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덴마크 왕자 햄릿은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한다. 아버지의 혼령이 알려준 것처럼, 숙부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와 어머니를 빼앗은 범인이었다. 진실을 안 햄릿은 큰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어쩌면 영어 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를 읖조리면서, 햄릿은 한참 삶과 죽음 사이에서 저울질했다. 저 문장 뒤로 긴 대사가 이어지지만,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고통을 견디며 사는 것과 죽는 것,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까. 날카로운 송곳 하나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왜 이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할까.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과연 햄릿에게 선택권이 있었을까. 햄릿의 대사는 삶과 죽음 중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선택권이 없는데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햄릿은 정말 날카로운 송곳 하나로 삶을 끝낼 수 있었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여기는 듯하다. 만약 2024년 5월 이전에 덴마크 왕자가 자살했더라면, 언론은 왕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헤드라인에 올렸을 것이다. 5월까지는 자살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돌려서 말하는 게 언론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모방 자살을 막기 위해서였겠지만, 마치 자살사망자가 극단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사 밑에 달리는 댓글은 더 노골적이다. 어떤 기사를 보던, 마치 자살사망자가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했다고 이야기하는 댓글이 꼭 있다. 특히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의 자살 기사에서 자살사망자의 의지력을 탓하는 댓글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죽음을 선택하는 건 본인 탓이다. 의지가 약하거나. 책임감이 없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흥청거리다가 감당 못하거나."1)
몇몇 악플러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사실 자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자살사망자를 탓하지 않는다.2) 자살의 원리를 알고 있으니, 자살사망자에게 무능이나 무책임 같은 위험한 낙인을 찍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 태반은 자살을 이해하지 못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자살실태조사를 보면, '자살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항목에 응답자 65.6%가 동의했다.3) 강하게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0.7%에 불과했다. 청년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항목에도 54.2%가 동의했다.4) 여기에는 세대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자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자살사망자의 선택을 탓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이란 여전히 편리한 탈출구로 통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호하다. 햄릿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햄릿은 자살하지 않았고 그래서 비극이 이어지지만, 햄릿이 자살 대신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살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고, 일반적으로 사람은 그 어려운 일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