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스락 Jul 03. 2024

하늘이 축복해 준 결혼기념일

선물 같은 아이들과 함께

새벽 운동을 위해 이중으로 문단속했던 어제의 꼼꼼함을 차곡차곡 풀어나간다. 혹여 아이들이 깰까 조심 또 조심. 문밖에 작은 박스가 문에 밀려 스르르 도망친다. 남편의 쇼핑 흔적이라 생각하고 신발장 위에 놓고 나의 길을 간다.


나에게 힐링이란, 새벽길, 새벽 수영, 온전히 혼자 느끼는 자유. 마음 편히 느끼는 유일한 자유 시간. 초조함도 불안함도 없는 나른하게 평온한 시간.


짧고 강렬한 나의 휴식 시간을 끝으로, 오늘의 나를 살기 위해 달린다.

유독 학교를 일찍 가는 딸아이 밥을 챙겨주고, 꿈나라에서도 뛰어다닐 것 같은 아들 볼에 얼굴을 비비며 속삭인다. "누나는 벌써 학교 갔어."


"엄마, 아침 뭐예요?" (아침 메뉴에 따라 아들의 기상 속도가 달라진다)

"소고기 구웠어." 감긴 눈이 번쩍 재빠르게 식탁을 찾아 앉는다. 아들 손을 잡고 학교 앞에 도착하면 "안아줘" 어리광 부리는 엄마를 못 이기는 척 안아주고 급히 건널목을 건너간다. 학교 교문을 통과하는 아들 뒷모습을 보며 나른한 걸음에서 빠른 걸음으로 회사를 향해 걷는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

"여보, 아침에 택배 봤어?"

아, 신발장 위에 택배 "또 뭐 시켰어,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출근했어"

"어, 그래 안 봤어?" 궁금하지 않다. 어제 처리 못 한 업무로 마음은 이미 회사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 중이다. 활기찬 남편 목소리에 찬물을 시원하게 끼얹고 전화를 끊었다.


업무 모드 전환. 간혹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날. 오늘이 딱 그런 날. 어쩌면 날씨마저 그런 날. 비가 바람이 잔뜩 성이 났다.


점심을 시켜 먹자는 후배에게 굳이 비를 맞으며 삼계탕 한 그릇 먹고 오자고 너스레를 떤다. 몸보신하고 와서 지지부진한 업무 종결을 다짐하며 빗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신발까지 흥건히 적시고, 축축함을 몸에 둘둘 둘러메고 비 맞은 생쥐 꼴로 돌아왔다. 윽! 찝찝한 상태로 일을 해야 한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어, 그림이 좀 이상한데 이거"

후배가 비에 흠뻑 젖은 꽃다발을 들고 엉거주춤 다가오면서 하는 말. "제가 드린 건 아니고요. 누가 주셔서"

"잉, 나한테 주는 게 맞아요" "네 우리 회사에 이름이 딱 한 분이라"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쑥스러워하던 후배는 멋쩍어하며 꽃을 전해줬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꽃 속에 메모지를 찾았다. 비를 피해 꼭꼭 숨겨둔 메모지에는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남편의 메시지. 아, 오늘 결혼기념일. 앗! 아침 남편의 전화를 그렇게 끊고 연락도 안 했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에 연락은 더 못 하겠다. 일단 급한 일 마무리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전화하자.


급하게 계획을 짜본다. 퇴근해서 아이들이랑 맛있는 거 먹고,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딸은, 운동 하러 갔고 아들은 이미 혼날 일을 몇 개 장착하고 대기 중. 이건 아니잖아. 아들아.


오늘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란다.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키고 다시 아들과 대치. 결국 울음을 터트린 아들. 요즘 엄마는 강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눈물을 보이는 너를 예전처럼 달래지 않고 기다린다.


치킨을 시키고 맥주 한 캔 준비하고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들은 여전히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딸 이 꽃 아빠가 보내왔어, 오늘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이야"

"뭐야, 12일 아니었어, 말을 하지"

"엄마도 잊어버렸어, 아빠가 보내온 꽃다발 보고 알았어"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 같은 아들.


"아들, 얼른 와 같이 먹자, 엄마 외롭게 먹게 할 거야"

얼룩진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한 아들은 찔끔찔끔 여전히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먹어봐" 치킨 다리를 입어 넣어주자 울면서 그걸 받아먹는다. ㅋ

"엄마, 결혼기념일이었어. 몰라서 미안해 그리고 화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도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엄마 나 서운했는데 그래도 이제 괜찮아"

(아들과 소원 들어주기 게임을 했는데 아들 소원이 현질이라 안된다고 오히려 화를 냈다.)




맥주 한 캔으로 널뛰던 마음 진정시키고 아이들 잠자리까지 챙기고 나니 찾아오는 여유. 아이들에게 뽀뽀하고 가슴속에 새겨둔 말을 건넸다.


"딸 예쁘게 잘 커 줘서 고마워"


"아들 엄마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남편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내년에는 나도 꼭 기억할게! 장담은 못 해~




나름대로 아이들과 뜻깊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널뛰는 기분과 그러지 못하는 체력으로 방황하는 마음 그 어디에서 허우적거리는 하루.

뒤엉킨 시간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일까?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한 하루를 보냈다.

여전히 치열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과 나!

오늘 기분은 먹구름 가득한 하루였지만, 빗속을 뚫고 삼계탕 한 그릇 먹길 잘했다.


여보야~~ 고맙다. 치열한 하루에 단비 같은 고마운 마음 선물해 줘서~

꽃다발과 무선 키보드 (글 쓰는 걸 아는 눈치 고맙소!)



요즘 나는,

부모로써의 성장통을 크게 겪고 있는 것 같다. 오늘 글벗 작가님의 필사 내용이 좋아 옮겨본다.

아이는 곧 어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이 앞에 펼쳐진 삶은 아이의 인생이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단단한 믿음과 농밀한 사랑 그리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를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해 주세요.


아이들 삶에서 내 삶을 찾으면 안 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지쳐갈 때 부족한 엄마라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 결혼 그 순간부터 아이들은 우리에게 선물이고 축복이었다. 무한대로 무작정 사랑을 주는 존재들 어쩌면 끊임없이 성장하고 노력하는 마음 한편에 아이들이 독력이 되는 부분이 있다. 엄마니까 엄마이기에 부족하지만 부족하지 않으려 고민하고 자책하고 고민하기를 반복한다.


남편과 나는 시행착오 안에서 성장해 가고 있다. 우리도 부모가 처음인지라 서툴고, 허점투성이다. 올해 결혼기념일은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사랑하는 별님아, 달님아,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 더 많이 웃고 살자. 사랑한다.


작년 결혼기념일 별님이 선물 (각인 팔찌) 와 결혼 10주년 남편 선물 내년에는 내가 챙겨요. 약속!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결혼기념일#아이들#고맙다#




 



  

이전 09화 남편과 뒷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