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수단
2014년 여름, 휴일인데 점장이 전화했다. 근무시간을 하루 10시간으로 올리고 대신 하루를 더 쉬라는 이야기였다. 점심시간도 20분 밖에 안 주면서 2시간을 더 일하라니,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가 원한 건 하루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는 거였는데, 점장은 정반대로 결정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점장은 단호했다. 힘겹게 근무시간을 조정했으니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두라고 했다.
나는 내 처지를 새삼 실감했다. 집안 개인회생은 끝나지 않았다. 무슨 소리를 듣고 어떤 대우를 받아도 나는 일해야 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일했다가는 내 마음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처음으로 문제에 완전히 갇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때문에 개인회생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숨을 들이마시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미 머리가 멈춰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등이 땀에 젖었고, 하도 물어뜯어서 엄지에서 피가 흘렀다.
그 날 저녁, 나는 노트북 케이블을 숨기고 안방에 있는 작은 화장실로 갔다. 자기 방에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동생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빠르게 걸었다. 화장실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거울에 얼굴이 비칠 틈도 없이 케이블로 매듭을 만들었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나는 화장실 문에 달린 맨 위 경첩에 케이블을 걸쳤다. 허둥대느라 제대로 고정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케이블이 길었다. 매듭이 내 가슴 위치까지 내려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매듭에 밀어넣었다. 등 뒤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중력에 맡겼다. 목젖이 케이블을 짓눌렀다. 나는 입술을 물고 기침을 참았다. 나는 죽겠는데 매듭은 느긋했다. 계획대로라면, 매듭이 뒷목까지 조이면서 손쓸 틈도 없이 기도를 막아야 했다. 하지만 고무가 고무를 긁으면서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몇 초나 견뎠을까. 나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몸에 붙은 불을 끄 듯이 매듭을 풀었다. 그제서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입가에는 침이 묻어 있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전등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얼굴에 쏠린 피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못생긴 얼굴이 더 흉해 보였다. 호흡이 조금 차분해지자 수치심, 억울함, 좌절감,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를 감정이 명치를 짓눌렀다.
나는 적당히 세수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케이블을 침대에 던지고 한참 울었다. 책을 사는 것도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괴로운 삶에서 벗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밖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 나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자실시도는 이렇게 실패했다. 나는 죽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만 스무살에 온몸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