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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류성과 재귀적 피드백

소로스 투자 특장 -조지 소로스-

by 폴리래티스

독서조각


“경제학에서는 먼저 지식이 완전하다고 가정했고, 이 가정을 지탱하기가 어려워지면 더 왜곡된 가정을 내세웠습니다. 경제학은 마침내 합리적 기대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조지소로스가 독자적으로 만든 사고의 틀은 그를 세계 최고 투자자 반열을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조지소로스가 1950년대 런던 정경대학을 다닐 때 일이다. 그는 졸업을 일년 앞두고 교수를 지정할 수 있었는데 당시 큰 인상을 받았던 과학철학자 칼 포퍼를 지도교수로 지정했다.


칼 포퍼는 경험적 진실조차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지 소로스는 같은 시기 경제학을 공부하며, 경제학의 완전 경쟁 이론이 인간의 지식을 완전하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경제학 이론을 공부하는 것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경제학보다 철학 공부에 몰두했다. 이후 증권 분석가와 헤지펀드 매니저로 일하면서 자신이 만든 개념적 틀을 활용해 업계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 틀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자신이 만든 틀 또한 기존 철학자들의 논리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소로스는 스스로를 "실패한 철학자"라고 부른다.


조지소로스가 생각하는 핵심 아이디어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생각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속해 있을 때, 그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항상 부분적이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류성의 원리다. 두 번째는 이런 왜곡된 관점이 부적절한 행동을 낳기 때문에 그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재귀성의 원리다.


인간사, 특히 경제학에서 헛되이 확실성을 추구하다가 재귀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확실성 이야말로 인간사의 핵심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이론의 바탕은 균형 개념인데, 균형 개념은 재귀성 개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래서 두 개념은 금융시장을 완전히 반대로 해석한다.


오류성 개념은 더 명확하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전부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세상을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 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 더 어려워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복잡한 현상이나 개념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환원주의를 선택한다.


조지소로스의 재귀성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기능, 이를 인지 기능이라고 부른다. 다른 하나는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기능, 이것은 조작 기능이라고 부른다.


현실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람은 현실에 영향을 준다. 이 두 가지 기능은 동시에 작용하며 서로 간섭하게 된다. 이는 곧, 우리의 인지 기능이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충분히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조작 기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 완전히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결국, 의도와 행동 사이에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행동과 결과 사이의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역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생각은 사건 흐름에 영향이 미치고, 사건 흐름은 다시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영향들은 연속적이고 계속 순환하므로 서로 피드백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다면 현실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외부에서 오는 객관적인 현실과, 내부에서 나오는 주관적 현실이다.


결국 사람들은 불완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이런 행동의 결과들은 기대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조지소로스가 생각하는 인간사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투자조각


나의 투자 철학에 영향을 가장 많이 준 사람은 조지소로스와 마찬가지로 칼 포퍼다. 그가 말하는 과학적 사고는 어떠한 지식도 영원하지 않기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칼 포퍼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배웠지만 또 그를 통해 냉소와 비판을 구분할 줄 알았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되 냉소적이지 않고 장기적 낙관론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지소로스가 말하는 오류성과 재귀적 피드백에서도 나는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그의 철학을 알기전까지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투자 성향이 대단히 투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말하는 오류성과 재귀적 피드백이 나의 투자성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재귀적 피드백 관점에서 조지소로스의 투자성향은 투기적이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그를 투기꾼이자 사냥꾼으로 비난해도 그가 개의치 않는 이유기도 하다.


대단히 철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단어들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연재 글에서 꾸준하게 언급됐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런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에 결과를 예측해 100% 확률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지소로스의 투자성향은 다음 그의 말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나는 거품이 형성되는 모습을 발견하면 즉시 자산을 사들여 불난 곳에 기름을 붓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행동이 아닙니다.”


워렌 버핏은 자산시장의 거품이 형성되면 자산을 팔고 안전에 유의한다. 하지만 조지소로스는 다르다. 그는 버블에 형성되는 곳에 오히려 더 큰 자산을 쏟아붓는다. 누가 옳고 그른지 평가할 수는 없다. 성향의 차이일 뿐이다. 조지소로스가 버블장세에 자산을 투자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가 만든 재귀적 피드백 이론에 의해서다.


버블이 진행되는 과정 역시 현실과 인간의 피드백에 의해서다.


1. 어떤 자산에 좋은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이 투자를 시작한다.

2. 투자 금액이 오르면서 자산의 가격이 올라간다.

3. 가격이 오르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산을 매수한다.

4. 투자금이 커지면서 규모가 커지고 기업입장에서 자금을 융통하기 용이 해진다.

5. 자산의 가치가 계속해서 올라가자 사람들은 자산가치에 검증을 시작한다.

6. 이때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자산은 버블이 빠지면서 자산가치가 급락한다.

7. 또다른 경우가 있다.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어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투자금이 모여 회사의 가치가 올라가자 회사의 실적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되는 경우가 생긴다. (실적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산량 확대, 신제품 출시, 사업영역 확장 등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8.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친 자산은 이제 버블에서 하이퍼버블 진화한다.

9. 하이퍼버블은 더 많은 사람들은 끌어들인다.


이것이 조지소로스가 생각하는 금융시장에서의 재귀적 피드백이론이다. 인간사의 오류성이 버블을 만들고, 버블은 현실과 인간사이에 순환적 피드백의 연속으로 더 큰 버블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어도 생각나는 자산들이 많다. 많은 버블을 경험했지만 어째서 어떤 버블은 금방 꺼지고 어떤 버블은 오래 지속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조지소로스가 버블을 만들고 이를 투기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경제학에 만연한 효율적시장가설을 비판하는데, 당국이 재귀적 피드백이론을 이해하고 버블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거품이 너무 커질 위험이 있으면 규제 당국은 시장에 대응해야 합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아무리 박식하고 합리적이더라도 이들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조지소로스는 예측이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사람과 현실사이에서 어떤 영향들이 오고 가는지,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오류들이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그런 상호작용을 정확하게 이해했기에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에 영향을 받고 현실에 영향을 주는 투자자다. 자 이제는 단순하게 참여자를 넘어서서 현실과 인간의 피드백고리를 이해하고 이를 이용해서 투자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버블장세 투기를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조지소로스는 버블 장세가 얼마나 오래갈지 예측할 수 없고, 정부의 개입이나 다른 부정적 피드백의 영향에 의해서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역시 투자성향은 조지소로스보다는 워렌 버핏과 찰리 멍거에 영향을 받았기에 비싸다고 생각되는 자산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존경한다.


책의 부제처럼 인간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은 그저 결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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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 투자 특강

-조지 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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