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는 넘치는데 모성애는 왜 이 모양

젖 밖에 없는 년

by 그리다 살랑


“중학교 2학년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어쩐지.


애가 잠을 안 자거나 힘들게 할 때, 안쓰럽거나 안타깝기보다 일대일로 싸우고 싶더라. 진즉 알았으면 그렇게 애랑 맞짱 뜨고 싸우진 않았을 것 아닌... 가가 아닌가. 모성애는 길러지는 것인지 원래 있는 것인지, 나를 보면 원래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길러지는 거 같은데. 11년 육아해 보니 길러지는 것도 아닌가 보다. 그럼 뭐지.

살 얼은 초코시럽과 아삭하게 바스러지는 스낵의 완벽한 조화를 위해 냉동실에 정성껏 보관해 논 '콘초'를 이것들이 영혼 없이 덥석 덥석 집어삼키고 있을 때면 진심으로 화가 난다.(나만 그래?) 지금이야 육아 11년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태어난 지 며칠 안된 올망졸망 생명체가 벙끗벙끗거릴 땐 없던 모성애도 화르륵 불타올라야 되는데, 4번쯤 다시 데운 미역국이 차갑게 식어갈 때면 아오쌍 니미럴 나도 뜨거운 거 먹고 싶다고 그릇을 집어던지게 된다.

하루 세끼 3개월여 미역국만 먹었다. 남들은 질린다고 하는데, 나는 하루도 한 끼도 빼지 않고 매일 미역국만 먹는데도 핥아가며 먹었다. 아이가 젖을 물 시간만 되면 벌써 줄줄줄 새어 나오고 젖꼭지를 빨기 시작하면 유레카 샘이 터지듯 좍좍 뽑아 나오던, 나는 모유 부자였던 것이다.


_사진출처_픽사베이

모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젖이 얼마나 잘 나왔는지 28년 인생을 아~무 것도 잘하는 것 없이 우울하고 칙칙하게 살던 낮은 자존감이 이 유방에서 좀 치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이야 젖 잘 나오고 완모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조건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지만, 결혼식 후 우울이 극에 달했던 그때는 살림도 육아도 할 줄 아는 거 하나 없으면서 젖만 잘 나온다며 젖 밖에 없는 년으로 날 비하하기만 했다.


아이의 갈함을 나일 강의 범람처럼 넘치도록 채워준 유방의 위대함을 그땐 알지 못했다. 더욱이 그 위대함으로 남편의 꿈과 환상을 장장 15개월이나 충족시켜 줬는데 어찌 그리 자부심도 없이 무기력하게 쳐 누워있기만 했을까.

샤워할 때 가슴을 그러잡으면 사방팔방 쫙쫙 뿜어대는 젖 줄기들로 샤워기냐 젖줄기냐 두두두두 전쟁놀이를 하던 그 시간을 왜 웃으면서 보내지 못했느냐 말이다.


밥이나 할 줄 알았으면 또 몰라 엉망진창이었다.

친정엄마든 시엄마든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그야말로 맨땅에 유방 딛고 어리바리 고군분투 밥은커녕 화장실 한번 맘 편히 못 가는 날들이었는데 남편은 이번 주말도 출근이었다. 다행히 오후께쯤 퇴근할 거라 하여(한 끼도 못 먹었다네, 근데 나도야) 집에 먹을 거 없으니 순대국밥을 사 오라고 했다. 분명히 말했다, 집에 먹을 거 없다고. 혼자서 몇 시간을 애 보며 배곯으며 쩔쩔매다 드디어 영림 하신 순대국밥(남편 비켜), 숨을 헐떡이며 국밥을 풀어 재끼는데 아뿔싸,

순댓국‘밥’에 왜 밥이 없니.


촌스러웠던 우리 부부는 햇반의 존재와 활용도를 몰랐기에 당시 우리 집엔 그 편리한 햇반도 없었다. 왜 밥이 없냐며 밥! 밥! 밥! 을 울부짖으며 밥을 안 챙겨 온 남편에게 허기진 유방의 밀도만큼이나 포효했다. 그동안 나의 육아 횡포에 참을 만큼 참았던 남편도 드디어는 폭발하여 집에 왜 밥이 없냐며 밥은 있을 줄 알고 국물 더 달랬다며, 아니 밥 할 기운 있었으면 내가 힘들다소릴 했겠냐며, 서로 미친 듯이 혀 끄덩이 잡고 싸우다 결국 집 앞 차 안으로 가출한 순대국밥 사건. 제기랄, 순대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못 먹었다.


아 그러니까 검사 결과 성인 ADHD란다. 이 말하려고 한 건데.



_사진출처_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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