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햄릿이 살아야 했던 이유 (2)
잊혀진 본능
자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에는 낌새만 맡아도 고개를 돌렸을지 모를 유독한 가스를 끝까지 들이마셔야 한다. 또는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만한 곳에서 죽을 때까지 깨지 않을 만큼 수면제를 삼켜야 한다. 가스나 약을 구하지 못했다면, 굵은 핏줄에 닿을 때까지 깊숙이 칼을 찔러넣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살한 사람의 절반이 나처럼 목을 맸다.5) 이 중에서 어떤 방법을 고르든, 자살하려는 사람은 모든 생물의 근본 욕구와 싸우며 자기 자신을 치명적으로, 확실하게 공격해야 한다. 맨정신에서는 1분만 숨을 참아도 죽을 것 같은데, 누가 저런 고통스러운 행동을 아무때나 '선택'할 수 있을까.
이런 자연스러운 사실이 자살 문제 앞에서는 자주 잊혀진다. 사람도 동물이다. 모든 동물은 맹수의 송곳니에 목덜미를 물린 상황에서도 살려고 발버둥친다. 생존은 모든 동물의 근본 욕구이고, 자살시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해치는 일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 두려움은 죽기 직전까지 가서도 사라지지 않는다.6) 죽기 위해 태어나는 생물은 없고, 사람은 자신을 해칠 능력을 타고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한창 자살을 시도하는 와중에도 망설인다. 예를 들어, 칼로 자살한 사람의 몸에는 '주저흔'이 자주 발견된다.7) 주저흔이란 이름 그대로 상처 입히는 일을 주저하는 바람에 여러번 시도하다가 생긴 상처를 말한다. 주저흔이 있다는 말은 한 번에 치명적으로 공격하지 못해서 여러 번 공격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칼로 자신을 찌르는 와중에도 생존 욕구를 거스르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2장에서 본 것처럼, 자살사망자는 언제나 자살시도자보다 수가 크게 적다. 1 대 20, 혹은 그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 자살이 정말 쉬운 선택이었다면, 자살사망자 수와 자살시도자 수의 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을 것이다. 자살 생각은 있지만 시도하지는 못한 사람까지 더하면 격차는 훨씬 불어날 것이다.
안락사 기계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때나 자살을 선택할 수 있다면, 굳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가며 기계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다. 진심으로 삶에 가망이 없다고 여긴다면, 칼을 쓰던 매듭을 쓰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죽기 위한 특별한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막상 기계를 앞에 두고도 적지 않은 사람이 망설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생존 욕구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다. 정신과 의사 고 임세원 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8) 따라서 자살은 결코 편리한 선택일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살해서 죽은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일반적으로는 누구도 생존 욕구를 완전히 꺾을 수 없고, 그래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한 편으로는 도움받고 싶어한다면9), 대체 누가 어떻게 죽음을 앞당기는 것일까. 그 핵심에는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오작동이 있다. 술에 잔뜩 취하면 겁이 없어지는 것처럼, 특정 조건이 갖춰지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생존 욕구를 거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