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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스락 Jun 27. 2024

남편과 뒷간

뭐야 또~

아빠, 얼른 나오세요. 아빠 진짜 나 급하다니까, 우리 집 화장실 앞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윽 ~ 냄새 아빠 뭐 먹은 거야? 나 못 들어가겠어, 엄마 나 급한데 화장실 냄새가 너무 심해! 


야~ 냄새 하나도 안나, 향기야 급하다며 얼른 들어가 히히~ 매번 아이들의 억울한 탄성과 그 모습을 즐거워하는 남편. 유독 우리 집은 남편이 화장실을 가면 화장실 밖에서 줄을 서고 발을 동동거리며 빨리 나와달라고 재촉한다. "아빠 나 바지에 싸겠어" "아니 맨날 내가 화장실만 가면 다들 난리야"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그런 날이다. 마법처럼 남편 화장실행은 누군가 무리 중에 한 사람이 하품하면 주위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하품하듯 식구들을 화장실로 끌어들이는 묘한 마력이 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은 화장실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책을 읽거나 유튜브를 보고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린다. 긴 시간 화장실을 점유하다 보니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이 화장실 문고리를 잡고 몸을 배배 꼬며 빨리 나와달라고 재촉 아닌 재촉을 하게 되었던 거였다.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과 함께하는 남편의 묘한 버릇. 화장실에서 손톱을 자르고 얼굴과 점에 뾰족 튀어나온 털을 뽑는다. 그것도 아니면 무협지를 정독하고 있다. 나도 기다리다 지치면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나가라고 손짓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가끔 웃길 때도 있다.


남편이 뒷간에 가면 일어나는 일.


나 샤워한다. 아빠 안돼 나 먼저 화장실 갈래,

여보, 샤워는 언제까지 할 거야? 나 급한데. 배가 너무 아프다고,

아빠 얼른 나와 나 더 이상 못 참겠어 ㅋㅋ (내가 먼저 들어갈래, 아냐 내가 먼저 급기야 서로 먼저 들어가겠다고 싸울 때도 있다.)


머리에는 샴푸 거품이 한가득,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남편 아, 뭐야 냄새, 똥을 싸면 어떻게 해? 아빠, 나도 많이 참았어. 그러니까 빨리 씻고 나왔어야지~

짓궂은 아들의 냄새 투척 후에도 남편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들의 바통을 넘겨받은 딸은 몇 번 안에 있는 아빠를 협박하고 달래더니 결국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빠, 적당히 씻고 나와 나도 아빠 샤워할 때 화장실 사용하기 싫어, 더 큰 소리를 내는 딸아이의 반응에 남편의 입은 잔소리를 뽑아내려다 삼켰을 것이다.


그렇게 아침저녁으로 화장실 앞에서 뿜어져 나오던 탄식이 요즘 썰렁하다.

화장실을 안방처럼 사용했던 남편이 없으니까, 문고리 잡고 배를 배배 꼬일 일도 없고,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는 일도 없이 그저 한산하다.


남편이 오는 주말이 되면 화장실 앞에 줄 서서 짜증 반, 신경질 반 묘한 흐뭇함이 섞여 있을 아이들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이 있고 없음은 사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것 같다.



PS : 어제는 별님이 염색을 해줬어요. 미루기를 반복하다 결국 당신을 기다리지 못하고 똥손인 내가 했네요.

처음이지만 나쁘지 않게 잘 됐는데 별님이가 아빠 오면 다시 해달라고 한다네요~ 역시 염색은 당신이 최고야!

여보, 나도 염색해야 해 주말에 당신 바쁘겠다. 어여 오셔요~


우리 가족 염색은 남편의 꼼꼼한 손끝에서 빛이 난다.  

이렇게 당신 빈자리가 느껴지는 걸 보면 당신, 우리에게 참 특별한 사람이야.



한 줄 요약 : 남편 뒷간 가는 날~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남편#뒷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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