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만족도 조사 '진짜' 실무
12월이다. 이제 직원 만족도 조사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즌.
한 대리님은 다양한 문서들을 적금 붓듯 차곡차곡 보내주셨다. 폴더에 모두 모아놓고 나니 얼마 전 설명을 들었을 때 보다 양이 꽤 되었다. 이게 다 작성해야 하는 자료들이라니. 허걱.
마음을 가다듬고 제목 앞에 ‘중요’가 적혀 있는 파일을 열었다. 조사 기간 동안 해야 할 업무들이 일정에 따라 ‘PDR, Plan-Do-Review’ 단계로 정리된 문서였다. 여기 적혀 있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이지 실제 어렵지 않은 일들이라고.
처음 맡는 업무지만 내가 메인으로 해보기로 했다. 대신 작은 부분까지 대리님의 검토를 받으면서. 인사에 와서 무언가를 책임지고 리딩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하신 듯했다. (맞.. 죠...? 손 떼려고 그러신 거 아니.. 죠?)
문서를 출력해 노트북 아래쪽에 붙여 놓았다.
‘이대로만 하면 된다 이거지. 까짓것 시작해 보자.’
[ Plan ]
1. 운영계획 보고서 작성, 문항 확정
2. 포스터, 리플릿 등 홍보물 제작 (디자인팀 요청 가능)
3. 인트라넷 Pop-up 신청
4. 설문조사 시스템 설정 (조직도, 직원정보, 문항 등 입력)
1. 운영계획 보고서 작성은 어렵지 않았다. 기존 자료에 일부 정보들만 업데이트하면 되었기 때문. 목적, 시기, 대상, 조사방법, 직원안내 일정/방법을 현시점에 맞추어 수정했다. 개선/변경사항 란에는 ‘업무 단순화’에 대한 문항이 추가되었다고 적었다. 부문 별로 중첩되는 업무가 많고 효율이 낮아졌다는 피드백을 줄곧 받았었기에 이번 조사에 반영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 또 하나, 척도 구분과 집계 방식이 달라짐을 명시했다. 설문 결과 산정방식이 이리 다양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 척도구분: (기존) 매우 그렇다~그렇다, 5점 척도 → (변경) 6점 척도로 변경, 중간을 '찍지' 못하게 함
- 집계방식: (기존) 각 척도 별 점수 반영 후 평균값 산정 → (변경) Top2 ‘그렇다, 매우 그렇다’로 응답한 직원들의 비율을 점수화
2. 포스터, 리플릿 제작은 디자인팀이 담당해 줬다. 대신 콘셉트이나 내용은 인사에서 작성 후 전달해야 했기에 꽤나 신경을 썼다. 특히 내가 인사팀 밖에 있을 때(마케팅팀 소속일 적) 직원 만족도 조사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오해를 풀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어 별 관심이 없다거나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다거나 등과 같은 것들. 리플릿 내 FAQ 란을 추가하는 방법을 제안했고 흔쾌히 승인도 받았다. 추후 임원진에 개선점으로 어필도 하고 인정받은 뿌듯했던 포인트다.
- 설문 결과를 통해 이뤄진 제도나 프로그램에는 무엇이 있나요?
- 답변 내용으로 인한 불이익이 있을까요?
- 우리 부서의 결과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3. 인트라넷 Pop-up 신청은 전자결재 품의서를 올리면 그만이었다. 직원들이 로그인했을 때 자동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전사적으로 직원 만족도 조사가 진행됨을 반 강제적으로 알리는 툴로 유용한 듯하다.
4. 시스템 세팅. 요게 가장 복병이었다. 대상자와 문항을 사내 설문조사 시스템에 입력만 하면 끝인 줄 알았으나 크나큰 오산이었다는.
인사시스템 담당자로부터 받은 전사 재직자 데이터를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쉽지 않겠구나.
실제 이 일을 할 때 눈알의 핏줄이 가실 줄을 몰랐었다. 목 디스크 증상도 좀 생긴 것 같은…
분류 작업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았다.
- 대상자: 3개월 이상 근무한 직원만 포함(입사일 기준 구분), 현재 비근무자 제외(병가자, 휴직자 등)
- 직책: 임원, 부서장, 매니저, 사원 네 단계로 구분 (예, 부문장, 본부장, 실장을 임원으로 통합)
- 부서: 조직도 상 본사와 현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최상위 상사가 같을 경우 이동하는 작업
작업에 있어 큰 도움이 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데이터의 신 이 대리님이 주신 인사시스템 코드. 비슷한 속성끼리 규칙성을 가진 코드값 덕분에 분류가 손 쉬었던 것이다.
엑셀 수식 창에는 Vlook-up 이 자주 등장했다. IF, COUNTA 등과 같은 단순한 함수들도 해당됐다. 역시 회사원이라면 MS(Microsoft)를 어느 정도 이상 다룰 줄 알아야 하겠다.
[ Do ]
1. 임원 및 유관 부서 사전 안내 (유관부서: 사업장 별 인사 담당자, 부문 커뮤니케이터)
2. 포스터 게시 (인트라넷, 사내 게시판 등)
3. 설문조사 실시 및 응답률 점검, 부서장 공유
1. 준비를 마쳤으면 이제 임원과 유관 부서에 사전 안내를 해야 한다. ‘이제 곧 설문조사가 진행될 테니 소속 직원 분들을 독려하고 안내할 준비를 하셔라. 특히 어떤 점이 변경되었고 강조할 사항은 무엇이다.’라는 걸 미리 알리는 단계다. 다행히 이전에 사용하던 이메일을 전달받았고, 일정, 대상자 등 올해 바뀐 내용들만 살짝씩 바꿔주면 그만이었다. FAQ로 추가한 내용을 특히 강조하기도 했다.
2. 설문조사 전날, 포스터와 리플릿을 배포한다. 인트라넷의 전사게시판에 포스터를 게시하면서 리플릿을 첨부해 주면 그만. 사내 게시판은 총무팀의 승인을 미리 받아두었다. 누구나 아무거나 게시하면 안 되니 총무팀에서 게시판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
3. 설문조사를 운영할 차례다. 접속링크를 전 임직원 이메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준비기간에 비해서는 휴식기나 마찬가지였다. 가끔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의 위치를 반대로 인지하여 체크한 분들이 정정을 요청해 오면 불가하다고 답변하는 정도의 수준. (익명이기에 개인의 응답 확인 불가) 추가로, 응답 독려를 위해 부문별 응답률을 정리하여 2~3일에 한 번씩 부문장들에게 공유도 병행했다.
Review
1. 결과 Quick Report 작성, KPI update, 경영진 보고
2. 전사 상세 리포트 제작
3. 경영진 보고(이메일 활용, 상황에 따라 설명회), 부서별 리포트 배포
4. 전사 프로젝트 & 부서별 활동계획 수립/리뷰
1. 최종 리포트를 보고하기 전, 만족도 점수만 먼저 빠르게 정리하여 상부에 보고한다. 각 문항별, 항목평균 점수를 전사, 본사, 사업장으로 구분한 엑셀 파일이다. 지난 설문조사 점수도 반영하여 차이도 함께 볼 수 있도록 해둔다. 이 자료는 경영진들에게 먼저 공유하여 현황을 알도록 하고,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에 해당되는 문항의 점수를 확인하기도 한다. 부문 별 점수 집계 전, 인사부문의 숫자만 먼저 정리해서 상무님께 보고 드리는 건 안 비밀이다.
2. 이제 컨설턴트로 빙의할 차례다. 약 30페이지가량의 분석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 처음엔 이 또한 기존 자료와 유사하게 업데이트하면 그만이겠다 싶었다. 그러나 선, 막대형, 방사형 등 각양각색의 그래프에 업데이트하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꼬박 걸릴 듯 보였다. 게다가 전체, 사업장, 문항, 직책, 상/하위 문항, 주관식까지 분석해야 한다. 무엇보다 각 숫자를 보고 요약과 인사이트를 적어야 한다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멍 하니 앉아 보고서만 들척거리는 나를 보던 대리님이 한 말씀하셨다.
“주임님, 이 참에 조금씩이라도 바꿔보는 건 어때요? 얘기 들어보니 파워포인트 실력 꽤 좋다고 하던데. 기대할게요.”
네... 예? 있는 그대로 업데이트하기도 벅찬데 뭐, 뭐라고요?
잠시 후, 대리님의 말 한마디가 불을 지핀 것일까. 리포트를 제대로 만들고 싶은 의욕이 불타올랐다. 자료를 물고 뜯고 씹었다. 필요 없는 항목이나 더 의미 있는 지표가 있을지 고민했다. 포스트 밑에 각 장표들의 제목과 안에 들어갈 대략적인 내용들을 메모하며 나열해 보기도, 그래프 종류와 서식을 살짝씩 바꿔 보기도 했다.
일주일은 걸렸던 것 같다. 자료를 완성하는데. 물론 대리님께 방향성이나 진행상황을 중간중간 보여드리기도 했다. 대리님은 그때마다 간략한 코멘트만 덧붙였을 뿐 잘하고 있다고 응원만 한가득 전해주었다. 아마도 직장생활 1년 반 중 가장 몰입했던 시기, 성취감을 경험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상무님은 새로운 리포트를 만족스러워하셨고, 경영진 앞에서 설명회를 하자는 제안까지 하셨다. 그것도 내가 직접.
주임 나부랭이가 전무님, 상무님들 앞에서 설명을요?라고 '표정으로' 강하게 말했으나 아쉽게도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3. 보통 경영진들에게는 이메일로 결과가 안내된다. ‘이번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는 이러하다, 부문 별 결과 리포트도 잘 보시고 개선 계획을 수립하셔라.’ 등의 내용을 담아서. 그러나 이번에는 대면으로 설명회를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내가.
파워포인트 화면의 슬라이드 노트에 할 말을 적었다. 그걸 작게 출력해서 손에 쥐고 연습했다. 백 번은 한 듯하다. 열 명 남짓의 임원진들 앞에서 사시나무 떨 듯 설명회를 마친 날. 손금 사이사이 땀이 줄줄 흐를 지경이었다. 이런 시련을 왜 저에게 주시나요.
이 날,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직원 만족도 조사 담당자입니다.’라는 사실은 확실히 심어준 것 같다. 덕분에 이후 진행현황을 운영하기에 한결 수월해진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4. 결과가 모두 배포되었으면 이제 전사 프로젝트, 부서별 활동계획(Action Plan)을 수립할 차례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퍼실리테이터 (Facilitator) 정도였다. 점수가 낮게 나온 문항들에 해당되는 인사 팀장님들께 관련된 주관식까지 모아 전달하며 프로젝트가 시작됨을 알렸다.
부문별로 정해진 커뮤니케이터 분들께 부서의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와 활동계획 수립 양식을 전달했다. 이후 수립한 계획을 받고, 진행현황을 리뷰하고, 잘 한 부문을 시상, 홍보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직원만족도 조사의 운영기간은 10일, 준비부터 결과 배포까지 약 두 달가량이 소요되었다. 물론 처음 맡은 일이었기에 업무량이 배로 체감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인사의 일의 8할은 물 밑에서 이뤄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상승 능력치**
Power point & Excel 스킬, 이메일/전화 등 커뮤니케이션 스킬, 발표 스킬, 임원 대면 능력
(이번 글은 어떻게 하면 인사 담당자 일을 보다 알기 쉽게,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형태를 조금 바꿔보았어요. 지난 주와 같은 주제인 '직원 만족도 조사' 이지만, 김 주임의 시야에서 주도적으로 수행한 업무 절차와 노력했던 부분들까지 담아서요. 모쪼록 한 분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들은 인사 KPI, 프로젝트, 인력운영 등의 순으로 연재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