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 어떻게 치러졌는지, 엄마가 아닌 새엄마가 서신 걸 보고 엄마 쪽 친척과 동창 분들은 얼만큼 화를 내고 가셨는지, 사진은 어떻게 찍은 건지, 삐에로처럼 경직된 그날의 사진을 한 번도 다시 들춰본 적이 없기에 모르겠다. 식 후 바로 엄마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니 십 수 명의 눈길이 동시에 쏟아졌다. 엄마 쪽에선 엄마를 배신하고 새엄마랑 식을 치른 나쁜 년, 아빠 쪽에선 감히 엄마가 섰으면 좋겠다고 말한 은혜도 모르는 년이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침묵과 눈빛으로 뭇매를 맞았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고 자동차를 타고 내리고 배를 타고 내리고.
귀양길이 아니었으면 이 길이 어땠을까. 그래도 도착하여 본 푸르디푸른 바닷빛이 마음을 환기시켜 준다. 여행가방 안에 든 파란색 비키니 수영복이 어울리는, 화려하고 깔깔대는 장난기가 어우러진 섹시한 나, 그게 나인데(16년 전이니 무슨 말을 못해). 앞으로 긴긴 삶의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될까. 나답게, 살 수 있을까, 나다운 건 뭔데.
머리가 깨질듯하다.
아니, 수면제 5알을 먹었는데 왜 잠이 안 드는 거야. 나중에 알았지만 5알 가지곤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갯수였다. 60알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는 선배님(?)의 경험담을 듣고 나선 어디 가서 입도 벙끗하지 않는다(그래 놓고 지금 글로 동네방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죽고 싶진 않았다고요.
엄마 오지 말라고!!
결국 목구멍에서 이 말이 뱉어졌다.
내가 원한 게 이거였나. 이 말이 나오기까지의 얽히고설킨 배경들, 엄마와의 관계, 엄마라는 사람 등등 긴 변명의 말들을 여기에 다 적은들 내 마음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십여 년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수 십, 수백만 원 돈을 들여 오은영 선생님까지 만나가며 발버둥 쳐 알게 된 건,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토록 오래 약을 먹었던 이유는, 내가 바라던 게 그저 무탈한 결혼식이었다는 거.
도망치고 싶었다.
무겁게 짓눌렀던 부모님의 이혼과 우울과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깔끔하게, 하루빨리. 혹시라도 엄마가 서니 마니로 이 결혼식이 무산되면 난 무덤 같은 그 집에서 또다시 몇 년을 살아야 할 것이었다. 무덤에서 나갈 구멍을 찾았는데 또다시 막혀버릴까 두려웠다. 물론 그 구멍 밖도 광명은 아니었다. 길고 긴 우울과 죄책감의 터널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 친척 어른들 그리고 남자 친구와 예비시댁. 아무도 배려하지 못했다. 나는 나 살 궁리만 한 거야. 무덤에서 살겠다고 나만 뛰쳐나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