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Oct 15. 2024

장기적인 돌봄이 쉽지 않은 이유

신지 못할 신들을 다시 품으며

이번주는 연이어 19(화), 20수), 21(목), 22(토)화 총 4화를 발행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신들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안다. 어머니에게는 놀이 시간이 되어 이동할 때나 자식들이 면회를 가면 나오시기 위해 휠체어에 앉으실 때만 필요한 신이다. 그것도 요양원에 입소하시던 날 사드린 하얀 실내화 그 한 켤레 만이 필요할 뿐이다. 언제나 편하게 신으실 수 있도록 신발장 맨 아래쪽에 편한 신발들을 나란히 넣어두곤 했다. 유난히 고운 신들을 좋아하여 그득했던 신발장의 신들은 해가 갈수록 줄고 줄어 편한 신 몇 켤레만이 남았다. 이미 몇 번이나 정리를 했지만 차마 다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도 세 켤레만 남기고 정리했다. 봄가을, 여름, 겨울에 신으실 수 있는 신이다. 남은 이 신들마저도 필요 없다는 것을 지만 무엇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 끌어안고 있다.


그것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더 오래 볼 것만 같아서 어머니의 흔적들을 차마 이 집안에서 모두 지울 수가 없다. 조금씩 줄어들긴 했지만 몇 해 동안이나 주인을 잃은 화장대와 침대, 장롱 안의 재킷들과 가방, 여벌옷들이 아직도 어머니방 곳곳을 채우고 있다. 가끔씩 쓸고 닦고 환기시키며 어루만질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늘 곱게 화장을 하고 매만지던 어머니의 손길이 가득했던 장신구들. 손주들이 무슨 때마다 드린 카드와 편지등 크고 작은 선물들이 알록달록했던 그 빛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래도 난 다시 가지런히 놓아둘 뿐 들어내지 못하고 신발장의 신처럼 다시 품고야 만다.




8월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나의 병원투어로 어머니 면회신청을 미루다 함께 가는 막내시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덜컥 입원이라도 하게 된다면 면회가 어려울까 걱정되어서다. 진료 후 결과에 따라 시동생이 신청한 날자에 별일 없으면 합류하겠다며 어렵게 면회신청을 부탁했다. 내가 당장 안 좋다는데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는 것에 잠시 마음이 뾰족해진다. 한 번쯤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둬도 되건만 기어이 혼자 짊어지고 갈 것처럼 유난스러움을 놓지 못한다. 바보처럼.


대학병원 진료결과는 처참했다. 복구될 수 없는 기관지확장증으로 폐 속의 큰 기도인 기관지가 이미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확장됨으로써 객담 배출 기능이 약해진 상태라 한다. 그럼에도 폐 속에 있는 균검사를 위해서는 객담을 배출해 내야 한다. 그것도 5통씩이나. 다행히 당장 입원하거나 전염이 되는 것은 아니라기에 마음만 무겁게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억지로 통을 채워 제출하고 10월이나 되어야 다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한다. 결국 그동안은 이런 상태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니 면회를 가기 위해 또 짐을 꾸렸다.




별스러운 것들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갈 수 있는 이 아니기에 뭐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분주하기만 하다. 매월 나 혼자 이 짓을 한다면 심적부담이 있을 수 있겠지만 둘째 시누이께서 함께 해시기에 격월로 가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 어차피 무슨 일이 생기면 수시로 가지만 그렇게라도 도와주시는 시누님이 오늘도 너무 감사하다. 처음 요양원에 모시면서 형제들이 돌아가며 면회를 갈 수 있도록 하려 했지만 난색을 표했다. 친정에서는 내 뜻대로 형제들이 모두 잘 따라주었지만 시집 형제들은 우리와 둘째 시누이께서 가는 날 시간되는 대로 함께 가는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효율적이지 않은 방법이라도 어쩔 수 없다.  7남매나 되지만 결국 시누이와 나만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되었다. 오더라도 두 손 가볍게 오거나 간식을 챙겨 오기도 하지만, 누가 오든 말든 모두 준비하는 쪽은 우리 두 사람 몫이 되었다. 더구나 면회를 마치고 점심식사까지 책임지는 날이면 가끔은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곤 하신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작은 일에서도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지만 휴일에 함께 가는 막내시동생은 열심히 내게 밥을 사준다. 결혼 전 철없던 어린 시절(중2) 이다음에 어머니는 내가 모시고 살겠다고 큰소리치던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신경을 가장 많이 써준다. 아침부터 둘째 시동생이 포도를 한 박스 들고 왔다. 형수가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매년 챙겨다 준다. 큰형수가 몸이 안 좋다 하니 다들 걱정을 해주는데 마침 둘째 시누이께서도 우리 집에 들르셨다. 어쩌면 제일로 걱정을 많이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늘 감사한 마음이었기에 그동안 드리고 싶었던 것들을 두 손이 넘치도록 싸드렸다.


완도에서 공수해 온 고사리와 수제멸치액젓과 마침 언니가 가져다준 요즘 금값인 오이, 상추, 꽈리고추, 가지, 냉동실에 손질해서 얼려둔 생강까지 꺼내어 골고루 많이도 싸드렸다. 그것도 모자라 오전에 담근 오이깍두기와 둘째 시동생이 가져다준 포도까지 나누어 드렸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다 만나면 꼭 식사를 대접해 드리기도 하지만 마음이 가는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이번에 흡족하게 드릴 수 있어 되레 선물 받은 기분이다. 이렇게 장기적인 돌봄에서는  사소하지만 생각지 못한 일들로 여러 감정들이 오갈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물론 돌봄 대상자에게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돌봄이 쉽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기도 한다.


2024. 8.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