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의푸른색 Nov 20. 2023

나를 데려가.

고양이로 환생한 남자친구 5화.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러그에 누워있는 고작가를 쓰다듬는 채원.


"너 이제 나랑 우리 집에 갈 거야"


"너네집? 나 어젯밤에 다녀 왔는데?"


"뭐라고?"


순간 채원의 동공이 끝이 없이 커다랗게 변하고 있다. 채원을 바라보던 고작가의 동공도 함께 커진다. 신비하고 오묘한 고작가의 눈동자 속으로 채원은 한없이 빠져들었다. 채원은 고작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러자 채원의 품을 파고드는 따뜻한 고작가의 체온이 전해진다.



"가자, 채원아"


말없이 채원의 손을 이끌고 인파를 가로질러 가던 그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귓가에 맴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꿈이라면 채원은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


채원에게 그는 그런 존재였다.






어둠이 조금씩 찾아들고 채원은 고작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우리 고작가 잘 부탁해요 채원 씨. 고작가... 잘 지내야 해, 채원 씨 말 잘 듣고, 집 나가지 말고... 나가더라도 일찍 돌아오고... 흐흑....

입맛도 까다로운데... 사료 통조림 츄르... 모두 비싼 것만 좋아해서... 이젠 제발 아무거나 먹고..."


지금 이 상황은 영화 '엽기적의 그녀'가 따로 없다.


"너무 걱정 마세요. 책방에 올 때마다 제가 데리고 올게요. 인스타그램으로 사진도 자주 올리고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책방지기의 품으로 파고들어 강아지처럼 코를 박고 가만히 있는 고작가. 마치 아기가 엄마 품에서 편안히 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고작가를 구조하고 임시보호를 하던 기간 동안 일희일비의 공간을 사랑으로 채워주었던 고작가. 그런 고작가에게 책방지기는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안녕 고작가...채원 씨에게 사랑받으면서 살아... 흐흐흑..."


그동안 정이 들어버린 고작가와의 인연은 여기서 일단락되지만,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방지기는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너무 슬프니깐... 집에 가서 막걸리나 마셔야겠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채원과 고작가를 보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던 책방지기는 서둘러 간판 불을 다.






채원의 차 보조석에 탄 고작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채원은 시트의 열선을 켜서 고작가에게 적당한 따스함을 주는지 확인한 후, 해안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둘 만 남은 차 안의 공기는 적막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살짝 긴장되는 채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잡아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어 버린 고작가. 어두운 도로를 달려 드디어 채원의 집 앞에 도착했다. 시동을 끄고 고작가를 바라보는 채원.



"도착했어..."


"... ..."


"고작가?"


"... ..."


"완전히 숙면을 취하시네요, 아이고 많이 취하셨네. 사장님 일어나세요."


장난스럽게 고작가를 깨우는 채원의 목소리를 듣고 고작가가 기지개를 편다.


"문 열어줘."


"너... 어떻게... 말을... 하는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자."



어리둥절한 채원은 차에서 내려 보조석 문을 열었다. 가벼운 점프로 차에서 내린 고작가는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채원의 집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우리 집 어떻게 알았어?"


"그걸 왜 내가 모를꺼라고 생각해?"


"그건... 내가... 알려준 적이 없으니깐."


"여전히 허당이야..."


"야!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문이나 열어 얼른."


"아.. 알겠어. 너~! 들어가서 보자. 완전 짜증 나!"



씩씩거리며 문을 여는 채원. 채원이 문을 열자마자 채원의 집으로 들어가 침대 위 가장 좋은 자리로 성큼 뛰어 올라간다.







"내려와, 거긴 내 침대야."


"니꺼내꺼가 어딨어. 이제 같이 살껀데."


"어이없다. 너. 고양이 주제에 집사의 침대를 넘봐?"


"네 자리는 저기! 저 러그 위야. 보이지? 얼른 내려가!"


미동도 없는 고작가를 보며 더욱 화가 치미는 채원이다.


"됐고,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깐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나 일단 씻고 올 테니깐 너도 쉬어."


"나도 좀 씻고 싶은데..."


"뭐래! 오늘은 그냥 자! 어디 은근 슬쩍 선을 넘어!"



버럭 화를 내고 욕실로 들어간 채원을 기다리는 고작가는 알 수 없는 미소를 띤다. 채원의 방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고작가의 눈에 바다가 그려진 엽서 하나가 보인다. 엽서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고작가는 생각에 잠긴다.



'저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네... 너도... 참... 미련하다...'








수건을 돌돌 말고 욕실에서 나오는 채원의 뒤로 하얀 수증기가 같이 밀려 나온다.



"아~ 살 것 같아!"


"너! 지금 수건만 걸치고 나온 거야?"


"그럼 수건만 걸치지 뭘 더 걸쳐야 해? "


"내가 여기 있는데 넌 부끄럽지도 않아? 남자 앞에서!"


"납자? 풋! 야, 여기 남자가 어디 있어? "


"뭐?"



털을 바짝 세우고 화가 난 고작가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고 동공을 확장시키며 최대한 위협적인 모습으로 채원에게 다가간다.



"네... 네... 무섭네요... 너~무 무서워서 꿈에 나오겠어요."


"그만해! 약 올리는거!"


"아... 네... 그만하... 푸하하하."


"너 지금 속으로 비웃었지."


"그.. 그럴리가 하하하"








고작가의 바짝 선 털이 귀여웠던 채원은 침대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얼음이 되어버린 고작가는 채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분에 못 이겨 코로 뜨거운 김을 뿜으며 노려본다. 그러던 고작가는 뭔가 결심한 듯, 갑자기 채원에게 달려간다. 멈칫하며 누워있는 채원에게 천천히 다가서는 고작가.



"왜... 왜 이래..."


"네가 하나도 안 무섭다며, 근데 왜 긴장해?"


"그건.. 그냥..."


"훗, 귀엽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고작가와 고작가 뒤를 뛰어다니는 채원. 둘은 지금 사랑놀이를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연인의 모습으로.







낮은 조도와 더 낮게 흐르는 재즈를 틀어놓고 채원은 잠을 청한다. 채원이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 침대 아래에 있는 고작가를 바라본다.



"채원아 나도 침대 위에..."


"뭐래! 절대 안 돼!"



단호한 채원의 말에 시무룩해진 고작가는 조용히 러그 앞으로 걸어가 동그랗게 몸을 말아 고단함을 내려놓고 쉬기로 한다.


피곤했던 채원은 금방 곯아떨어졌다. 혼자라 항상 밤이 무서웠는데 고작가 덕분에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암컷 고양이보다 낫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뭐랄까, 건장한 경호원이 집 앞을 지켜주고 있는 느낌이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채원을 침구 안으로 깊숙이 빠져들었고 곧이어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큭..컥...컥컥컥..."


"이채원. 코 고는 건 여전하네"


자는 채원을 바라보던 고작가는 슬며시 채원의 침대 위로 올라간다. 채원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낮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다가간다. 얼굴 옆에 앉아 가만히 채원을 바라본다.


'보고 싶었어...'



아련한 표정의 고작가는 그렇게 채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새벽을 맞는다.








둘만의 밤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 햇살이 조금씩 채원의 방을 에워싸기 시작한다. 5분마다 울리는 알림을 당연한 듯 꺼버리고 다시 잠을 자는 채원. 고작가는 뭔가 결심한 듯 슬며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불 끝 작은 공간을 파고드는 고작가. 낮은 포복 자세로 이불 속으로 조심히 들어간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채원이 깰까 봐 침을 꼴깍 삼켜본다. 어느덧 채원의 팔 가까이까지 오는데 성공한 고작가는 채원의 품에 안긴다. 밤새 채원을 바라봐서인지 고단함이 밀려오는 고작가는 채원의 익숙한 향기에 그대로 잠에 빠져든다.


징-징- 진동과 함께 다시 울리는 알람 소리. 채원은 물컹한 생명체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잠에서 덜 깬 상태로 눈을 감고 팔을 더듬어 품에 안긴 이 따뜻하고 물렁한 고양이를 더듬어 본다. 그러다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눈을 번쩍 뜬다.



"꺅! 너 뭐야. 언제 이불 속으로 들어왔어! 당~장 ~~~나가!"


"뭐 어제는 남자도 아니라며? "


"그.. 그건, 하여튼 저리 가라~고!"


"싫은데?"






갑자기 단호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고작가. 뭔가 작정한 듯이 채원의 품을 파고드는 고작가의 장난에 채원은 완전히 얼어버렸다. 채원은 고작가의 눈에서 그의 눈빛을 보았다. 채원이 가장 어려워하고 당황해하는 그의 차갑고 단단한 눈빛. 고작가는 그런 채원이 재밌기만 하다.



"이채원. 넌, 나 못 이겨. 그때나 지금이나."



채원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린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 그 심장 박동 수다. 채원의 품에서 점점 얼굴 가까운 곳으로 다가오는 고작가. 채원은 그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고작가는 지금 멈출 생각이 없다. 채원은 눈을 질끈 감는다. 채원의 심장소리가 귓가를 더 크게 때리고 지나간다.


지금 이 집에는 여전히 둘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