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로
제주도에 산지 일년쯤 지났을 때, 옆집 해녀 아주머니가 새끼처럼 보이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갑자기 데려오셨다. 아마 제주시에 사는 자식들이 키우다가 힘들어서 두고 간 모양이었다. 다짜고짜 키우라고 하시는데, 우리도 이미 마루랑 양갱이를 키우고 있어서 안 된다고 거절했다.
해녀 아주머니는 아주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오셨는지 우리집 앞 도로에 앉아서 한 시간도 넘게 가지도 않고, 일상이야기를 좀 하다가, 개를 키우라고 하다가를 반복하셨다.
결국 또 책임감 없고 어리석은 내가 키우겠다고 강아지를 받아줬다.
양갱이보다 작은 이 강아지는 겨우 1키로를 넘었고, 아주 새끼 강아지도 아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는 했어도, 우리가 본 개라고는 돌아다니는 똥개들과 마루밖에 없어서 이 개가 성견인지 새끼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샴고양이처럼 보이는 개는 처음 봤다. 강아지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젤로가 막 집에 왔을 때는 충격적인 상태였다. 우리집에 데려다주기 위해서였는지 미용은 깔끔하게 되어 있었는데, 성대 수술을 한 것처럼 제대로 짖지도 못하고, 겨우 1.3kg이었다. 처음에 방석 위에 올려줬는데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방석 위에서 꼼짝도 못하고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너무 작아서 만지기도 애처로왔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도 아니고, 기력없이 자포자기한 상태를 보고 작아도 새끼가 아닌것을 짐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6~7살 된 요크셔테리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코와 귀에 털이 하나도 없어서 샴고양이처럼 보였던 것이다. 다행이도 딱히 건강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 불쌍한 더부살이 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양갱이랑 같은 종류의 이름도 지어줬다. 젤리과자를 뜻하는 ‘젤로’, 우리말로는 ‘제일로’랑 발음이 비슷해서, ‘제일로 사랑 많이 받으라’는 뜻이었다.
젤로까지 나의 어리석음 덕분에 세 마리 동물과 함께 살게 되었다.
10살 한국 토종 고양이 양갱이, 암컷, 4kg,
1살 골든리트리버 암컷 마루 30kg,
6~7살로 추정되는 요크셔테리어 젤로 1.3kg.
나이며 체급, 성격까지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모두 어리석은 선택이 맞았다. 우리의 오늘이 내일과 같이 평온할 것이라는 멍청한 확신,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오만, 함께라면 더 행복할것이라는 아둔한 낙관론이 우리를 함께로 만들었다. 어리석음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생명은 언제나 아름답다. 나는 겨우 5년 남짓 제주도에서 동물들과 함께 살고, 남의 개 고양이 이야기를 뻔뻔하게 쓰고 있다. (물론 엄마의 개, 고양이 이기는 하지만, 내가 결국 동물들을 책임지지 않고 떠난 것에 화가 난 내동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젤로를 보여주지 않았다. 책임지지 못한 사람도 슬퍼도 된다면, 후련하기라도 했을텐데. 슬퍼할 자격이 없었다.)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우리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고, 평온한 날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해치워야 할 일들 앞에서 3마리나 되는 동물들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았다. 그런데 힘이 되었다. 바쁘면 틈을 내서 개고양이를 관리해야 했고,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무기력해질 틈을 주지 않았다. 어려움 앞에서 동물들은 말 그대로 손을 잡아주고, 온기를 나눠줬다. 함께라서 불행이 피해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사람과 함께 보다는 동물과 함께가 행복했다.
어리석은 선택 덕분에 우리집에서 가장 작고, 용맹한 보석이었던 젤로를 지금 기억할 수 있다. 젤로는 특히나 나를 사랑해주었다.
“젤로 사랑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