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각또각 멀리서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털이 바짝 서는 기분, 발끝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눈을 부릅뜨고 입구를 응시한다. 곧이어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스르륵 미닫이문이 열렸다. 내가 기다리던 그녀가 들어온다. 나에게 익숙한 그녀가 내 공간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제주에서도 손꼽히는 예쁘고 맑은 김녕 바닷가, 한적한 바다마을을 등지고 작은 골목으로 들어간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민트색 미닫이문이 보이는 아담한 책방이 보인다. 하얀색 글씨로 '책'이라고 쓰인 간판을 확인하고 잠시 문 앞에 멈춰 섰다. 투명한 유리 안으로 보이는 책들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 햇빛이 스며드는 따뜻한 공간이 눈에 담긴다. 조심스럽게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
"아무도 없나? 잠깐 자리를 비우신 건가?"
가을 햇살이 유리창을 지나 책방 안의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따뜻함과 푸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책방에는 책들이 가지런한 가래떡처럼 차례차례 누워 있었다.
'책이나 보고 있어야겠다. 금방 돌아오시겠지'
이쪽 저쪽 홀린 듯 책을 뒤적이고 제목과 표지에 시선이 빼앗긴 순간.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대낮이라 안과 밖이 모두 보이지만 왠지 기분 나쁜 인기척. 갑자기 온몸에 털이 삐죽 솟았다.
'뭐지? 이 느낌은?'
"야아옹~"
"꺅~깜짝이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햐얀 바탕에 베이지색과 갈색이 적절히 마블링 된 털 색깔. 드문드문 섞인 검은색 털이 매력적인 고양이였다. 녹색 바탕에 금사가 섞인 귀족스러운 케이프를 하고 있던 고양이. 목에 달린 이름표를 보니 '고작가'라고 쓰여있었다.
"너, 이름이 고작가구나~ 고작가님~"
장난스러운 나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작가는 나에게 다가와 온몸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마치 아는 사람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애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고양이보다 강아지를 더 좋아하는 나지만 이상하게 끌리는 고양이. 나의 손은 이미 고양이 얼굴 앞에 있었다. 노란색 눈망울이 매력적인 고양이의 눈빛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고작가를 쓰다듬고 있었다.
'훗, 너 좀 치명적이구나'
계속해서 눈을 바라보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갖은 교태와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의 몸짓이 마냥 귀여웠다.
그냥 그뿐이었다.
작은 책방 안에 고양이와 나. 단둘뿐이었다. 다만 따뜻한 가을이 책방의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고양이와 나, 우리 둘 만으로 충분했다. 연애를 할 때 느껴지는 둘 만 있어도 행복한 기분, 딱 그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