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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Nov 09. 2024

1장, 절벽 끝에서 (2)

막다른 길

 얼마 안 가서 상황이 또 한 번 급박해졌다. 2010년에 유일한 소득원이었던 아빠가 쓰러지고 나서, 엄마는 시청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다. 그 사이에 아빠는 식물인간 상태로 1년 정도 누워 있다가 죽었다. 아빠는 일하다가 쓰러졌지만 산업재해보험 헤택을 받을 수 없었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안 한 것이 문제였다. 유산도 없었다. 재산 없이 빚만 3천만 원 넘게 있었다. 갚을 능력이 없던 우리 집은 상속을 모두 거부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소득이 불안정헀던 탓에, 아빠는 엄마 신용으로도 생활비를 충당한 모양이었다. 그 빚도 천만 원 단위로 쌓여 있었다. 


 엄마는 혼자 이자에 생활비까지 다 감당할 수 없었다. 2011년 겨울부터 시급이 좀 더 높은 대형마트에서 일하기는 했지만, 경력이 단절된 중년 여성이 당장 충분한 월급을 받을 수는 없었다. 나라에서 주는 유족 연금도 그리 많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부족한 돈을 또 대출과 신용카드로 충당해야 했다. 이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고 나서 저 카드로 그 빚을 갚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다 보니, 카드대금과 이자가 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불어났다.


 결국 2012년 겨울에 엄마는 직원 복지제도를 통해 개인회생 절차를 진행했다. 확실히 개인회생 변제금을 감당하는 편이 빚과 이자를 마냥 떠안고 있는 것보다 나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엄마 혼자 감당하기에는 무거웠다. 누군가는 5년 동안 최소 50만 원 씩 생활비를 보태야 했다. 누구도 매달 50만 원이라는 큰 돈을 거저 주지 않을테고, 두 형제 중 동생은 갓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니, 남은 건 나 하나였다. 


 사실 나도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우선 열아홉 미성년자였다. 미성년자가 학교도 안 다니며 일한다고 하면, 어느 곳도 선뜻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정신건강이 나빴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마자 호흡이 거칠어 지고 온몸이 굳는 것 같았다. 학교도 견디지 못했는데, 아르바이트를 견딜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주변 사람은 내 문제를 전혀 몰랐으니, 나는 변명할 여지 없이 일해야 했다. 어차피 일하지 않으면 잘 곳을 잃을 수 있었다. 나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척하며 곧바로 일자리를 찾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일할 곳마저 직접 고를 수 없었다. 주변 친척들이 지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기를 강권했다. 모르는 사람 밑에 있는 것보다, 아는 사람 밑에 있는 게 더 낫지 않곘냐는 이야기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친적의 지인이 운영하는 빵집을 소개받았다. 근무강도는 만만치 않았다. 근무시간은 주5일 8시간이었고, 종종 하루 한 두 시간 씩 추가로 일해야 했다. 손님도 많고, 외워야 할 것도 많았다. 점심시간은 20분 정도였다. 다른 직원은 1시간 동안 쉬고 왔지만, 나는 20분을 넘기면 혼쭐났다. 


 매장은 바쁘게 돌아갔지만, 나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잔실수가 많았다. 계산을 틀리고, 주문을 잘못 받고, 도넛을 깨끗하게 튀기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실수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욕했다. 스트레스 받게 하면 험한 일을 하는 남편에게 일러서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었다. 불안감은 더 심해졌고, 집중력은 더 떨어졌다. 민폐 끼치기 싫어서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자퇴할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이 망가진 채로 1년 반을 버텼다. 이 때부터 내 일기장에는 죽고 싶다는 이야기가 늘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나는 근무시간이라도 줄여 보려고 했다. 그래도 점장이 친척의 친구이니, 조금은 관대하게 대해주지 않을까하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물론 점장에게는 수능을 준비해야 한다고 둘러댔다. 나도 뭔지 모르는 증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아파서 오래 일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점장이 계속 쓸 리 없었다. 나는 한 달 넘게 연락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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