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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곳은 HR인가 IT인가

데이터의 신에게 배우는 인사시스템 실무

by 리유

“안녕하세요.”


이 대리님이다. 아르바이트로 입사해 사원부터 대리 승급까지 단기간에 하셨다는 워커홀릭, 전설의 엑달, 엑셀의 달인.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벌써부터 매섭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겠다는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 내 옆에 앉으신다. 바로 스터디 모드 돌입.




“주임님, 이전 부서에서 시스템 다뤄 보셨죠?”

“네, 그렇긴 한데…”


긴장된다. 상무님 인사드릴 때 보다 더.


“그럼, 별로 어렵지 않을 거예요. 자, 일단, 인사시스템이랑 데이터 분석툴이 있는데, 시스템 먼저 볼까요? 사번이랑, 비밀번호 받은 거 입력하시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키보드 위를 두드린다. 미리 예습을 해 둔 덕분에 문제없이 접속 완료. 다행이다.


“좋습니다~! 여기 보시면, 인사카드가 있는데 인사 담당자가 많이 보는 페이지이기도 해요. 부서, 직급, 입사일, 연령, 발령사항, 고과, 자격증, 상벌이력까지 모두 나와 있어서, 직원 조회 할 때 메인으로 사용하게 될 거예요. 팀장님이나 상무님이 인력 조회 요청하실 때 인쇄해서 보고 드리는 경우도 종종 생길 거고요. 그다음은… 여기.”


마우스 커서를 화면의 오른쪽 상단으로 옮기더니 조직도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한다. 오호. 한 대리님이 말씀하셨던 우리 회사 전체 조직도다. 미리 살펴보라고 했는데 입사동기와 직원들의 인사정보만 열나게 훔쳐(?) 보느라 깜빡한...


“인트라넷에 나와 있는 조직도와 같지만, 소속되어 있는 직원들 리스트를 보거나, 부서명을 검색할 때, 그리고 직속상사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어요. 이것도 사용할 일들이 꽤 있을 테니까 잘 봐두시고요.

자, 그럼 실제 작업 페이지로 들어가 볼까요? 주임님이 맡게 될 인사 KPI 관리 업무를 하려면 입사, 전배, 승진, 퇴직 등에 대한 데이터 분석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요. 분석을 위해 각 발령 코드들을 알고 계셔야 해요. ”


코드라… 드디어 시작인가. 생소한 외계어들의 등장. 손에 든 볼펜을 더 꽉 쥐고 주임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들을 받아 적겠다 다짐한다. 그래도 불안하다. 저기, 녹음 좀 해도 될까...요?



대리님은 ‘인사발령’ 메뉴를 클릭한 후, 성명 란에 내 이름을 입력, 검색을 누른다. 나의 입사일, 전배일, 직급까지 쪼로록 뜬다. 이어서 보이는 숫자와 알파벳이 조합된 특정 패턴의 코드들. 발령, 인력유형, 급여유형, 직급, 호봉, 직책, 사업장, 근무지역, 직무, 직군 등… 후아. 이게 다 뭔가. 혼란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는데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대리님은 또다시 AI 같은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간다.


“주임님, 각 코드들 보이죠? 모든 인사 정보들은 코드와 한 세트로 입력되어 있어요. 코드가 메인이고 거기에 연결된 정보 값이 딸려 오는 거죠. 예를 들어, 주임, 대리, 과장, 차장과 같은 직급명의 코드들이 설정되어 있어요. 여기, 제가 데이터 작업할 때 활용하려고 정리해 둔 각 코드와 코드명 리스트들이에요.”


A4 용지 두 장을 가득 메운 종이를 건넨다. 헉. 이거 한 두 개가 아니잖아. 기존에 알던 직급, 직책, 발령 외에 외국어 수준, 자격사항, 역량 등 또 다른 항목들도 많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자 대리님은 그제야 웃음을 띄우며 말한다.


“좀 많죠? 모두 다 실제 사용 되는 코드들이에요. 이뢰 봬도 데이터 분석에 최적화되도록 심혈을 기울여서 정리한 겁니다. 주임님 KPI 결과 정리할 때 분명히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있다가 메일로 파일도 보내드릴게요.”

“헤헤. 네, 열심히 들여다볼게요. 감사합니다!”


“여기까지가 주임님 파트에서 보게 될 페이지들입니다. 참고로 부연 설명을 드리면, 성과관리 담당자가 보는 모듈에서는 평가자와 피평가자들 정보나 성과평가 입력, 조회 등을 모두 할 수 있어요. 그 외에 경력개발이나, 다면평가도 운영하고요. 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급여 모듈인데, 이건 저도, 주임님도 권한이 없어요. 최상단 기밀 정보라, 급여 담당자들만 보고 만질 수 있거든요.”

“네…”


“이제, 데이터 분석툴을 한 번 볼까요?”

“넵!”





대리님은 HR data system이라는 것을 클릭한다. 아까 봤던 페이지보다 한층 더 삭막하다. IT 개발자들이나 적을 법한 IF < “ 등의 기호들이 난무한다.


“이건 말 그대로 인사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인사에도 데이터 분석 업무가 정말 많거든요. 어떤 회사는 아예 HR data 담당자를 따로 두는 곳도 있어요. 우리 회사에서는 주임님이 그 역할의 일부를 하게 되는 거고요.”


네.. 네? 제가 데이터 분석을요?

몰랐다. 단순하게 KPI, 프로젝트, 직원 만족도 조사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데이터 담당자라니. 어쩐지 아까부터 데이터 분석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코드값을 알면 일하기 쉽다 등을 언급하시길래 왜 그런가 했다.

격하게 떨리는 동공지진을 대리님은 아실까. 모를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도 신나게 말을 이어갈 수는 없을 거다.


“여기 가로에 있는 행을 보시면, 인사 시스템에서 봤던 항목들이 쭉 나오죠? 그 아래 빈칸에 조건값을 코드로 넣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본사에 근무하는 주임 중 신입공채로 입사한 직원들 리스트를 추출하고 싶다! 그럼, 사업장, 직급, 입사경로에 해당되는 코드를 명령어와 함께 입력하고, 추출!!”


대리님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나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진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지금 IT 부서에 온 것인가.


추출된 데이터에는 정말 공채들 리스트가 떴다. 내 이전, 이후 기수들 리스트까지 모두 보였다.


“이게 아주 기본적인 데이터 추출 방식이고요. 여기에 입사일이나 고과, 승진코드 등도 반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매번 이렇게 조건을 일일이 입력할 필요는 없긴 해요. 인사에서 자주 쓰는 쿼리문들이 족보처럼 내려오고 있거든요? 그 파일을 시스템에 업로드하면 입력되어 있는 명령값 대로 데이터가 추출되거든요.

음, 그러니까... 지금 제가 알려 드리는 명령어의 정의와 원리만 알면, 그 쿼리문을 입맛대로 수정해서 사용하면 되는 거죠. 어때요. 쉽죠?"


끄응... 네…라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일 뿐.

마케팅 팀에서 사용하던 매출 데이터 시스템은 이런 쿼리문까지 입력할 필요가 없었다. 웹사이트에서 두세 가지의 리포트를 다운 받아 엑셀로 이리저리 가공해서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뭐? 명령어? 조건값? 쿼리문? 아뿔싸다.


이후에도 보고서에 활용되는 여러 버전의 데이터 추출을 시연해 주셨다. 수첩에는 수백 개의 기호와 숫자들이 난무했고, 그 수와 비례한 강도로 두통이 밀려왔다.


잠시 후, 대리님은 모든 설명을 마친 듯하다. 스스로 만족스러워 보인다. 그제야 화면에서 눈을 떼고 내 표정을 슬쩍 살피더니 말을 잇는다.


“주임님, 이게 처음에만 좀 어려워 보이지, 사용하다 보면 금세 익힐 수 있을 거예요. 원래 처음은 다 어려운 거잖아요. 하하. 그나저나 주임님, KPI 업무를 인사에 와서 처음으로 맡게 된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인사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데이터 분석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직이나 인력 구조를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한 대리님하고 같이 일하게 되었으니 행운이죠. 정말 많이 잘 배우시게 될 거예요.”


아, 네. 진심 어린 위로 잘 들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배워볼게요.라고 대답했지만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까짓것 금방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시스템, 기본 오브 더 기본이라고 한 업무부터 이렇게 복병으로 다가오다니.

새로운 정보들로 머릿속이 뜨끈뜨끈해졌다. 할 수 있을까?





‘HR은 숫자를 잘 몰라도 된다?'라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물론 매출 이익과 밀접한 부서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의외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수치들을 굉장히 많이 분석, 활용하고 있답니다.


기본적으로는 경영진들이 인력 구조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회사 전체, 사업장 별 직원 수, 각 부문별 인원수 변동(입사자, 전배자, 퇴직자, 휴직자 등), 각 부문별 퇴직률 등을 정기적으로 트래킹, 공유하고요. 더 나아가 인사 관련 계획의 수립,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좀 더 뾰족한 수치들을 분석하기도 해요. 예를 들면 3개년간 최고 고과를 받은 직원들의 퇴직률, 근속연수, 승진비율, 저성과자들의 퇴직률, 공채 직원들의 직무별 근속연수, 핵심인재들의 다면평가 점수 등이 있습니다. 또한,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조직이 운영되도록 각 부서장들의 조직관리 KPI로 포함하기도 합니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는 People data analyst라는 직무를 별도로 두기도 해요. 인사 데이터 지표 설계와 분석,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일종의 전문가인 거죠. 그 정도로 HR에서 데이터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려면, 우리 인사 담당자는 숫자와 친해져야 하겠죠? 엑셀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요. 일반적인 인사 담당자는 SQL, Query 등과 같이 전문적인 프로그램까지 알 필요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섬세하고, 정확하게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참, 분석에서 그치면 절대 안 되는 거 아시죠? 데이터를 읽고 Insight까지 도출해 낼 수 있는 시야도 갖춰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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