서 떠나고 싶고,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모순적인 존재.



♤가벼울수록 아팠고, 무거울수록 진짜였다

사랑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토마시처럼 가볍게 살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그 가벼움은
나를 자유롭게 하기보단, 텅 비게 만들었다.

쿤데라는 말한다.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이다.
짐이 무거울수록 삶은 지상에 가까워지고,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그러니 가벼운 삶은 때로 참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할까 봐,
나는 두려웠다.

가벼움은 때로 아프다.
그 아픔이,
내가 진짜를 원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 “그래야만 하는가?”에서 벗어나기

토마시는 결국 스위스에서의 삶과 직업을 버리고 테레자에게 돌아간다.
그는 자문한다.

“그래야만 하는가?”
그리고 대답한다.
“그래야만 한다. Ja, es muss sein.”

나는 오래도록 이 문장에 머물렀다.
왜냐하면, 나 또한 그런 말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는 이래야 해.”
“참아야 해.”
“어른답게 행동해야 해.”

늘 무게를 견디며 살아왔던 나에게
이 책은 조용히 속삭여준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충분히 괜찮은 존재다.”



♧ 그래서 나는, 나를 펼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이자 거울이었다.
그 안에는 토마시가, 테레자가, 사비나가 있었고
그들을 통해 내 안의 나가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토마시는 내 안의 그림자,
테레자는 내 안의 불안,
사비나는 나의 분열이다.
그 모두를 껴안고 있는 나,
그게 바로 진짜 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책을 펼치며
다시 나 자신을 펼친다.

그리하여 묻는다.

“나는 지금, 얼마나 가볍게, 혹은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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