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닥 없는 놀이터
열세 살이 보기에는 너무 이른 광경이었다. 1988년 1월, 이선아 양은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삼촌 댁에 방문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섯 사람이 같이 누워 있었다. 각각 삼촌과 삼촌의 딸 둘, 숙모와 숙모의 여동생이었다. 그 중에서 숙모와 숙모의 여동생은 위중한 상태였고, 삼촌과 딸 둘은 이미 죽어 있었다. 서른세 살 삼촌과 열 살도 되지 않은 사촌동생들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이 이선아 양이었다.1) 1988년 대한민국은 민주화도 이루고 올림픽도 열었지만, 아직 연탄가스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8, 90년대에는 지금보다 많은 청년이 안전사고로 죽었다. 1988년 한 해 동안 20세에서 39세 청년 1,017명이 연탄가스를 포함해 각종 유독한 물질에 중독되어 사망했다.2) 의도치 않게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은 청년도 매년 천 명 씩 나타났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8년에는 청년 3,872명이 교통사고로 죽었고, 외환위기가 일어나기 전인 1996년에는 무려 청년 6,433명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청년 인구가 많았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많은 청년이 마흔 번째 생일을 축하받지 못했다.
그런 옛날 청년과 비교하면, 요즘 청년은 굉장히 안전하게 사는 편이다. 2022년에 유독한 물질 탓에 죽은 청년은 고작 46명에 불과하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죽은 청년은 409명 뿐이다. 실수로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물에 빠져 죽는 청년도 90년대에 비해 90% 이상 줄었다. 이렇게 곳곳에서 죽음을 예방한 덕에 전체 사망자도 크게 줄었다. 1996년에 사망한 청년은 총 23,227명이었지만, 2022년에 사망한 청년은 그 3분의 1 수준인 7,184명이었다. 투박했던 30년 전과 다르게, 지금 우리나라는 우레탄으로 바닥을 포장한 놀이터가 된 셈이다.
분명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얻었다. 기적처럼 경제를 성장시키고, 전국에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불의의 사고로 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 외에도 여러 통계가 우리나라의 좋은 실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실적이 더 나빠지는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청년 자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