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프로세스를 익히다
자리에 앉아 인사 업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던 중, 한 대리님이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요?”
혹시 멍 때리고 있는 걸로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흠.
“아, 네!”
다시 미팅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까 보여준 페이지는 좀 봤어요?”
“네, 봤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었나 보네요.”
“네, 저는 인사업무를 채용, 발령, 퇴직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었는데, 이 외에도 여러 일들이 많더라고요. 이렇게 다양한지 몰랐어요.”
“하하, 그렇죠? 사실, 그동안에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도, 필요도 없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죠. 괜히 더 복잡하게 느낀 건 아닌 지 모르겠네요. 음, 그런데 오늘은 모든 걸 백 퍼센트 이해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런 일들이 인사부서에서 진행되고 있구나 정도로만 이해해도 충분해요.
정리하면, 오늘은 인사라는 큰 나무의 형태를 보는데 집중하는 거예요. 그래야 나중에 세부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어떤 줄기에서 뻗어 나온 일인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되거든요. 자연스럽게 일을 제대로, 잘할 수 있게 되고요. 아셨죠?”
“네! 대리님.”
"참, 이런 실무 프로세스를 알기 전에 인사 담당자라면 눈 감고도 줄줄 읊을 수 있어야 하는 내용이었어요."
"..."
"우리 회사의 비전, 미션, 가치. 행동, 그리고 역량. 회사의 전략은 물론이고 인사 제도들 대부분이 지금 얘기한 이 테두리 안에서 새로 생기고 운영되고 있어요.
주임님, 지금 엄청 당황하는 모습인데, 알고 있는지 물어보진 않을게요. 긴장하지 말아요. 하하."
헉, 어찌 아셨지. 순간 눈앞에 캄캄해졌었다. 비전, 미션... 이 무엇인지 단 하나의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 다행이다.
한 대리님은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미팅룸 한쪽 면에 선다. 벽에 붙어 있는 화이트 보드에 무언갈 적으려는 모습이다. 이어서 보드에 그려지는 가로로 긴 화살표.
“생애주기라는 말 들어본 적 있죠?”
“음.. 네, 그.. 태어나서 유아기, 영아기, 청소년기 등…”
“맞아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직원들에게도 그러한 라이프사이클이 있어요. 뭐,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있으니 생애주기라 해도 무방하겠네요. 한 사람이 회사에 들어와서 어떤 주기를 갖게 되는지 한 번 떠올려 볼까요?”
“입사하고, 발령받고, 일하고, 교육도 참여하고, 저처럼 직무를 바꾸기도 하고, 아! 승진이요. 그리고, 또 마지막엔 퇴…직…”
“맞아요. 주임님. 그게 큰 사이클이죠. 이번에는 인사 담당자의 시선으로 풀어볼까요?”
인사 입장이라, 인사 전문 용어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채용인가. 내 입에서 뭔가 나오길 기다리시는 듯하다. 여전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더니 웃으며 말씀하신다.
“보통 채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아, 이런. 말 안하길 잘했다.
“그전에 반드시 해 둬야 할 일이 있어요. 바로 회사를 '잘' 운영하기 위해, 몇 개의 어떤 부서에 몇 명을 배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그림을 그려놔야 해요. 그걸 Organizing Design. 조직 설계라고 합니다. “
“오, 네…”
“자 그럼, 오늘은 큰 프로세스 설명에 집중하기로 했으니, 쭉 얘기해 볼게요.”
“넵!”
이 대리님은 본격적으로 설명을 이어 가려는 듯 와이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끌어올린다.
“조직을 그렸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채용을 하겠죠? 그리고 보상을 지급할 거고요. 이후 교육, 직원 의견 청취, 성과관리, 경력개발과 승진 절차를 진행합니다. 여기에 근태나 휴가, 휴직 등과 같은 제도운영, 직원정보 관리, 노사관리, 퇴직까지. 이렇게가 HR의 큰 사이클입니다. 종이에 적혀있는 것 그대로죠?”
“넵”
“이제부타 각 단계마다 부연설명을 해볼게요. 잘 들어보세요”
대리님은, 네모칸 안에 적어 넣은 각 프로세스 아래에 점 하나를 찍으며 말을 잇는다. 마커펜도 덩달아 바빠진다.
“먼저 '조직설계'. 비즈니스 상황과 전략의 변화에 따라 조직을 신설하거나 확대, 축소, 또는 없애기도 하거든요. 이 때는, 업무의 효율, 이익 기여도, 중복여부 등을 함께 고려합니다.
다음으로, '채용'의 경우, 모든 공석을 신입으로 채우기보다는 보통, 기존 직원들을 먼저 배치하는데요. 사내공모를 통해 신청하는 직원 대상으로 내부 인터뷰를 하는 방식도 있고, 또 주임님처럼 다른 부서에서 모시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하, 그렇게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마케팅팀에서 좀 힘들어하고 있었거든요. 저야 지금 이곳에 온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 그렇게 생각해 부니 제가 고마운데요?”
“앗, 아닙니다.”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긴장이 좀 더 풀리기 시작한다. 한 대리님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간다.
“채용의 종류는 잘 알다시피 경력, 신입으로 나뉘어져요. 경력은 우리가 직접 서칭을 하기도, 또 헤드헌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신입은 공채, 수시채용으로 진행하고요. 그 외에 파견사원 채용, 도급업체 계약을 통한 충원 등도 있습니다.
자, 그다음, '보상'으로 넘어가 볼께요. 보상이란 흔히 말하는 월급도 있지만, 건강검진, 여비지원 등과 같은 복리후생도 해당된다는 것 기억해 주시고요.
이번에는 '교육', 단순하게 직원들에게 뭔가 가르쳐 주는 일보다는, 역량을 개발하고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영역이 큽니다. 역량평가, 직무, 리더십교육 등 수많은 교육을 운영하고 조직문화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 일 년에 두 번씩 참여하던 거 있죠?”
“네? 그… 뭐가…”
대리님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눈빛을 날린다.
“직원 의견 조사요! 주임님이 맡게 될 일인데…”
“아, 네. 헤헤.”
“HR은 회사와 직원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려면 회사의 전략이나 방향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의견과 만족도도 충분히 청취해야 돼요. 그게 '직원의견 조사'이고요. 결과에 따라 인사제도를 개선시키기도, 새롭게 만들기도 할 정도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어요.
다음으로 '성과평가'. 목표 수립, 상사와의 면담, 평가결과 리뷰라는 절차 정도는 지난 한 해동안 직접 참여했으니 이해하고 있을테고..."
"아, 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완전히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다. 상사가 적은 내용과 목표를 베꼈었다. 면담과 리뷰 따윈 진행되지 않았다. 양식을 작성해서 시스템에 상신하고 결과를 통보 받았을 뿐.
대리님은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다.
"성과관리 담당자 입장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게 있어요. 가장 중요한 목적이 회사의 전략과 개인의 업무목표가 한 줄기로 움직이게 하는 것, 그리고 성과까지 이어지도록 제도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이거든요.
이번에는 경력개발면담. 이것도 이전 부서에서 해봤죠?"
“네...에.”
하긴 했죠… 면담은 5분 남짓이었고,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도 대에충…
“표정 보니까 부서에서 제대로 운영을 하지 않았나 본데... 흠.
'경력개발면담'은 직원들이 자신의 성과, 역량, 의지를 기반으로 직무를 옮기거나, 상위 직책으로 승진하는 등,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실제로 발령, 승진자 검토 시 주요 자료로 활용되니까요. 당연히 성과도 고려하게 되니 성과관리와 경력개발이 하나의 사이클로 돌아간다고 보면 됩니다.”
“넵, 알겠습니다.”
“네, 좋아요. 자, 이제 발령과 같은 '인사운영' 업무인데요. 이곳에는 루틴업무들이 꽤 많아요. 매일, 매주, 매월 하는 일들이죠. 예를 들면, 근태, 휴가, 병가 등과 같이 나라에서 지정한 제도와 사내규정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관리를 하고요. 한 달에 한 번 발령, 배치 업무도 합니다. 그 외에 뭐가 있을까… 아, 상벌위원회 들어봤죠?”
“네, 사람들이 상은 안 주고 벌만 준다고… 징계위원회로 이름 바꿔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그..”
“하하. 맞아요. 우리가 시상과 같은 제도도 꽤 자주 운영하는데, 아무래도 징계에 대한 체감이 더 강해서 그런 것 같기도.. 흠흠.”
“앗, 넵.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괜히 인사 욕을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쥐고 있던 펜을 괜히 더 꽉 지고, 메모하는 척을 한다.
“마지막으로… ‘퇴직.’ 퇴직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의원면직, 권고사직 등. 그리고 이 퇴직 절차 또한 입사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퇴직자가 남기는 진솔한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활용해야 하거든요”
“네…”
“자, 여기까지, HR의 전체 사이클입니다.”
정신없이 휘갈기던 펜이 멈췄다. 어느새 화이트보드에는 십여 개 정도의 박스와 그 아래 빼곡한 문구들이 남겨져 있다. 조직설계, 채용, 성과관리, 경력개발, 인사운영, 퇴직…
너무 많은 정보가 한 번에 입력됐다, 아니, 얹어졌다. 정리가 필요하다. 표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길을 옮기며 훑어보자 한 대리님이 말한다.
“처음이라 좀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일하다 보면 눈에 금방 익힐 테니 걱정 말고요. 오늘은 얘기했던 대로 이런 게 있구나 정도로만 이해하면 됩니다. 아시겠죠?”
“넵, 알겠습니다.”
감사했다.
입사 후 이토록 정성스러운 인덕션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냉정하고 차가울 거라 예상했던 대리님은 한없이 친절한 분이었다.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 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눈치였고, 속도에 맞춰 설명하려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HR에 대해 예전보다 두 배 이상은 더 알게 된 듯하다. 나의 경력에 인사라는 또 다른 회로가 하나 연결되기 시작한 거다.
동시에, 한 해 동안 매일 출퇴근하며 다닌 이 회사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회사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 조직의 전체 구조 따윈 외면한 채, 눈앞에 닥친 일만 테트리스처럼 쳐내기 바빴다. 그 큰 사명을 중심으로 수만 명의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어차피 일하게 된 회사, 기왕이면 제대로 알고 다녀보자.
HR은 회사와 소속된 조직을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워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회사의 비전, 목표, 전략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조직을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더하고 덜어내야 할지 수시로 고민하는 조직이니까요.
사실, 인사 외에 다른 모든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회사의 비전, 전략을 늘 염두에 둬야 합니다. 하지만 바쁘게 떨어지는 일들을 쳐내다 보면 이런 시각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긴 하죠. 그래도 틈틈이 들여다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