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면 우산 들고나간다 vs 아니다

말을 하지

by 그리다 살랑

빗자루 먼지 떨어내듯 우수수 흩날린다.

베란다 창문에 부딪혀 이리저리 휘휘 거리다 둥실 떠올랐다가

다시 흥얼흥얼 해롱대며 소용돌이친다.


첫눈이다.


하교 시간에 눈이 오면 보통사람 엄마들은 우산을 챙기고 부랴부랴 아이 마중을 가더라.

눈이 오는데 왜 우산을 챙기지?


눈은 맞아야지!!


나는 엄마랑 같이 안 살 땐 안 살아서,

같이 살 땐 엄마가 일을 해서 마중을 나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눈 온다고 엄마들이 마중을 나가는 게 참 어색했다.


아들이 두세 살 때 눈이 아쥬 펑펑 내려 무릎까지 쌓인 날이 있었다.

꼬리 흔드는 강아지 마냥 좋다고 유모차에 아들을 태우고 나가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아이스라떼를 사 왔다. 근데 남편은 퇴근해서 왜 혀를 끌끌 차는 걸까. 유모차가 홀딱 젖은 게 문젠가 아이가 젖은 게 문젠가. 아이는 나보단 별로 안 젖었으니 혹시 날 걱정하는...? 뭐가 문제지.


남편은 집에만 오면 그렇게도 혀를 찬다(혀 뽑히겠어).

놀이터 모래바닥에서 뒹굴다 오면 바지나 신발에 모래 가득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럼 그렇다고 놀지 말으랴.

한참 뒤에 알았는데 놀이터에서 모래를 다 털고 가야 하는구나.

하긴 거실에 모래알갱이 서걱서걱 밟히면 나도 싫더라. 남편, 그래서 싫은가 보구나.

그래서 다음부턴 거실에 모래 안 떨어지게 현관에서 곱게 신발을 털었더니

현관에 모래 쌓인다고 화를 내네. 아 현관에도 털면 안 되는 거구나.

맞네 모래가 계속 쌓이면 여기가 모래놀이터 되겠지 이해했음.

남편 좀 미안하네? 말을 하지, 다음부턴 대상포진 걸리지 말고 말을 해 말을.

응? 말했다고? 한두 번 한 게 아니라고?

그 말도 해 다음엔.


근데 대상포진은 왜 걸린 거야 요즘 회사가 많이 힘들어?

아니란다(결혼 전엔 그렇게 힘들다면서).

맞다 맞다, 둘째 태어나고 너무 힘들었지.

아니란다, 둘째는 큰애 비해 껌이란다.

그럼 왜 그렇게 힘든 거야?

니가 제일 힘들단다.

... 몰랐네 말을 하지.


그러고 보니 숯덩이 같던 남편의 머리카락에 펄펄 눈발이 날리더니 함박눈이 되어 내려앉았다.

눈이 여기로 다 내렸구나. 정수리에 검은 털이 한 개도 안 보여. 결혼 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회사? 애들? 아니랬지, 나랬지.


눈이 오면 애들도 눈을 맞아야지, 왜 그걸 막는지 모르겠다.

눈 맞는 거 얼마나 재밌는데, 그 느낌 애들도 알아야지.

젖어서 감기 들까 봐 그런 건가. 남편, 우리가 젖어서 감기 들까 봐 그러지?

오케이, 알았다 혹시 내가 뒷정리 안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 그거 뒷정리 한 건데.


이제 눈이 오면 나도 우산 들고나가리라.

애들 말고 우리 남편, 하이얀 머리카락 더 하얘지지 않도록 우산으로 곱디곱게 막아주리라.


응? 나오지 말라고?

... 왜??

장갑을 못 찾아서 양말 끼고 나간 날






p.s. 쫄딱 젖은 이 날의 사진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구석에 박혀있니. 대신 이 사진으로 대체한다.



@ 제목사진출처_픽사베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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