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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시, 부서 변경해 보는 거 어때요? 인사팀으로.

by 리유



‘띠리리리’

조용한 사무실에 전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 전화다.


“안녕하세요. 마케팅팀 김지유 주임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팀 한승민 대리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순간 얼어붙었다. 보통 인사에서 일개 직원에게, 그것도 입사 1년 차 주임 나부랭이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경우는 백분에 일 만큼도 없다고 봐야 한다. 대부분의 인사조치들은 소속 부서의 상사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머리털 끝까지 긴장과 불안이 매워졌지만 태연한 듯 목소리를 다듬었다. 흠흠.



"예전에 입문교육 때 뵌 적 있었는데..."

"네! 그때 점심 드실 때 저희 테이블에 계셨었잖아요~"


"하하. 1년 전인데도 기억하네요!"

"그럼요! 헤헤."


"그.. 잠깐 미팅 좀 할 수 있을까요?"

"미팅.. 이요? 네!"


"그럼, 있다가 오후 2시에, 점심 먹고 직원식당 안쪽 테이블에서 잠깐 봐요."

"…네! 알겠습니다. 뭐 준비할 거라도…"


"아뇨,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하하"

"하하. 넵,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조심스레 내려놓고 모니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이유일까? 나 뭐 잘못했나? 실수한 거 있나?







그렇게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오전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메모를 위한 수첩 하나와 볼펜 하나를 들고,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창 밖 하늘이 유난히 파랗네. 라며 바깥을 바라보는데 테이블 한쪽에 앉아 계신 한 대리님이 눈에 들어왔다.


건장한 풍채에 깔끔한 옷차림. 1년 전 그랬듯 얼굴에는 조금 가식적인 미소가 장착되어 있다. 인사팀 특유의 공통된 표정이기도. 돌돌 말아 걷어 부친 와이셔츠 소매, 주머니에 꽂혀 있는 두 가지 펜, 그 앞에 놓인 메모 가득한 수첩. 누가 봐도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막 올라온 사람의 분위기를 풍긴다.

주춤주춤 걸어가다 멀리서 눈이 마주치자 90도 인사를 하고 군기 바짝 잡힌 자세로 테이블에 앉았다.


한대리님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 김주임님.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네, 안녕하세요!”


“갑자기 전화해서 많이 놀랐죠?”

“아, 네, 조금.. 하하.”


“하하. 마케팅 팀 일은 어때요?”

“열심히는 하고 있습니닷!”


“네, 힘들진 않고요?”

“일은 다 힘들다고 들었습니닷! 괜찮습니닷!”



갑자기 힘든 건 왜 물어보지? 그냥 인사치레인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혹시 모르니 절대 눈밖에 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유쾌한 척 대답을 이어갔다.



“하하. 네. 시간도 없고, 주임님도 바쁘고 할 테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요.”

“(긴장….)”


“혹시, 부서 바꿀 생각 없어요? 인사팀으로”

“네. 예?”


“하하. 지금, 인사기획파트에 공석이 하나 생겼는데, 김 주임님이 오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하하.. 저, 인사 업무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그리고 경력도 없고..”


“아, 그건 걱정 말아요. 인사 업무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배우기만 하면요. 그리고 입사 때 박 과장님으로부터 한 번 제의 받지 않았어요? 인사팀으로 오라고”

“아.. 네…”


“입사 면접 결과랑, 신입사원 교육 때 보였던 모습, 그리고 박 과장님 의견도 참고해서 주임님에게 제안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인사기획파트에 오시면 저랑 같이 인사 지표와 프로젝트 관리, 직원 만족도 조사 등 업무를 맡게 될 거예요. 그리고 기획파트인 만큼 정해지지 않은 여러 잡다한 일도 종종 합니다. 하하.”

“네..”


“그럼, 한 번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 이 시간에 다시 여기서 미팅할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도대체 ‘아, 네’만 몇 번을 한 것인지. 사실 그 말 말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너무나도 예상외의 제안이었고, 인사는 내 경력에 단 한 번도 등장시켜 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회사에서 봤던 인사팀 사람들은 면접 볼 때 후보자들을 안내하고, 입사 후 교육을 진행하는, 그런 분들이 다였다. 일 년에 두 번씩 업무계획 수립과 리뷰를 하라는 메일을 받아본 적도 있었구나. 사실, 그조차도 현업에 치여 나의 파트장의 계획과 성과를 복붙 했던…

게다가 나는 공대생이 아닌가? 인사는커녕 경영, 조직 등 단어는 먼 세계에 있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자리로 돌아와 웹사이트를 열어 검색창에 단어 하나를 입력했다. 'HR이란'.


HR(Human Resources)은 ‘인적 자원’의 관리를 의미하며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직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HRM(Human Resources Management)은 채용, 평가, 보상 등 인사관리의 전반적 영역을 다룹니다. HRD(Human Resources Development)는 인재개발의 전반적 영역을 다룹니다.


흠…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채용, 발령, 퇴직이 전부가 아니었다. HRM, HRD, ER, OD 등 한 번도 머릿속에 넣어보지 않았던 용어들 뿐.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무슨 일을 하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하긴, 신입사원 시절 인사팀에서 오라고 할 때, 마케팅 부서에 꼭 배치시켜 달라고, 대학 때부터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고 그렇게 주장했는데도, 예상했던 일과 굉장히 다르지 않은가? 회사일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그게 어떤 일인지 전혀 모르는 거다. 게다가 이제 입사한 지 1년을 갓 넘었으니 더더욱이.


사실, 지금 팀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매일 리뷰하는 매출에 대한 압박, 사유 분석, 대안 마련 등..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업무들이었다. 신입 때 멘토라고 붙여준 나의 상사는 자신의 일을 쳐내느라 바쁘고, 바쁘고, 또 바빴다. 나는 거의 혼자 위험 천만한 모래벌판을 지나 바다를 찾아 나선 새끼거북이와 다름없었던 것.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예전 자료 뒤져가며 간신히 지금의 일을 따라가고 있는 신세였던 거다.


이곳에 계속 있어봤자 지금 옆에 앉아 있는 대리님, 그 옆 과장님과 같은 일을 하겠지.라는 생각에 접어들자 마음이 굳어졌다.


‘새로운 시작을 다시 한번 해보자. 일단 고.’




'사람 인' 자의 뜻을 알고 계시나요?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 문자이다라는 말이 가장 많긴 한데요. 저는 이 문장이 더 와닿더라고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글자로, 사람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라는 조직도 한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잘 굴러가진 않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함께 움직여 나아가야 회사도 성장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뛰어난 천재인 스티브잡스와 같은 분도 혼자서는 애플, 픽사와 같은 기업을 이뤄낼 수 없었을 겁니다.


사실, 인사의 한자 풀이는 직원관리, 임용, 해임, 평가 등과 관련된 행정적인 업무라는, 딱딱하기 그지없는 정의로 적혀있습니다. HR, Human Resources는 '인적 자원'의 관리를 의미하며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직무로 정의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론 상으로는 맞습니다. 회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직원과 조직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 비중을 정하라 하면 '사람'에게 조금 더 무게 추를 옮겨 두고 싶어요. 사람이 있어야 회사도 살아나는 것이니까요. '인사'라는 직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부터 가져보는 걸 권해 드립니다.


다음 편부터는 좀 더 '이론적'인 내용들을 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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