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jective와 KPI의 진짜 힘
몰랐다.
지금 이 회사에 몸 담고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치밀하게 빚어진 그릇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작은 점들로 구성된 거대한 생명체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잘 올라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와 함께.
얼마 전, 사수로부터 받은 자료를 읽어 내려가며 나의 동공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전 부서에서는 전혀 몰랐던 ‘Objective’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의 '진짜' 힘을 알게 되었기 때문. 그전엔 눈앞에 주어진 일만 열심히, 성실히 임했었다. 그 모든 행동들이 회사에서 치밀하게 짜 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자료는 총 세 가지였다.
항목 별 Objectives(목표)
각 목표의 달성 여부를 측정하는 Measure(지표) 중 KPI
인사의 Objective, KPI, 보고자료들
당시, 한 대리님은 자료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었다.
‘여기에 있는 Objective, KPI는 최고 경영진이 정한 거예요.
제일 앞 쪽에 큰 항목들 먼저 볼까요? ‘재무, 고객, 운영, 인사’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눠져 있는데요. 이게 바로 회사의 전략을 달성하기 위해 영역을 구분해 둔 겁니다. BSC, Balanced Score Card를 기반으로요. 매출, 이익과 같은 숫자만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단단한 조직으로 나아가도록 일종의 장치를 마련해 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다음으로, 각 영역에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목표인 Objective와, 이를 측정하는 지표, KPI도 정해져 있어요. 즉, 우리 회사는 목표를 할당하는 Top down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문서의 가장 오른쪽을 보면 임원 이름이 적혀있죠? 임원들의 성과는 바로 이 목표의 달성 여부로 결정됩니다. 즉, 책임지고 이뤄내라. 이거죠.
그래서 각 임원들은 매년 연말이 되면 자신이 부여받은 KPI의 달성 목표 수치를 수립합니다. 연말까지 얼마만큼의 성과를 이뤄낼지에 대해서요. 이후엔 진행현황을 분기별로 리뷰하고 연말에 최종평가를 받는 프로세스예요. 아무래도 이익을 내야 하는 조직인만큼 숫자로 증명해야 하는 거죠.’
한 대리님의 설명을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를 해 보았다.
BSC: 재무, 고객, 운영, 인사
Objective: 각 BSC 영역별 목표
KPI: 이 목표들의 측정 지표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이제 내가 작성해야 한다는 인사 쪽 자료를 펼쳐 보자.
인사 부문장님의 이름 옆에는 네 가지의 목표와, 각 목표 별 두세 개의 KPI 가 적혀 있다.
‘이것들을 달성하기 위해 인사 부문 식구들이 다 같이 움직이고 있다는 거지. ‘
얼마 전 운영했던 직원 만족도 조사 문항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에 대한 흥미, 성장 지원, 급여 만족도 등에 대한 질문들이다. 그 외에 퇴직률, 공석율도 보인다.
각 목표들 옆에는 연말까지 달성해야 하는 Target 이 이미 기입되어 있다. 아마도 경영진으로부터 할당받은 숫자들일 테다.
가만 보자. 직원 만족도 조사 문항은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흥미, 성장, 급여 등과 연관된 내용을 기반으로 선택했을 거다. 그럼, 나머지 항목들은 관리를 왜 하는 거지?
한 대리님에게 물어보기로 하자.
대리님 자리 쪽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키보드와 씨름하고 계시네. 이를 어쩌지. 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내 인기척을 눈치채셨나 보다.
"오! 주임님, 무슨 일이에요?"
"저... 여쭤볼 게 있어서요."
"언제든지!, 어떤 거요?"
역시, 최고다. 아무리 바빠도 늘 웰컴해 주시는 모습이 감사할 뿐이다.
"KPI를 작성해 보려고 하는데요. 직원 만족도 조사 외에, 퇴직률, 공석율도 있더라고요. 이 항목들이 KPI로 선정된 이유가 좀 궁금해서요."
"좋아요. 그런 자세. 그냥 주는 대로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니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데려왔네. 하하."
민망함에 머리만 긁적 대는 나를 한번 흘끗 보시더니, 선생님 모드로 돌입하신다.
"먼저, 퇴직률. 재직인원 대비 퇴직인원 수의 비율을 나타낸 숫자인데, 조직이 얼마나 건강한 지, 인사제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주요 지표예요.
만약 퇴직률이 높다면 조직문화, 상사, 성장, 보상 등의 측면에서 직원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조직이 건강하지 않고, 뭔가 치료가 필요하다는 신호인 거예요. 반대로 퇴직률이 낮다면 인사 제도들이 인재 유지에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되는 거고요. 그래서 HR의 주요 성과, 즉, KPI로 활용됩니다.
참고로, 퇴직이 많으면 채용이나 교육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수천 만원 이상의 비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그래서, 퇴직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답니다."
"아... 그렇게 중요한 지표였다니, 몰랐어요.. 그럼 대리님, 정해진 적정 퇴직률이 있는거죠?"
"그럼요. 우리는 12%를 목표로 잡고 있고, 그 미만이면 우리 상무님은 연말평가에서 가장 높은 S 등급을, 유사하면 A등급, 그 이상 넘어가면 B, C를 받게 되는 거죠. 자발적인 퇴직, 즉, 의원면직으로 인한 퇴직률이 10% 이하면 안정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요즘은 입사 1~2년차 퇴직률이 워낙 높아져서..."
"그럼, 여기에서 권고사직은 제외하는 거예요? 계약종료 같은 것도요?"
"네, 맞아요. 조직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보기 위함이니까요."
"아하, 네. 이제 완벽히 알겠어요."
대리님은 한껏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설명을 이어간다.
"다음은, 공석율 볼까요?"
"넵!"
"공석률은 전체 포지션, 즉, 직원들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얼마나 비어있는지에 대한 비율이에요. TO라고 들어봤죠?"
"네, 팀장님들이 TO 대비 인력 부족한데 사람 채워달라고 하시는 말씀을 종종 들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TO는 Table of Organization의 줄임말인데, 각 부서에 확보된 자리의 수를 의미해요. 즉,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한 숫자인 거죠. 만약 공석률이 높다면 필요한 자리에 사람이 제때 충원되지 않아서 업무 진행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을 뜻하고요. 기존 직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나기도 하고 그럼 부서 분위기는 물론 직원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치죠. 특히, 핵심 포지션, 즉, 회사의 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자리의 공석이 오래 유지된다면 그 문제는 더 커지고요.
그래서 우리 회사는 임원급, 팀장급, 매니저급의 공석률을 KPI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자료에 공석률이 직책별로 나누어져 있었던 거군요..."
"네, 참고로 우리 회사 공석율 목표는 2%입니다. 직책자를 미리 양성해 두기도 하고, 외부에서의 회사 선호도도 낮지 않아서 빈 자리는 대부분 바로 채워지는 편이에요. KPI로 관리하는 만큼, 승진과 채용 담당자들이 신경 쓰기도 하고... 자, 여기까지! 퇴직률, 공석률에 대해 더 궁금한 점 있어요?"
"음...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이제 제가 자료 보면서 작성해 보는 것만 남은 것 같네요. 헤헤."
"좋아요. 자료 중에 'HR KPI 참고자료' 보면 계산에 활용한 데이터도 있고, 수식도 걸려 있으니 찬찬히 보면 다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모르는 점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시고!"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리로 돌아와 대리님이 말씀하신 파일을 열었다.
직원 만족도 조사 문항은 응답 점수로 반영하면 되고... 나머지 항목들은 어떻게 작성하는 거지? 대리님 말씀대로라면 단순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어랏. 내가 수치를 분석하는 게 아니잖아. 사업장 별로 나뉘어 있고, 직책별로도 구분되어 있네. 게다가 어디가 공석인지도 적혀 있는데, 이걸 나 혼자서 어떻게 다 작성하지?
수많은 물음표가 동동 떠다닌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찬찬히 뜯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