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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완 Dec 15. 2024

3장, 햄릿이 살아야 했던 이유 (5)

모래주머니라는 위험한 생각

 2017년 겨울, 공무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5시간 동안 앉아서 4페이지도 공부하지 않았다. '학력도 경력도 없으니, 나한테는 공무원 뿐이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되뇌면서도, 나는 공무원 시험과 아무 상관 없는 심리학, 정치철학 관련 책을 읽었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그만 뒀지만, 잡념이 넘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잡념 내용은 매번 똑같았다. 만에 하나 합격한다고 했을 때, 그 다음에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우선 매일 출퇴근 시간에 만원 전철을 탈 것이다. 똑같은 사무실에 출근해서 말도 안 되는 지시나 민원을 상대할 것이다. 갑갑하고 부조리한 직장문화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러고는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들 것이다. 이런 생활을 연금 받을 때까지 반복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뉴스에 나온 서울시 공무원처럼 은퇴하기 전에 과로사할지도 모른다. 돈을 써가며 고통스럽게 공부한 보상이 고통스러운 직장 생활이라면,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일까.


 돌이켜 보면 매번 비슷한 고민에 빠져서 일을 그르쳤다. 수능을 공부할 때도 그랬고, 일본어 자격증을 공부할 때도 그랬다. 인생을 개척해 보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이 재난 알림이 울렸다. 재난 알림은 번아웃, 산업재해, 직장 내 따돌림 등 온갖 위험한 일을 너무 빠르게 경고했다. 나는 하루 종일 머릿속 재난 알림을 상대하느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소모하다가 공무원 시험에서 두 번 떨어졌다. 둘 다 과락이었다.


 성적표를 받고나니 여름이 다가왔다. 나는 구석에 몰린 기분이 들었다. 시험도 떨어졌고, 모은 돈도 떨어졌다. 이제와서 다른 일을 준비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을 준비하든, 또 불안감을 상대하다가 지쳐서 실패할 것 같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심리상담사를 찾자니, 어떤 상담사를 언제까지 만나야 할지 몰랐다. 애초에 심리상담사를 만날 돈도 없었다. 누가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우리 집의 모래주머니가 되어버렸다. 


 오랜시간 취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비슷한 감정을 느껴 봤을지도 모른다. 이런 감정은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사람은 누구나 유능해지고 싶어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 모든 사람은 이런 '유능감 욕구'를 기본적으로 타고난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유능감 욕구를 '기본 심리 욕구'라고 부른다.36) 기본 심리 욕구는 식욕이나 수면욕처럼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자신이 가족이나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삶의 의욕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런 유능감 욕구가 좌절되면, 사람의 마음은 명치가 아플 정도로 짓눌린다. 단순히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괜한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결론으로 도약하게 될 수 있다. 토머스 조이너에 따르면, 이런 인식된 짐스러움이 자살 생각을 일으킨다.37) 더이상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무능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치닫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자살자의 유서를 보면 자신의 무능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사과하는 내용이 많다. 2012년에 대구에서 자살한 한 고등학생은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유서 곳곳에 남겼다. 당시 유서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그 고등학생이 심각하게 자신을 책망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분석했다.38) 2017년에 옥산휴게소에서 자살한 20대 공시생도 부모님께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39) 들어가는 말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여러 번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탓에 큰 비용을 부담해 준 가족에 죄책감을 느낀 듯하다. 2015년에 서울신문이 여러 전문가와 분석한 우리나라 노인들의 유서에도, 가족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문장이 많았다.


"내 왼팔에 마비가 온지 오래다. 치료를 하려니 너무 많은 돈이 필요해 부담이 클 거 같다. 제사도 산소도 다 필요 없다. 화장만 해서 가루만 날려다오."

- 어느 70대 노인40)


 이렇게 짐스러움이 드러난 유서 중에서 우리나라에 큰 충격을 준 사례는 송파 세 모녀의 유서였다. 서울시 송파구에 사는 어머니 박 씨는 식당에서 일하며 혼자 두 딸을 부양했다. 월급은 120만 원 정도였다. 남편은 2003년에 방광암으로 사망했다. 장녀는 당뇨와 고혈압 탓에 일할 수 없었고, 차녀는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보태다가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세 모녀는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했지만, 마땅한 제도가 없었다.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은 세 모녀에게 소득이나 일자리를 지원해 주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제도도 소용 없었다. 어쨋든 어머니 박 씨는 기준을 넘는 소득이 있었고, 장녀는 일할 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었다. 


 이런 와중에 어머니 박 씨도 빙판길에서 미끄러져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한 소득원마저 사라졌으니, 세 모녀가 살 방법은 없었다. 2014년 2월 26일, 결국 세 모녀는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세 모녀 곁에는 재가 된 번개탄이 있었고, 유서에는 신세한탄이 아니라 사과가 적혀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41) 절박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사과인 것을 보면, 송파 세 모녀는 인식된 짐스러움 탓에 고통받은 것으로 보인다. 무능한 자신들이 사라져야 주변에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고 넘겨짚은 것이 아닐까.


 국내 연구자들도 인식된 짐스러움의 위험함을 확인했다. 2010년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인식된 짐스러움은 청소년의 자살 생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무능해서 남에게 짐이 된다고 느낄수록, 청소년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에 떠밀려서 자살 문제에 깊이 들어서게 된다.42)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인식된 짐스러움은 청소년보다 노인에게 더 치명적이다.43) 노인은 돈을 벌지 못하거나 자주 아프기 쉽다. 그렇다고 국가가 노인을 충분히 보호하는 것도 아니니, 자연히 노인은 주변 사람에게 철저히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짐이 된다고 느끼기 쉬운 환경에서 살게 되는 셈이다.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은 데에는 인식된 짐스러움을 느끼기 쉬운 환경 탓이 매우 큰 듯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식된 짐스러움은 청년 자살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리나라는 번듯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이 매우 높은 곳이다. 그런데 최근 많은 청년이 사회생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가족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 취업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쉰 청년이 70만 명에 달하고,44) 아예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버린 청년은 10만 명 이상일 수 있다.45) 기준 높은 사회에서 사는 청년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면, 집안의 모래주머니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청년 자살자의 절반은 학생이거나 무직자였다.46) 적지 않은 청년이 노인 못지 않게 짐스러움을 느낄 법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하고, 자기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주변으로부터 기대받는다. 그런데 자신이 무능하다고 여기면,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짐스러움은 굉장한 정신적 고통이다. 무엇보다,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위험한 생각을 유발한다. 이 때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정말 무능한 것이 아니더라도, 또는 순전히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당사자가 그렇다고 믿으면 자살 생각이 떠오른다.47) 주변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은 살아갈 의욕을 느끼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의욕을 잃을 수 있다.


 다행히, 인식된 짐스러을 느낀다고 해서 곧바로 자살 시도로 치닫지는 않을 수 있다. 토마스 조이너에 따르면, 인식된 짐스러움을 느끼더라도 마음 속에 다른 기반이 있으면 삶의 의욕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 사람은 자신이 동료들에게 짐이 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주변에 차 한 잔 같이 마시면서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또는 사회생활에 지쳐서 일을 쉬고 싶을 때 적극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다면, 사람은 삶의 의욕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서로 보살핌을 주고받는 관계가 삶의 의욕을 받쳐 주기 때문이다.48) 여기서 토마스 조이너가 말한 자살 생각의 두번째 원인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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