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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31. 2023

팀장보다 나이 많은 차장의 뒷심 (1)


우리 팀에는 팀장보다 나이가 많은 팀원 한 분이 있다.

게다가 세 기수 공채 선배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팀의 팀장이다.





그녀는 2002년 이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신입사원으로 사무실에 등장했을 때, 모두의 이목을 집중받았다. 문서상에 보이는 정보들이 우수했기 때문이다. 고학력에 영어까지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면접 결과 또한 상위권이었다. 게다가 항상 웃는 얼굴에 인상까지 좋았으니 원톱이라고 말했어도 무방했을 테다.


처음 부여받은 업무는 영업부서 직원 분들을 교육하는 일이었다. 빠른 눈치와 그에 비례하는 속도의 일 처리, 한 번 맡았다 하면 순식간에 몰입해 버리는 자세를 보였다. 어찌 그리도 열심히 하냐는 선배들의 질문에는 자신을 받아준 감사한 회사로 생각한다고 답하였으니, 마인드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흔히 말하는 예쁨 받는 신입사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부서에서 중요한 업무를 줄곧 맡게 되었다. 그렇게 매년 높은 성과를 받았고, 매니저 타이틀 또한 동기들보다 1년 빠르게 달았다.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회사에서 각광받는 핵심인재로 꾸준히 성장할 거라 기대했었다.






얼마 후, 결혼을 했고,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

1년 간의 육아휴직 후 같은 팀으로 복직은 했으나 그렇다 할 일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일이 많지 않아 좋겠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녀는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마치 이 조직에 자신은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꾸역꾸역 시간이 지나, 첫째 아이와 두 살 차이 나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첫 번째 복직 후 경험했던 공허함과 좌절감이 싫었기에, 또다시 휴직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방에 계시는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또다시 1년의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모성보호라는 테두리 안에서 휴직 기간도 재직기간으로 인정되어 직급은 올라갔다. 업무는 주임시절 맡았던 수준과 다르지 않은데, 타이틀은 어느새 차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들을 지원하는 종류의 일만 주어졌다. 문서들을 모아 하나의 폴더에 정리하거나 데이터를 보기 좋게 편집해서 공유하는 업무,  아주 사소하게는 회의비를 모아 시스템에 등록하는 일 등이었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이 묵묵히, 열심히 했다. 입사 당시 품었던, ‘나를 받아준 고마운 회사’라는 생각을 갖고서 말이다.



문제는, 회사의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하면서였다.

각 부문에 인원감축이라는 어려운 과제가 떨어졌다. 가장 먼저 고려되는 대상은 연봉은 높지만 그에 준하는 일을 맡지 않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직원들은 매년 평균 인상률 만큼 연봉이 올라간다. 재직기간이 많아질 수록 직급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에 준하는 직무를 맡는다.

그녀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가야만 하는 1순위가 본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던 와중,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지도선배와 신입사원으로 만났던 과거의 후배를 팀장으로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나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충성해 온 이 회사에 대한 억울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진지하게 다른 일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차장님이 갖고 계신 장점들을.

일에 대한 몰입도와 책임감은 물론, 명석하며, 일의 속도 또한 빠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년 전 내가 기획업무를 맡을 당시, 차장님이 한 프로젝트의 멤버이셨던 적이 있었다. 나는 각 멤버분들이 제출하는 자료를 취합,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때, 차장님이 멤버들 중 업무의 방향을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셨었다. 자료 작성 또한 제시된 양식에 맞추어 빠르게 보내주셨다. 요청 건에 대한 피드백 또한 신속했다.



그리고, 지금. 팀장과 팀원으로 첫 미팅 자리를 가졌다.


여섯 명 정도 앉을 만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장님과 나, 단 둘이 마주 보고 앉았다.

같은 팀에서 만나서 반갑지만, 또 이렇게 선배와 후배가 직책이 뒤바뀐 모습으로 자리하게 된 사실이 어색했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러면 어색함이 더 두꺼워질 것 같았다.

허허 거리며 한 부서에서 뵙게 되어 좋다는 인사를 했다. 차장님은 그저 미소만 짓고 계셨다..


더 이상 개인적인 인사는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바로 일에 대한 말을 이어나갔다. 정중히, 그리고 명확하게 말이다.


'차장님, 저는 차장님과 직접 일을 해 보진 않았지만, 차장님은 우리 팀에 반드시 계셔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교육 업무도 오래 하셨으니, 과정의 내용이나 운영방식, 특히 개선할 점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실 거고요. 그래서 제가 차장님께 의지를 많이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팀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기획 쪽을 맡아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차장님이 어떤 상황이신 지 아주 조금은.. 알아요. 저는, 윗 분들이 차장님의 진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차장님의 열정과 성과가 최대한 드러나도록 중간에서 제가 최대한 노력할게요.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저랑 일단 1년만 같이 일해봐요."



사실, 당시 나의 상사는 차장님이 그만두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더 심하게 말하면, 내보내자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보아온 차장님은 내가 이 팀을 꾸려가고 자리 잡게 하는데 엄청난 지원군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1년만 기회를 달라고 대든 상태였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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