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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Dec 17. 2023

신입사원 김 주임이 달라졌어요 (1)


"팀장님, 교육 운영할 때 쓸 장표 보면서 설명드리는 게 더 을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네. 한번 볼까요?"


"우선, 순서는 이렇게 정해보았고요..."



팀원 여섯 명이 둘러앉아 있는 한 회의실. 앞 쪽 모니터 화면에서는 파란색 슬라이드가 환하게 켜졌다. 그 옆에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한 사람이 서있다. 인턴으로 입사해 2년째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김 주임이다. 


팀에서 기존에 없던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하는 미션을 받았었다. 적임자를 찾던 중, 올해 두 개의 과정을 완벽하게 소화해 낸 그녀가 딱이겠다 싶었다. 새로운 교육을 기획해 보라는 말을 듣고 사정없이 흔들리는 동공을 보이던 그녀였다. 하지만 3개월 후, 그녀는 팀장 앞에서 본인이 준비한 계획을 멋들어지게 프레젠테이션 하고 있는 것이다.






신입 김 주임, 그땐 그랬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김 주임은 인사라는 직무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했기에 관련 직무로 취업 준비를 했었다고 한다. 우리 회사도 같은 직무로 지원했었다. 안타깝게도 지원한 부서에 더 적합한 후보자가 합격전화를 받았고, 김주임은 대기 상태였다. 그러다 우리 팀에 갑자기 공석이 생겨, 인사 부서로의 입사를 제안받았던 것이었다.


입사 첫날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어디서 나는 소리지. 이 힘없는 인사 소리는. 키보드를 드럼 치듯 두드리던 나는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한껏 경직된 모습의 신입 두 명이 쭈뼛쭈뼛 서 있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나는 괜히 더 음계를 높여 낭랑한 목소리로 반겼다. 


"아~ 김혜진 주임님, 박현우 주임님 이 시죠? 반가워요."

"아, 네.. 하하. "


심하게 긴장해서였을까. 흔히 말하는 신입사원의 패기와 열정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었다. 솔직히 아쉬움이 밀려왔다. 좀 씩씩한 모습이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래도 힘들게 받은 신입사원들이었다. 팀 내 박 대리에게 회사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치도록 부탁했다. 인트라넷 사용법, 전화하는 법, 메일 쓰는 법까지. 신입 둘은 조용하긴 했지만 알려주는 것은 차분히 배워 나갔다. 

점심을 함께할 때면 한 번씩 좀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으나 꾹꾹 눌러 내려버렸다. 혹여나 그들의 성향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될까 봐, 또는 나 스스로 너무 과하게 기대하는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 3개월가량 지났을 때 즈음. 남자 주임의 시간 연차 사용이 잦아졌다. (시간 단위로 휴가 사용이 가능하다.) 아직 근무 일수가 적기에 며칠 없는 휴가인데도 쪼개고 쪼개어 사용하는 것이다. 타지에 있는 형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여자친구의 할머니가 아프셔서 등의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마음 떴구나. 아니나 다를까, 6개월가량 되었을 무렵 타 회사로 이직을 했다. 지금 맡고 있는 교육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추측하건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적은 연봉 탓이 가장 컸을 것이다. 


괜찮았다. 어차피 저기압을 몰고 다니며 사무실에 앉아 있느니, 빨리 이 조직에서 나가 주는 게 전체 팀을 위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한 명이 아닌, 김 주임까지 나간다면? 인시 자체가 부족해져 버린다. 아니 아니 아니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 주임의 마음도 덩달아 흔들리는 듯 보였다. 안 그래도 힘 없이 인사하는 목소리가 이제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웃는 모습이라고는 휴게실에서 동기와 대화할 때뿐이었다. 팀원들과 거의 말도 섞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대리님과 업무적인 대화를 나눌 때만 제외하고는. 


한 날은 박 대리를 슬쩍 불러 물었다. 


"대리님, 김 주임 요새 어때요?"


박대리는 이미 모든 걸 놓아버린 것 마냥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김 주임도 곧 나갈 거예요. 분명해요. 마케팅 쪽 일을 하고 싶다고 몇 번 얘기했어요. 지난번엔 대학원에 가서 다른 공부를 좀 더 할 수도 있다고도 했고요.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면 막상 뭘 하고자 하는지 명확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하... 그럼 그렇지. 예상했던 걸 확인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날 오후.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의 풋풋하고도 어두웠던 신입 시절을. 


당시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이 회사에 입사했지만, 예상했던 것과 판이하게 달랐었다. 기대했던 일의 10 중에 1도 하지 않았다. 매일 데이터 추출하고, 엑셀로 가공하고, 또 데이터 추출하고의 반복이었다. 나 역시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화난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당시 팀장은 지금의 내가 그렇듯 속으로 생각했을 거다. '휴, 곧 회사 떠나겠구먼."이라고. 


그렇게 매일을 지루함으로 채우면서도 딱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인사에서 전배제의가 왔고, 지금 이곳만 아니라면 괜찮겠다 싶어 받아들였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었다. 새로운 부서에서 만난 나의 선배는 인사쟁이답게 나에게 적절한 칭찬이라는 당근을 주며 일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수준에 맞는 훈련도 시키며 실력도 키우게끔 도와주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가 지나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매니저로, 팀장으로 성장해 오게 된 것이었다.  





다시, 바라보다.


김 주임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싹 빼고 좀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좋은 점, 특히 이곳은 회사이니 일하는 데 있어서의 장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한 번씩 참고자료 정리를 부탁할 때면 꽤 완성도 높은 결과를 가져왔다. 지시한 내용이 빠짐없이 반영되어 있었고, 글자 크기, 정렬, 표 모양 등 서식 또한 깔끔했다. 어쩔 땐 자리에서 몇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고 일에 몰입하는 모습도 보았다. 일을 맡겼을 때 완벽히 헤 내려는 책임감도 보였다. 

아.. 내가 너무 한쪽 면만 보고 있었구나. 이대로 다른 팀으로, 혹은 다른 회사로 가도록 두기에는 아까워졌다. 지금 이곳에서 교육이라는 일의 재미와 가치를 느끼게 해 주고 싶어졌다. 나의 선배가 나에게 그랬듯이. 



팀 내에서 가장 연배가 높은 여자 차장님에게 함께 일 할 것을 부탁드렸다. 

차장님은 이미 장성하여 회사에 다니는 딸 둘을 두셨다. 그만큼 소위 말하는 MZ 세대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무엇보다 밝고 긍정적인, 업무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적극적인 차장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배우고 깨닫는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김 주임 한 번 잘 성장시켜 보자고 부탁하며 차장님께 드린 말씀이 떠오른다. 


"차장님, 일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되어야 할 건 딱 하나 일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하는 거요. 우리가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에요. 한 가지 더한다면 일에 어느 정도의 진심을 담고 정성을 다 하느냐에 따라 그에 합당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요. 그냥, 그것만 느끼게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말이 쉽지, 어려운 부탁이었다. 한 사람의 마인드를 바꾸는 영역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장님께 맡기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두터워졌다. 차장님은  일을 지시하기 전에 김 주임이 느끼게 될 감정까지 미리 예상하려고 애쓰셨다. 자신이 꼰대인 건지, 아니면 김 주임의 태도가 잘못된 건지 의아해질 때면 따님들에게 가서 물어봤다고 한다. 이해해야 하는지, 혹은 고치도록 도와줘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씩 김 주임의 말과 행동에 고쳐야 할 점이 보일 때면 본인이 그 앞에서 먼저 더 나은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끔 만들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반년이 흘렀다. 달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김 주임의 태도도 천천히, 하지만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어느 날 차장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다. 


"팀장님, 김 주임이요. 많이 밝아졌어요. 요새는 다른 팀원들한테도 먼저 가서 도와 드릴 거 없냐 묻기도 하고, 일 하나 맡기면 궁금한 점도 많이 물어보고, 욕심이 좀 생긴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봤을 때 일 하나를 온전히 맡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해 냈을 때 보람도 느끼고 더 열중할 것 같거든요. 그동안에는 박 대리나, 제 업무를 옆에서 도왔기 때문에 성취감을 그만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쩌면 그게 일에 집중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지루해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고요." 



차장님의 조언을 들은 후, 김 주임에게 직접 보고하게끔 일을 몇 가지 지시했고, 역시나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확인했다. 이제 단독으로 일을 해 봐도 되겠다 싶어 영역 또한 넓혀 주었다. 차장님과 함께 교육과정을 준비하며, 교육생들에게 보여줄 운영 장표를 혼자 책임지고 작성해 오도록 했다. 이 또한 예상보다 잘해왔다. 이후에 꽤 중요도가 높은 매니저 승진자 과정을 맡겼다. 혼자 하되, 모르거나 소통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면 차장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했다. 


이후 김 주임의 태도는 놀랍도록 달라졌다. 

자신이 맡은 일을 해 내기 위해, 모르는 것을 다른 팀원 분들께, 혹은 다른 부서에 먼저 가서 물어보았다. 자신이 작성한 자료를 검토해 달라는 요청도 했다. 기존에 진행해 온 교육과정을 리뷰하고, 개선점을 찾았으며 해결 방법까지 들고 왔다. 현장을 잘 모른다며 자신이 그곳에 직접 가서 경험해 보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다. 자연스레 교류가 많아지니 팀원들과의 스몰토크도 늘어났다. 긴장하거나 혹은 관심 없어 보이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정말이지 놀라운 발전이었다. 



차장님에게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차장님은 씽긋 웃으며 답하셨었다. 


"김 주임이 알아서 한 거예요. 워낙 생각이 깊고 똑똑하니까요."







오늘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내가 첨언한 건, 교육의 목적을 늘 기억하라는 당부 외에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내가 도와줘야 할 것까지 미리 생각해 와서 부탁을 했고, 나는 또 그 모습이 기특해 흔쾌히 받아주었다.


몇 일째 그녀는 30분 일찍 출근했고, 퇴근할 때마다 노트북을 싸들고 일어선다. MZ세대는 개인 시간을 중히 여긴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김주임은 더욱 그럴 것 같았는데 생소한 모습에 말을 건넸다.


왜 자꾸 노트북을 들고 퇴근하냐고, 야근 금지라고, 할 거면 수당 올리고 하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그녀가 말한다.


"아, 네. 팀장님. 이렇게 라도 해야 마음이 편안해서요."




다음 주 그녀가 준비한 교육이 시작된다.

매우 기대된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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