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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봉 Nov 12. 2023

군고구마 '황금비율'

인생에도 황금비율이 있다면

고구마 한 박스를 샀는데 맛이 없다. 죽은 빵도 살려낸다는 에어프라이어인데 멀쩡한 군고구마는 못 살렸다. "이거 되게 맛없네."라고 고구마 흙  번 안 털어본 남편이 말했다. 얄밉기도 했지만 인정. 정말 '더럽게' 맛없다는 말이 이리 실감 날 줄이야. 딱딱해진 껍질이며 퍽퍽한 속살이며 구박덩이로 전락했다.




안 되겠다. 우리가 직접 고구마를 캐오자. 일사천리로 예약하고 강화도로 향했다. 고구마 캐기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고구마 한 개를 캐니 수십 개가 주렁주렁 딸려 나왔다는 믿거나 말거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의지를 다졌다. 나 역시 고구마를 못 캐면 고구마 줄기라도 뜯어오리라는 심정으로 농장으로 향했다.



남들은 한 박스만 채우던데 비장한 각오로 온 우리는 두 박스를 호기롭게 외치고 농장으로 향했다. 선선한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두 박스를 다 채우고 농장에서 나눠주는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먹었다. 집에서 먹었던 군고구마와 차원이 달랐다. "이거지~!!"라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아이들과 남편을 보며 우리도 이제 맛있는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적어도 일주일은 숙성하라는 농장지기님의 말을 모범생처럼 잘 들은 후 드디어 에어프라이어로 직접 캔 고구마를 구워보기로 했다. 에어프라이어에 군고구마 기능이 있기에 아무 의심 없이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띵'소리와 함께 완성된 군고구마를 맛보기 위해 네 식구가 달려들어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내 정적이 흐르고 서로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고구마를 내려놨다. 아직 숙성이 덜 된 걸까. 이번에도 '그'맛이 아니었다.




2박스 가득 담긴 고구마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저걸 다 맛탕으로 만들어 버릴까 고민하며 근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 맘카페에 '군고구마 황금비율'이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군고구마 황금비율인데 110도 30분 160도 30분 190도 30분을 돌리면 밖에서 파는 군고구마 같이 된다는 것이었다. 엄청난 소요시간이 맘에 걸렸지만 수북이 쌓인 고구마군단을 보며 황금비율 레시피를 따라 해 보기로 결심했다.


과연 황금비율대로 구운 군고구마는 성공했을까?


그렇다. 성공이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들처럼 아이들 양볼에 고구마가 한가득 찼다.  어떻게 맛있어졌냐는 아이들 물음에 군고구마 황금비율을 알아냈다고 신이 나 얘기했다.

아이들은 그럼 앞으로 모든 음식 만들 때 황금비율 찾아서 하면 더 맛있겠다며 흥분했다.


생각해 보니 웬만한 음식 레시피를 검색하면 황금비율이 꼭 함께 나온다. 손가락 움직임 몇 개만으로 맛보장 음식을 만들 수 있다니. 황금비율, 그거 참 신통방통하다.




일과 가정, 육아와 나 자신의 비율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일에 치중하다 보면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된다. 육아에 전념하면 나 자신은 희미해진다. 중간으로 가자니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3:7, 4:6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스스로 정해야 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급하게 처리할 일은 남았는데 아이는 아파 소아과에 데려가야 하는 상황일 때. 모처럼 휴식시간 내 책을 읽고 싶지만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다가올 때. 매 순간 그 황금비율을 찾기란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삶은 두 가지 혹은 더 많은 것들을 두고 그 순간 옳은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의 연속이다.

49대 51일의 법칙이라던지, 사람들마다 그때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나는 황금비율은 모르겠고 감으로 해결한다. 내가 한 선택이 옳았는지는 나중에서야 아는 경우가 많다. 틀렸어도 이미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 왜 그때 잘못된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괴로워하기보다는 잘못된 결정으로 벌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집중해보려 한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오며 울고 웃었다. 때론 수습이 불가한 잘못된 선택도 있었다. 팔순 할머니가 되어도 황금비율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어떤가 생각하려 노력한다. 황금비율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아이들과 오순도순 얘기하다 보면 울던 순간은 옅어지고 지금 이 순간만 영원할 것처럼 남으니. 내일 또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지금은 복하니까. 그렇게 살아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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