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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인사 담당자의 기분 나쁜 미소의 이유

인사 시스템, 인사 정보에 대하여

by 리유


“김 주임님”


한 대리님이다. 이제는 내 이름이 갑작스레 불려도 크게 긴장되지 않는다. 인사라는 생소한 공간에 내가 잘 안착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을 알고 있기에.


“다음 주부터 일이 좀 많아질 것 같은데.. 지금 여유가 있으니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인사 시스템을 미리 설치하고, 사용법도 익혀두는 게 좋겠어요.”


역시, 대리님은 다 계획이 있다.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자.



“시스템을 설치하려면 인트라넷에서 메모결재도 올리고, 서약서도 써야 하는데... 먼저, 접속 경로와 해야 할 내용들을 메일로 보낼게요. 아! 그리고, 우리 부문에서 시스템을 제일 잘 아는 이 주임님한테 인덕션 좀 부탁해 둘 테니, 잘 배워 두시고.

시스템에 대해 대략적으로 미리 설명을 하면… 우리 직원 수가 워낙 많다 보니까, 모든 인사정보를 HR system에 반영해 두고 관리합니다. 입사, 발령, 퇴직은 물론이고, 휴가, 휴직, 급여 등과 같은 정보들까지도요. 성과평가나 경력개발도 이 시스템에서 운영하고요. 지난번에 설명한 모든 인사 프로세스가 여기에 그대로 입력되고 저장, 관리하고 있는 거죠. 정보를 추출하는 데이터 시스템도 있어요.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익혀 두셔야 합니다~”

“넵, 알겠습니다.”


“참! 시스템 접근 권한 승인받으면, 홈페이지 구경하듯이 한 번 쭉 훑어보고요. 특히, 조직도 같이 생긴 아이콘이 하나 있을 텐데, 클릭해서 미리 살펴보세요. 거기 보이는 우리 회사 부문, 본부, 팀을 머리에 잘 넣어둬야 해요. 인사 담당자라면 조직도를 꿰고 있어야 하니. 팀장이나 소속된 직원들까지도 알면 더 좋고요. 사실, 저는 틈 날 때마다 인사카드를 찍어보기도 해요. 부서, 직급, 성과나 경력 등을 머릿속에 넣어두는 거죠”

“아... 네. 그럼 대리님은 직원들을 보면 기본 정보들이 자동으로 떠오르시겠네요?”


“뭐,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으. 조금 무서운데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조직이 갑자기 신설, 변경될 때는 적합한 인력을 신속하게 배치해야 하니 유용할 때가 많아요.”

“네, 저도 틈틈이 입력해 두겠습니다!”


“아, 그전에, 우리 부문 조직도와 식구들부터 먼저 파악해야 하는 거 알죠?”

“앗, 넵!”




그나저나 시스템이라…

회사에 와서 난해하기 짝이 없던 존재들이 있었다. 수 십 개의 약어들과 처음보는 시스템들.

이전 부서에서도 사람들은 시스템 로그인을 시작으로 하루를 열었다. 매출, 이익 등의 실적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법에 익숙해진 분들은 마치 게임하듯 손쉽게 사용했지만, 신입들에게는 커다란 복병이었다. 밋밋한 회색 바탕에 생소한 용어와 버튼, 입력창 등 죄다 두렵게만 느껴졌다. 특히 나 같은 기계치들에게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대상은 맞았던 것 같다. 신입과 경력사원들을 위한 시스템 교육과정이 따로 운영되기도 하였으니.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시스템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걸 알아야 일을 할 수 있다는데.


신입사원 시절, 시스템 교육을 받으며 하나하나 메모하던, 외계어와 다름없는 문자들을 해석하며 더듬거리던 과거를 떠올리던 차. '딩동'.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한 대리님이다.



제목: HR system 사전 준비 사항

내용:


주임님, 내일 오후 2시에 이 주임님이 시스템 사용법을 설명할 텐데요.

그전에 아래 사항들을 모두 준비해 주셔야 합니다.


1) HR System, 데이터 추출 프로그램 설치 및 사용 요청서 상신

2) 정보보안 서약서 제출

3) IT팀에서 설치 링크 보내주면 시스템 설치 (설치하다 안되면 IT에 원격지원 요청)

4) 인사운영팀 이 주임님에게 ID, PW, 메뉴 접근 권한 설정 요청

5) 로그인 확인


1, 2번은 인트라넷 전자결재 메뉴에서 ‘인사’ 탭 클릭, 해당 문서에 양식과 결재선 적혀있으니 그에 따라 올려 주시면, 제가 바로 승인할게요.


보시고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문서 상신, 승인, 설치는 어렵지 않게 완료했다. 노트북 연식도 1년밖에 되지 않은 덕에 성능도, 용량도 충분했다.

이제 부여받은 아이디와 비번을 입력하고, 로그인!


첫 페이지에 경고 팝업이 뜬다.


‘본 시스템은 귀 회사의 인사 담당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안되어 있습니다. 허가 없이 이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은 관련 법규에 의해 처벌될 수 있습니다.’


헉. 괜히 위축된다. 뭔가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담겨있는 시스템이긴 한가보다.

메뉴들을 둘러본다. 인사카드, 평가, 보상, 조직, 인력계획, 교육... 한 대리님에게 배운 인사 프로세스의 모든 항목들이 그대로 보인다.

IT팀으로부터 수 십 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을 받았으나, 일단 부딪히고 보는 성격. 제일 만만해 보이는 메뉴를 클릭해 본다. ‘인사카드’.


성명에 내 이름을 넣고 검색.

와. 사진부터 소속 부서, 입사일, 사번, 학력, 자격증, 고과, 발령이력 등 모든 게 한눈에 보인다. 입사 당시 제출했던 내용들은 물론, 그동안 이 회사에서의 발자취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마치 기밀문서를 만난 듯 동공은 커지고 심장도 쿵쾅댔다.

다른 분 이름도 찍어본다. 한 대리님. 아, 이 학교를 나왔구나, 여기 사시는구나. 세상에, 3년 이상 최고 고과를 받았어? 대박.


동기들 이름도 입력. 클릭. 오 마이갓.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동시에 뭔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듯한 감정이 일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남들에게 오픈하기 싫어하는 정보일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인사 담당자라는 이름으로 볼 수 있으니...


솔직히 그동안 인사팀에서 내 정보를 이 정도로 모조리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인사팀 특유의 은은하지만 뭔가 기분 나쁜 미소가 이것 때문이었을까. '난 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 티를 내지 않을 뿐이지.'


맞다. 나를 꿰뚫는 듯한 그 눈빛이 묘하게 불쾌했던 이유임이 분명하다.




생각해 본다.

나는 그런 인상을 주는 인사 담당자가 되지 말아야지.

사람들을 정보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필요에 따라 참고해야지. 쉽지는 않겠지만.이라고.


모든 감정을 배제하고 다시 한번 인사 시스템을 바라본다.

나는 인사 업무를 하기 위해 이 정보들을 검색하는 거다.

사적인 감정과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순수하게 일을 하기 위함이다.

.

.

.

그런데, 상무님은 작년에 어떤 고과를 받으셨나......?






인사 담당자에게 수백, 수천 번 강조해도 부족한 말이 있습니다. "개인정보, 기밀 유출 절대 금지.'


회사에서 매년 정보보호 점검을 하는데요. 그중 더 철저하게 보는 곳이 바로 인사입니다. 주민등록번호, 핸드폰 번호 등과 같은 중요 정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최 상위 단의 정보는 인사에서도 한 두 명만 접근이 가능하도록 제한되어 있기도 해요. 반드시 필요할 경우에만 임원의 승인을 받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목적에 맞게 사용 후 바로 폐기하는 조건 하에서요.


또 한 가지 명심할 것.

김 주임의 다짐처럼 사는 곳, 학교, 이력, 성과 등 문서상에 보이는 정보만으로 한 개인을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인사담당자도 사람인지라 백 퍼센트 객관적으로 볼 순 없겠지만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정보에 치우쳐서 상대를 보고 있진 않은지, 나도 모르게 선입견을 갖고 있진 않은지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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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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