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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12. 2024

2장, 적은 인구 많은 죽음 (1)

모래바닥 없는 놀이터

 열세 살이 보기에는 너무 이른 광경이었다. 1988년 1월, 이선아 양은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삼촌 댁에 방문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섯 사람이 같이 누워 있었다. 각각 삼촌과 삼촌의 딸 둘, 숙모와 숙모의 여동생이었다. 그 중에서 숙모와 숙모의 여동생은 위중한 상태였고, 삼촌과 딸 둘은 이미 죽어 있었다. 서른세 살 삼촌과 열 살도 되지 않은 사촌동생들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이 이선아 양이었다.1) 1988년 대한민국은 민주화도 이루고 올림픽도 열었지만, 아직 연탄가스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8, 90년대에는 지금보다 많은 청년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1988년 한 해 동안 20세에서 39세 청년 1,017명이 연탄가스를 포함해 각종 유독한 물질에 중독되어 사망했다.2) 의도치 않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은 청년도 매년 천 명 씩 나타났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8년에는 청년 3,872명이 교통사고로 죽었고,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인 1996년에는 무려 청년 6,433명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청년 인구가 많았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청년이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받지 못했다. 


 그런 옛날 청년과 비교하면, 요즘 청년은 굉장히 안전하게 사는 편이다. 2022년에 유독한 물질 탓에 죽은 청년은 고작 46명에 불과하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죽은 청년은 409명 뿐이다. 실수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는 청년도 90년대에 비해 90% 이상 줄었다. 이렇게 곳곳에서 죽음을 예방한 덕에 전체 사망자도 크게 줄었다. 1996년에 사망한 청년은 총 23,227명이었지만, 2022년에 사망한 청년은 그 3분의 1 수준인 7,184명이었다. 투박했던 30년 전과 다르게, 지금 우리나라는 우레탄으로 바닥을 포장한 놀이터가 된 셈이다. 


 분명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얻었다. 기적처럼 경제를 성장시키고, 전국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불의의 사고로 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외에도 여러 통계가 우리나라의 좋은 실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적이 더 나빠지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청년 자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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