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태풍보다 차가운

by 올레비엔

태풍보다 차가운

친척집에 놀러 갔더니 새끼 강아지를 막 데려와서 뙤약볕에 묶어놨다. 사촌이라서 젊은 부부인데, 아이가 졸라서 강아지를 데려온듯했다. 강아지를 구경하겠다고 나갔는데, 강아지 밥그릇에 물러서 상해버린 딸기가 들어있었다.

상한 음식을 줬던 과거의 내 잘못을 들킨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졌다. 양갱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랬다. 이제 2달도 안된, 아마 500그램을 겨우 넘었을 새끼고양이에게 내가 먹다 남긴 통조림 옥수수를 우유에 섞어줬다. 양갱이는 사료를 처음 먹기 시작할 때고, 식욕이 왕성해서 주는 대로 다 먹었다. 맛있어하는 줄 알고 멍청하게도 내가 먹을 것까지 줬다. 사료도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양갱이는 거의 이틀을 소화도 안된 옥수수를 토하고 쌌다. 아기 고양이는 그러면 죽을 수도 있는데 양갱이는 고맘게도 씩씩하게 다음날 사료를 잘 먹어치웠다.

한동안 동물은 남은 음식, 상한 음식, 뼛조각을 먹어도 되는 줄 알았다. 예전에 어른들은 남은 음식에 맛있으라고 국물을 부어서 강아지들 밥으로 줬다. 사람 먹을 음식도 넉넉하지 않을 때라서 어쩔 수 없었지만, 나처럼 무지한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아직 있다. 마루를 키우기 전까지 개들은 고기 말고 뼈를 더 좋아하는 줄 알았으니까

쓰레기를 먹을 수는 있지만 먹고 싶지 않은 것은 동물도 인간도 똑같은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멍청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기는 아기다. 누구나 동물을 귀여워하지만, 보살피는 방법이 다 다른 것은 똑똑한 인간이 합리적인 방법을 택하기 때문일까,


실외견이 되던 날

마루를 막 데려왔을 때, 집안에서 마루는 우리와 함께 방에서 지냈다. 2달짜리 강아지를 귀여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알고 보니 엄마는 애초부터 강아지를 밖에서 키울 예정이었지만, 귀여운 강아지를 당연히 데리고 자는 우리를 보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다 새끼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새끼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리고 항상 배고프다. 마루는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서 우리를 깨웠고, 사람들이 일어나지 못하는 사이 소소한 사고를 쳤다. 일주일쯤 지나자 온 가족은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가지고 있는 모든 이불을 강아지 오줌 때문에 빨아야 하는 지경이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금새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서, 엄마개를 엄마 마음대로 한다는데 토를 달 수 없었다. 오히려 실외견으로 키우려면 우리가 있을 때 빨리 내놓으라고, 그래야 문제가 생기면 훈련도 하고, 수습할 수 있다고, 당장 내보내라고 종용했다. (나는 어떻게 매번 똑똑하게 멍청한 선택만 하는지 놀랍다.) 그렇게 딱 일주일 만에 이제 두 달밖에 안된 강아지는 실외견이 됐다.

그날 밤, 우리는 오늘부터는 늦잠 잘 수 있겠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똑똑한 우리 마루는 밤새 하울링을 했다. 우리 집에 와서 몇 번 짖은 적이 없어서 조용한 강아지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두 달밖에 세상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도합 100살을 넘은 사람들을 밤새 훈계했다.

'한켠을 내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냐'며,

'아기를 아기로 봐주는데, 사람과 동물이 따로 있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혼냈다. 신기하게도 마루는 낑낑거리며 울지 않았다. 큰소리로 또박또박 우리를 혼낼 뿐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마루를 위해서 다시 집안으로 들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날도 잠을 못 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귀여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잠드는 대신에 불편한 마음으로 지새우기를 택했다.

세상의 규칙을 정하는 것도 인간이고, 집안의 규칙을 정하는 것도 우리니까. 강아지는 사람아기나 동물아기나 다 조심스럽게 사랑해 주는데, 사람은 하나하나 다 똑바로 알려주거나 실수해도 못 알아듣는 것이 태반이다.


물론 모든 강아지가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집 안에 사는지, 밖에 사는지 보다 함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다만, 원칙을 정해서 강아지를 헷갈리게 하거나 기다리게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밖에서 사는 것이 억울해지지 않도록.


태풍이 치던 밤

섬에 살면 그제야 태풍의 위력을 알게 된다. 날아다닐 수 없는 것들이 날아다니고,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 쉽게 정전을 경험하게 된다. 큰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제주 사람들은 (시지역에 살면 안 그럴지도 모른다.) 단전과 단수에 대비해 욕조 가득 물을 받아놓고 식수도 미리 받아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냇가로 물을 뜨러 나가게 될 수도 있다.

제주도에 있을 때는 태풍이 오면 마루는 나와 함께 집안에서 잤다. 3년쯤 지나서 더 이상 제주 집에 내가 없을 때 엄마는 태풍이 와도 마루를 밖에서 재웠다고 한다.(물론 태풍을 피할 수 있게 충분히 집도 자리 잡아주고 지붕아래 안전한 곳에 뒀다) 그러면 마루는 집을 놔두고 가장 구석진 곳에 들어가 흙속에서 떨고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개집이 안전한 곳에 있어도 비바람 소리, 천둥번개소리만 들어도 그 밤은 지옥 같았을 것이다.

엄마의 변도 이해는 간다. 집안에 들여다 놓아도 태풍소리에 마루는 초조해서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자꾸 나간다고 했다가 다시 들어온다고 했다가를 반복했다. 태풍 치는 밤 공포로 혼자 떨던 기억 때문에 초조함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몇 번만 그랬고 이후에는 집으로 데려와서 재웠다고는 하지만 내개가 아니어서, 책임질 수 없어서 다시 미안했다.

우리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다 괜찮을 것이라고 믿는 태풍보다 차가운 심장을 가졌다. 그래도 엄마는 마루를 끝까지 키운 책임을 다한 견주였다. 나처럼 말만 많은 구경꾼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우리도 똑같아, 외롭고, 두렵고,
그냥 견딜 뿐이지”


keyword
이전 05화너의 과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