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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10. 2024

1장, 절벽 끝에서 (4)

강박의 순기능

 사실 자살까지 시도할 필요는 없었다. 그 때 경제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는 많았다. 빵집을 소개받을 때와 다르게 나는 성인이 되었고, 의도치 않게 아르바이트 경력도 얻었다. 개인회생 변제금이 밀리지 않게 빨리 자리를 찾아야 했지만, 그렇다고 빵집을 절대 그만두면 안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3일 굶은 사람처럼 모든 고통을 당장 끝낼 방법만 갈구했다. 그 결과가 한 여름밤의 바보짓이었다. 이후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첫 실패가 떠올라서 자살을 시도하지 못했다.


 나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지난 일을 되돌아 봤다. 수치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을 느꼈지만 왠지 모르게 이전만큼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새로운 일상을 준비했다. 우선 빵집을 그만뒀다. 당장 사람이 급했는지 빵집 점장이 뒤늦게 붙잡으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말 간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다.


 나는 빵집 경력을 활용해서 2주 만에 다이소 파트사원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빵집에서 일할 때와 다르게 다이소에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여전히 죽고 싶다는 생각과 불안감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친절하게 대해 준 직원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근무시간이 주 6일 하루 6시간이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나한테는 휴일보다 휴식시간이 간절했다. 다행히 최저시급이 오른 덕에 근무시간이 줄었어도 집에 똑같이 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도 여유가 남았다.


 그 여윳돈으로 나는 책을 샀다. 제목과 목차가 그럴싸하면 일단 구매하고 봤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이해해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쩌다가 죽을 결심까지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물어 볼 사람은 없었고, 인터넷은 못미더웠다. 남은 것은 책 뿐이었다. 물론 집중력이 떨어져서 책을 바로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책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 몇 주가 걸린 적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강박적으로 책을 읽었다. 사람에 따라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기 위해 이성적인 분석에 집착한다던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책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2022년 여름 즈음이었던 것 같다. 2017년 2월에 나는 군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현역부적합 심사를 통해 전역했다. 군 병원에서 몇 개월 동안 항불안제를 먹었고, 밖에서도 신경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받았다. 괜찮아진 줄 알고 멋대로 약을 끊은 적이 있지만, 그 뒤로 한 번 크게 데여서 잊지 않고 약을 챙겼다 약의 힘 덕분인지, 호흡이 거칠어지는 증상이 많이 가라앉았다. 머리도 조금 맑아진 듯했다. 그제서야 나는 두꺼운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집중력이 한순간에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내가 느끼기에도 답답할 정도로 책 읽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분명 성과는 쌓이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자살에 대한 이해였다. 나는 자살도 엄연히 과학적인 연구 분야라는 사실을 배웠다. 자살은 결코 '택선'이 아니었다. 고 임세원 교수가 저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에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또한 나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자살 문제의 심각함이 달라진다는 점도 발견했다. 우리나라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은 잘 사는 세상에서 나 혼자 버려진 것만 같았는데, 나랑 비슷한 처지인 청년 수가 우리 빌라에 사는 인구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죽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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