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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다는 오만함.

by 올레비엔

어리석은 선택

반려동물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내일도 오늘같이 안전하고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내일도 역시 오늘같은 날이 이어질 것이란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동물은 자유의지는 있으나 자기 결정권이 없는 생명이다. 결정권을 인간에게 의탁한 상태다. 아마 야생에서 만나면 중간사이즈의 진돗개 한 마리가 사람보다 두려울 것이다. 개들은 야생의 민첨함과 힘을 내려 놓고, 어리석게도 사람과 함께 살기를 결정했다. 인간의 특기가 배반인지도 모르고,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은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이성을 가지고, 똑똑한 선택을 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결정이 누구가와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이고, 다른 생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오만이다.

반대로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면 우리는 절대 함께하는 행복을 누리지 못할지 모른다.

준비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강아지를 입양을 많이 하는 시기 중 하나는 어린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 시작된다. 부모는 어리석은 선택인줄 알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양보하기도 하고, 가끔은 우리만은 잘해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어떤이유든, 다른생명과 함께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너무 졸라서 지쳤거나, 귀여움에 정신이 나갔거나 잠시 이성을 잃었을때나 가능하다.


양갱이

우리가 동물들과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리석은 결정을 잘하는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감도 없이 충동적으로 멍청한 선택을 했다.

양갱이를 처음 만난것은 20대 중반이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도 책임감을 배우지 못해서 저질렀다. 2달도 안된 친구네 고양이를 덜컥 받아왔다. 20대의 나는 반지하와 옥탑 중에서도 가장 질낮은 자취방을 전전하고 있었고, 당장 내일을 계획할 여유도 없었다. 자취방에 살면서 한번도 동물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해보거나,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물론 나에게도 나름에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변명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멍청한 20대의 변명은 어떤 사유든 무책임했다.

나보다 더 무책임했던 친구는 해맑게 웃으면서 내가 좋아했던 간식이름으로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고, '양갱이'를 잊어버렸다.


평생 동물을 키워본적 없었던 나는, 내 손에 올라가는 조그만 고양이가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한번 안아줄 줄도 몰랐다. 고양이는 나를 괴롭히려고 자꾸만 침대로 올라와서 불면증에 걸릴지경이었다. 엄마와 떨어진 아기고양이의 밤이 무섭고 외로웠을것을 상상도 못했다.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화장실은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몰라서 어쩔줄 몰랐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고양이는 제대로된 음식이나 화장실도 없이 지내느라 고역이였다. 게다가 나는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이리저리 고양이를 맡기러 뛰어다녔다.

잘못을 하는지도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손쓸방법도 없었다. 다행히 내가 포기하기전에 동생이 고양이를 보고 빼앗듯 본가로 데려갔다. 양갱이는 그렇게 나로부터 구조됐다.

고양이랑 지내는 며칠간 제대로 자본적이 없고, 할일도 못했지만, 고작 며칠이었을 뿐인데, 자취방에 정적이 두배는 짙어진것 같았다. 항상 피곤에 쩔어 외로울 새도 없었는데, 가끔 생각났다.

잘못이 있어도 아직 알아채지 못하는 20대의 멍청한 영혼에 양갱이는 처음 죄책감이라는 상처로 남았고, 항상 미안한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제주도에서 함께 살기위해 10년만에 다시 만났을때, 양갱이는 아는체 해주고 잘지냈냐고, 이제 살림은 좀 나아졌냐며, 발목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쓰다듬어 주었다.


"어디갔다 이제와. 이제 형편은 좀 나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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