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국내 흥사단의 고뇌
안창호와 유기석은 1927년 8월 16일 상해로 귀환했다. 삼일당에서 만주순회 보고회를 열었다. 만주 동포의 비참한 생활상을 토로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농민호조 결성 및 만주 군벌과 일본 간의 삼시협정 실태에 대해서도 보고했다. 길림강연회에서 체포되었다가 상해 교민단과 한국노병회의 도움으로 풀려난 이야기도 했다.
이날 보고회가 끝나고 조상섭의 집에 안창호를 비롯해 차리석, 이유필, 선우혁, 송병조 등 흥사단 동지들이 모였다. 수양동우회 소식을 접하고 ‘민족유일당과 흥사단 입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차리석이 말문을 열었다. “수양동우회에서 합법적 정치운동론이 대두되면서 정치단체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습니다.”
“조병옥과 주요한이 수양동우회 규약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답니다.” 이유필이 말했다.
“춘원은 개인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으나, 단체는 안된다고 했답니다.” 차리석의 말했다.
안창호는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미주방문 전 북경에서 8일 동안 비밀로 회동했던 이광수를 떠올렸다. 그때 이광수는 자신의 「민족적 경륜」을 동아일보 논설로 게재한 일로 도산을 욕보인 꼴이 된 것 같아 죄송하다고 했다. 안창호는 참정과 결사는 다르다고 못 박으며 일본과 타협하는 자치운동은 흥사단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분명히 했다. ‘건강은 호전되었을까? 몸이 건강해야 하는데....’
“조병옥과 주요한 동지는 수양동우회가 대립과 충돌을 각오한 합법적 정치결사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으로 파악한 듯합니다.” 이유필이 말했다.
“차라리 수양동우회 개인들이 별도의 정치결사로 혁명당을 따로 결성하는 것은 어떨까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송병조가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안창호는 고개를 끄떡였다.
“수양동우회는 흥사단조직으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선우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날 흥사단 동지들은 9월 중 주요한을 상해로 불러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1927년 9월 16일 주요한이 상해로 왔다. 안창호와 차리석이 회동했다. 안창호는 수양동우회 동지들의 안부를 물었다.
“오정수, 김윤경, 이용설, 이윤재 등은 반대합니다. 아직은 인격훈련과 단결에 전념해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주요한이 대답했다.
차리석이 주요한에게 물었다. “춘원은 몸이 많이 나빠져서 대외 활동과 회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약법 개정 작업에서 빠진 것입니까?”
차리석은 안창호가 이광수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이광수의 논설로 인해 안창호에 대한 국내 지사들의 인식이 따갑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차리석은 생각했다. ‘그러나 도산은 춘원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건강해져서 안창호의 목소리가 아닌 춘원 자신의 철학으로 여론의 불신을 딛고 일어서길 바라고 있다.’
주요한이 대답했다. “춘원을 대신하여 정인과가 규약개정위원회(회진흥방침연구위원회)에 위원으로 보선되었습니다. 정인과에 의하면, 미주에서도 곽림대나 최희송 등이 흥사단이 혁명단체로 전환하여 정치결사 운동을 할 때가 온 것 아니냐고 했답니다.”
차리석이 말했다. “원동에서도 사회주의 단체로 전환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의견이 나왔습니다. 주요섭이나 김복형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안창호가 입을 열었다. “흥사단은 혁명당이 될 수 없소. 수양동우회 활동은 실력양성 단체 기능을 유지해야 하오. 수양이란 혁명 준비를 위한 인격훈련을 의미하오.”
차리석이 안창호의 말에 첨언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수양동우회가 민족혁명운동 조직으로 전환되는 것은 국내상황에서 또 다른 화를 가져오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단결이 깨질 수 있습니다. 이미 신간회가 활동하고 있으니 정치결사(유일당)에 가입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가 될 것입니다.”
안창호가 말했다. “내가 말이오, 만주에서 정치 목적의 결사체를 결성하는 수많은 단체를 보았소. 조직들 대부분이 우두머리의 판단에 휘둘려 단체의 수명이 짧습디다.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결국은 파벌로 번지고 하는 꼴을 겪고 있소이다. 통합, 통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역사에 오래 남는 인격 혁명단체, 종교나 정파를 초월하는 사회 대공에 입각한 단체. 흥사단은 그러한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수양동우회도 그러기를 바라오.”
주요한은 사회주의 단체로 전환해야 한다는 동생 주요섭의 의견을 보완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회주의 단체를 표방하는 것은 국내에서 아직 무리입니다. 하지만 청년층의 관심을 끌려면 일본과의 대립과 충돌을 각오한 합법적 정치 운동단체라야 합니다. ‘흥사단주의’를 확산하려면 학생층과 노동자농민층의 관심도 중요합니다. 이들이 수양동우회로 모여들 수 있는 명분은 항일 정치결사라고 생각됩니다.”
차리석이 말했다. “새로운 세대와 계층을 수용할 수 있는 단체로 전환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신민회 때는 청년학우회였지요. 청년학우회가 오늘날의 흥사단이 된 셈이군요. 하하. 이제 우리가 다시 청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흥사단이 청년단체로 지속성을 가지려면 뜻한바 수양동우회 규약개정은 필요한 듯합니다.”
안창호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좋소. 청년학생층의 유입이란 말에 굳었던 마음이 녹았소. 청년층의 혁명 투사 훈련을 도울 수 있는 최선책을 찾아봅시다. 나의 분명한 입장은 수양동우회가 정치문제에 나 몰라라 하라는 뜻이 아니요. 수양동우회는 인격 혁명으로 투사자격을 훈련하는 단체란 말이지. 그런 의미로 이번 규약개정 때 ‘수양’이라는 이미지를 벗는 것도 중요합니다. ‘수양’이라는 두 글자가 실력양성에만 안주하는 듯 인식되는 것은 못마땅하오. 사회 대공을 이루려는 민족혁명에 개인의 수양이 걸림돌이되면 안 되겠지. 주 동지는 돌아가서 논의를 계속해 주세요.”
“네, 선생님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주요한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