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 하나를 온전히 본인 힘으로 기획하고, 준비하며, 운영까지 맡은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온 정성을 들였다.
100여 평 정도의 교육장에 긴 직사각형 모양의 흰색 책상들이 두 개씩 붙어 있다. 모둠은 총 5개. 약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이다. 책상 위에는 김 주임이 작성한 안내문, 체크리스트, 강의자료들이 담긴 바인더가 올려져 있다. 그 옆에는 교육 기간 중 읽을 책, 수첩, 볼펜, 그리고 명찰까지 가지런하게 줄 서있다.
모둠의 오른쪽 벽에는 교육 중 직원들의 졸음과 허기를 해결해 줄 커피와 과자도 준비했다. 추운 날씨에 이곳까지 오느라 움츠렸을 분들을 위해 온풍기도 틀어두었다. 듣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피아노 연주음악과 함께. 이 공간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도움이 되는 내용을 듣고, 이해하고, 서로 나눌 거라 생각하니 그녀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찬 듯 하다.
시곗바늘이 9시를 향하자 교육생 분들이 한 명, 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한다. 김 주임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며 지정된 자리로 안내한다. 외투를 벗고 가방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혹여나 불편하거나 필요한 건 없는지 살핀다.
비어있던 의자들이 가득 찼다. 곧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할 차례다.
꽤나 복잡한 내용들이기에 천천히 설명을 해야 한다. 애써서 준비한 과정인 만큼 참여하는 분들이 정확히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평소 마음이 급해지면 말도 함께 빨라지는 그녀다. 시나리오가 적힌 종이를 쉴 새 없이 열었다 닫았다 반복한다. 안 되겠다 싶은 지, 종이를 덮고 단상 위에 서서 교육생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속으로 연습하는 듯 보인다. 준비했던 내용을 무음으로 웅얼거리는 것일 테다.
순간, 그녀의 모습 앞에 10여 년 전 주임시절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입사 4년 차였다. 슬라이드가 띄워진 화면 앞에 긴장한 어린 내가 서 있다.
한 손에는 수첩을, 다른 쪽에는 포인터를 꼭 쥐고 있다. 손금 사이사이 수분을 가득 머금고서 말이다. 매년 진행하는 직원 만족도 조사의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그것도 각 부서를 대표하는 임원들 앞에서였으니 긴장감은 배가 되었었다.
인사부서에 온 이후 처음 맡게 된 '나'만의 일이었다. 기획부터 운영, 결과보고서 작성까지 오롯이 혼자 해야했다. 잘하고 싶었다. 완벽하게 해 내기 위해 온 노력을 퍼부었다. 각 페이지마다 스크립트를 적고 줄줄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수십, 아니, 어쩌면 백번도 넘게 연습했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는, 뿌듯함 그 자체였다. 준비한 만큼 자신 있게 발표를 이어나갔다. 당시 곁에서 방향을 함께 잡아주셨던 과장님의 흐뭇한 미소도 떠오른다. 당시 새로운 일을 처음 맡는다는 사실에 힘들고 막막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일들을 자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발판도 되어 준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제 그녀의 차례다.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과정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안녕하세요. 본 과정에 입과 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운영자 김지혜입니다." 라고 첫마디를 내뱉는다. 이어지는 그녀의 또랑또랑한 음성, 귀에 쏙쏙 박히는 일목요연한 문장들.
그야말로 완벽한 설명이었다.
긴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또렷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교육장을 가득 채운다. 교육생 분들도 그녀의 정성과 열정에 보답하듯 그녀와 눈을 맞추며 매 순간 끄덕여준다.
2년 전 신입사원으로 들어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계속할 지에 대한 확신조차 없던 그녀였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도 때때로 보였었다. 그러다 본인이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은 것이다. 물론 곁에서 마음가짐과 일의 스킬을 도와주시는 분의 덕도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고민한 끝에 한 선택과 그 일을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열정이 가장 큰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누구나 새로움을 맞닥뜨린다.
그것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몫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택한 길을 잘할 것이냐에 대한 것도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말도 맞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