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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지식의 대통합)

통섭 -에드워드 윌슨-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과학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단위로 쪼개는 데 여념이 없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인슈타인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Consilience를 검색하면 통섭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이 영단어는 사실 영어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이 단어를 세상에 꺼낸 것은 세 사람이다.


첫 번째 이 단어의 사용자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었다. 그가 사용한 Consilience의 뜻은 더불어 넘나듦이었다. 최재천 교수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귀납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로 풀어 썼다. 휴얼은 Consilience뿐 아니라 Sientist 즉 과학자 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 단어의 사용자는 에드워드 윌슨이다. 그는 1998년 Consilience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다. 잊혔던 단어를 세상에 다시 끌어냈다. 부재는 지식의 대통합(THE UNITY OF KNOWLEDGE)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생물학과 심리학이 인지신경과학 또는 행동신경과학으로 거듭나고 있을 보고 학문의 미래를 설명하기 위해 Consilience를 다시 사용했다.


세 번째 사례가 가장 흥미롭다. 에드워드 윌슨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전, 그러니까 사전에 Consilience라는 단어가 없을 때 캘리포니아의 한 와인클럽에서 새로 출하할 와인에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했다. 와인의 이름은 Consilience로 정해졌는데 당시 그들은 입에 잘 붙는 신조어라고 생각하고 지었다. 그리고 와인이 출하되고 상품설명에 적힌 내용은 Consilience를 가장 잘 표현한 듯하다.


“Consilience는 한마디로 지식의 통일성'을 뜻한다. 이것은 옛날 어느 교수가 과학과 그 방법론에 관하여 가졌던 철학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과학을 이용하여 모든 것을 지극히 작은 단위들 로 쪼개는 데 여념이 없어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이 같은 관점을 잃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래야 모든 과학이 개념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와인에는 더할 수 없이 어울리는 말이며 우리 네 사람의 뜻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단어다. 와인은 바로 우주와 인간의 통일을 의미하며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이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http://www.californiareds.com/consilience.html-


아마 가장 이례적인 경우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책을 읽으며 감명 깊고 나의 투자에 도움되는 것들을 소개할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책의 본 내용(책의 본 내용 역시 매우 훌륭하며 앞으로 연재중에 소개될 예정이다)이 아닌 옮긴이 서문을 소개할 줄 몰랐다. 책을 읽으며 추천사나 옮긴이 서문을 챙겨 읽는 편이지만 이만큼 기억에 남는 서문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통섭을 너무 잘 설명했기에 꼭 소개하고 싶은 내용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유명한 곤충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이 하셨다. 평소 여러 학문을 아우르는 최재천 교수님의 서문이라 더 그렇다.


아인슈타인은 아널드 베를리너의 70세 생일에 그의 과학 학술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과학으로 증명된 사실의 영역이 엄청나게 확장되었고, 이론 지식은 모든 과학 분야에서 대단히 심오해졌다. 그러나 인간 지성이 이를 소화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연구자의 관심은 점점 더 좁은 구역에 갇히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한 가지에만 전문화된 결과, 과학을 하나의 전체로서 거칠게나마 파악하면서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연구 정신은 훼손당할 수밖에 없다. 성서에 상징적으로 표현된 바벨탑 이야기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






투자조작


통섭은 진화생물학자들로부터 다시 꺼내져서 나온 개념이다. 통섭이라는 개념을 자세하게 파고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존재하는가? 라는 논쟁까지 이어진다. 한 학문에서 파고들 수 있는 깊이의 끝까지 도달한 학문은 사실 거의 없다. 아직도 수많은 난제들이 각 학문마다 남아있다. 가끔은 이런 난제들을 풀어내는데 다른 학문과의 교류가 도움이 된다.


학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다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투자자로써 통섭의 중요성이다.


투자를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가지 뛰어난 장점을 지녔다. 그것을 무기로 투자 시장에 도전하고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의 변덕 앞에서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펀드회사인 롱텀캐피탈도 시장의 변덕을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졌다.


시장은 어떤 때는 수학을 요구하고, 또 어떤 시기에는 경제학을, 그리고 철학, 과학, 생물학, 인문학, 문학의 소양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가지 뛰어난 사람보다 여러 방면 두루 뛰어난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


하나의 학문으로 시장으로 바라보면 자칫 확신편향에 빠질 수 있다. 투자자의 뼈아픈 실수 중 하나는 결과가 좋았을 때 과정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결과가 나쁘면 과정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편향은 자칫 과도한 확신에 빠져들게 만든다.


투자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전 재무장관인 로버트 루빈은 세상에 확실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러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투자 시장에서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까? 사실 그렇지 않다. 마이클 모부신은 통섭과 투자에서 “실제로는 정보가 증가하면 대개 의사결정 과정에서 혼란만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통섭이 중요한 이유는 사색이다. 세상을 한 가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반드시 왜곡된다. 세상은 원인과 결과라는 값으로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다. 투자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수많은 원인들이 누적되고 영향을 미친다. 조금의 변화만 주어도 결과는 달라진다.


세상과 시장을 바라볼 때 조금 더 다채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좁은 시선에서 나오는 편향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랬을 때 찰리멍거가 말한 격자틀 정신 모형이 완성될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다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통합되어 있으며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을 분리하면 그들만의 고유한 존재의 이유가 손상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다시한번 곱씹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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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에드워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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