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의 역할에 대하여
‘띵동’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한 대리님이다.
제목: HR Induction
내용: 김 주임님. 인사팀 식구가 된 걸 다시 한번 환영해요^^
인사 업무는 처음이니 HR의 기본에 대해 설명해 드리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내일 목요일 오전 10시 어때요? 전무님 실 옆 회의실에서요. 예약은 제가 해두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반가운 메일이었다.
안 그래도 책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책을 펼쳐보고는 뜨악하던 차였다.
‘채용에서 퇴직까지’. 대학교 졸업 이후 이렇게 두꺼운 책은 처음이었다. 얇디얇은 종이 위에 딱 읽기 싫어 보이는 글꼴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페이지들. 그래도 읽어야지, 음. 채용, 그리고 발령, 음… 분명히 눈은 글자를 읽고 있는데 머리에 입력이 안 되는 그런 상태였던 것.
드디어 고대하던 인덕션 시간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새로 장만한 노트와 펜을 꼭 쥐고는 나의 사수를 기다렸다. 뭐든지 스펀지처럼 쫙쫙 흡수해 버리겠다는 비장함과 함께.
“자, 첫 번째 인덕션을 시작해 볼까요?”
활짝 웃으며 들어오시는 대리님. 손에 종이 한 장이 펄럭인다. 얼핏 보니 커다란 도표 안에 뭔가 빼곡히 적혀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당연히 손에 들린 종이를 펼쳐놓고 시작될 거라는 나의 생각은 오산이었던가. 흰 면이 보이도록 훽 뒤집어 놓은 채 질문 하나를 던지신다.
“김 주임님, 인사, HR 하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네...?"
"편하게 얘기해도 돼요."
"아. 네. 좀 신비주의... 이기도 하고요. 또 좀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보수적, 폐쇄적인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리고 우수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소문 때문인 지 벽이 느껴지기도 하고. 헤헤."
정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정적인 감정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사라는 부서는 사람들을 심사해서 승진시험에 합격시키기도, 또 불합격시키기도 한다. 상벌제도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상보다는 벌을 더 많이 주는 곳이 아니었던가. 팀장에서 팀원으로 면직책이 되고, 무시무시한 권고사직도... 이전 부서에서 파트장에서 파트원으로 갑자기 면직책 되는 경우도 보았다. 원치 않게 다른 부서로 발령 난다며 눈물을 내비친 분도 있었다. 그게 모두 인사에서 휘두른 칼날의 결과가 아니라 무엇인란 말인가. 인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곳, 그걸 통해 아주 사람들을 냉정하게 관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짙었었다.
"하하. 그럴 수 있죠. 실제 민감한 정보들을 많이 다루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일들이 더 오래 기억되니. "
"하하... 네.. 에.."
"이제부터 주임님의 인식을 좀 바꿔줘야겠네요. 이제 그 인사 담당자가 되셨으니. 하하.
그럼, 회사에서 HR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두껍고 읽기 싫던 책, 앞 부분만 조금 읽었던 그 책에서 본 문장이 떠올랐다. 얼른 답해본다.
“기업의 전략과 직원의 성장을 연결해 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리님이 눈으로 말한다. 어쭈, 그래도 한 번 읽어 보기는 했네. 하고.
“맞아요. 회사가 있어야 직원이 일을 할 수 있고, 소속된 직원들이 일을 잘해야 회사가 계속 성장하니까요. 여기서 회사의 전략이 잘 실행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모으고 앞으로 꾸준히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게 바로 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 줄로 정의하기는 참 어렵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한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 '사람' 중심의 '실질적'인 인사가 필요한 시대라는 거요. 회사와 사람이 둘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요. 그럴수록 우리 인사, HR의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목소리에 굉장한 힘이 실려있다. 인사 업무에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 게 분명하다. 대리님만의 인사 철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회사에서 일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게 뭔 줄 알아요?"
"예?"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먼저 질문을 던져봐야 해요. 내가 맡고 있는 일이 없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까지도 예상해 보면 더 좋고요. 일종에.. 나는 왜 존재하는가? 뭐 그런 질문을 회사에 대입해서 하는 거죠. 내가 하는 일은 왜 있는가? 와 같이요.
특히 인사에서는 더더욱 이런 질문들을 자주 던져봐야 해요 그래야 직원과 회사 모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거든요. 쓸데없는 일을 안 하게 되는 거죠"
"아, 네..."
사실, 회사에 몸 담고 있던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다. 눈앞에 주어진 일들만 쳐내기에 바빴다. 심지어 왜 이렇게 일이 많냐며 투덜대기 일쑤였다. 조금 많이 부끄러워졌다.
“아, 이런.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다시 돌아가서... 자, 그럼, 인사 업무를 하는 사람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얘기해 봐 줄래요?"
역량이라. 면접 볼 때 몇 번 입 밖으로 내뱉었던 것이 전부인 단어 '역량'. 열정, 끈기, 뭐 이런 것들을 떠올리다가, 신입사원 연수 때 배웠던 우리 회사의 핵심 역량이 생각났다. 그중 인사 업무를 하는데 필요할 법한 것들을 얘기해 본다.
“협업과 영향력이요. 여러 부서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해야 하기도 하고, 제도가 잘 운영되게 하려면 영향력도 잘 발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대리님은 슬쩍 웃으며 답한다.
“오, 우리 회사 역량을 아직도 기억하네요? 보통 신입사원 교육 끝나면 다 까먹던데. 하하. 우리 회사 역량 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 볼까요?"
"음... 사람에 대한 관심... 이요?"
"맞아요! 그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해요. 아까 HR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회사와 직원 둘 다 성장하도록 돕는 거라고 했죠? 그러려면 사람, 그리고 회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늘 갖고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긍정적인 마인드도 장착해야 하고요. 또, 부서 내부, 외부에 소통할 일들이 많으니 공감과 소통능력도 필수예요.
그 외에는 인사 직무마다 필요한 역량이나 스킬이 다르긴 한데, 보통 논리력, 기획력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긴 한 것 같아요. 인사제도든, 교육이든 현상을 리뷰 하고 새로운 대안이나 해결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흔히들 HR에서 일을 하려면, 근로기준법, 법령을 잘 알아야 하고, 심리학과나 교육학과 이런 걸 선호한다고들 하는데요. 솔직히, 주임님도 알잖아요. 대학 전공이나 자격증 등이 일하는데 그다지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는 걸요. 어찌 보면 뭐, 일을 제대로 해 내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다 할 수 있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인사 담당자의 역량이라... 대리님이 말한 역량을 내가 갖고 있는지, 부족한 건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순간 한 대리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린다. 화면에는 '전무님'이라는 글자가 크게 번쩍이고 있다.
대리님은 얼른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답을 한다. “넵, 전무님. 네, 자리로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말을 잇는다. 미안한 표정과 함께.
“주임님, 어쩌지. 오늘 전체 프로세스 한 번 설명하려고 했는데, 전무님이 급하게 자료 하나를 찾으시네. 일단 이거 먼저 읽어볼래요? HR 전체 프로세스를 모듈별로 나눠서 정리한 내용인데 있다가 오후에 자세히 설명해 줄게요. 참! 그리고, 이거 말고도 인터넷에 인사 프로세스라고 찾아보면 잘 정리된 내용들이 정말 많을 거예요. 그것도 같이 읽어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쉬울 거예요.”
“아,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대리님이 급히 미팅룸을 나간 후,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익숙한 단어들이 보인다. 채용, 발령, 퇴직, 등.
그리고 생소한 단어들도. 직무정보, 조직설계, 공석관리, 인재관리… 내가 아는 일들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자리로 돌아와 앉아 대리님의 질문 하나를 떠올려 본다.
인사 업무는 왜 필요할까? 없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 여기, 인사에 있는 사람들은, 나는, 이 일을 왜 하는 걸까?
HR에 관심이 있다면, 몸을 담고 있다면 꼭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인사가 이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이유, 역할에 대해서요.
근본적으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 WHY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 보는 거죠.
위의 글에서 한 대리님은 인사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본 역량에 대해 얘기를 해주었는데요. 그 외에 직무별로 더 다양한 스킬들도 요구된답니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의 이해, 소통 및 대응력, 기획력, 변화관리, 스피치스킬, 회복력 등과 같이요.
앞으로 김 주임이 맡게 될 여러 일들을 통해 어떤 역량과 스킬을 쌓아가게 되는지 살펴보시면 더 잘 알게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