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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과 팀장님들 앞에서 발표를 명받았습니다.

인사팀 프로젝트,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by 리유


수 십장의 보고서를 한 팔로 꼭 감싼 채 대리님 뒤를 졸졸 따라 걸어갔다.

묵직한 문을 밀고 들어가니 왠지 모를 중합감이 밀려왔다. 앉을 자리를 찾자 대리님이 손짓하신다.


"김 주임님, 이리로 와요."


세상에, 테이블 상석, 상무님 자리의 바로 옆이다.


"주임님이 준비한 자료이니 팀장님들께 직접 설명드려야지."

"네? 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2주간 공들인 결과물. 잘 전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덟 분의 팀장님, 그리고 상무님. 겉으로는 웃고 계시지만 우리 회사 엘리트들 아닌가. 날카로운 지적들이 난무할 텐데 어쩌지. 아 떨려.


이어서 대리님이 말씀하신다.


"팀장님들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미팅은 내년도 인사의 중점 프로젝트와 리더를 정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올해 프로젝트 성과와 부족했던 점, 그리고 사내 외 현황에 대해 자료를 준비한 김지유 주임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리님이 나에게 말을 시작하라는 눈짓을 보내신다. 긴장하지 말자. 직접 한 땀 한 땀 찾아보고 정리한 내용 아닌가. 핵심만 요약해서 명확하게 전달하자. 머릿속에 점을 찍었다. 큰 주제 두 개, 그 아래에 각각 세개씩. 점을 따라 가자. 다른 길로 새지 않게. 시이작.



"아, 네. 어제 배포드린 자료와 동일한 내용이기에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먼저 올해 진행된 다섯 개 프로젝트 중 네 개는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고 경영진 또한 성과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단, 한 가지, 업무단순화 프로젝트는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상세 성과와 개선점은 상세 자료를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팀장님들은 각자 들고 오신 노트북의 자료들을 훑어보시는 듯 했다. 한 템포 쉬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다음은, 내외부 현황에 대해 공유드리겠습니다. 먼저 외부지표 먼저 보시겠습니다. 고유가, 달러약세, 고금리 등으로 인한 저성장 경제가 지속되고 있어 소비심리 및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20대의 높은 실업률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에 따라 인재풀은 많으나, 직무에 적합한 인재 채용이 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또한 비정규직 보호법안 확대 적용으로....."



브리핑이 끝난 후, 팀장님들은 본격적으로 내년도 프로젝트 선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기존 프로젝트를 Phase2로 확대 운영하자, 새로운 활동을 추가하자 등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다. 나의 눈과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긴장됐던 마음을 달랠 새도 없었다. 회의록을 정리해서 바로 공유해야 하기 때문.


대리님은 중간에서 의견들을 조율했고 상무님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이유와 함께 의사결정을 내리셨다. 이어서 각 프로젝트를 맡을 리더분들을 또한 정해졌다. 대부분 맡고 있는 업무 속성과 유사하게 자원했고 최종 확정까지 되었다.


"네, 팀장님들. 그럼 이것으로 미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내년도 프로젝트는 네 가지로 모아졌으며, 경영진 보고 후 확정 시, 각 리더분들께 향후 진행 계획과 요청사항을 안내드리겠습니다. 오늘 미팅 회의록 또한 바로 공유드릴 예정이니 진행현황 등 상세히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났다. 무슨 정신으로 앉아 있었는지. 휴.

자리에서 일어나 미팅룸을 나가는 팀장님들께 '수고하셨습니다.' 라며 연신 인사를 하고 서류를 정리하던 차였다. 옆에 앉아 계시던 대리님이 한 말씀하신다.


"김 주임님, 브리핑 최고였어. 역시."

"앗, 넵. 대리님이 가이드라인을 잘 주셔서..."


"하하. 주임님이 다 한 거지. 직접 자료 찾아보고 정리하고 발표까지. 아주 잘했어요. 오늘 회의록 초안은 작성해서 제게 보내주면 검토할게요. 프로젝트 멤버 소집 메일도 함께요."

"넵, 알겠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의자에 앉자 저 어딘가에서 묘한 성취감이 올라왔다. 대리님의 뿌듯한 눈빛과 '잘했다'라는 말이 되감기 하듯 나타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였고 상무님과 팀장님들이 배석하는 자리에서의 보고도 처음이었다. 그만큼 부담되었고 어려웠다. 하지만 해냈다. 그것도 잘. 무엇보다 내가 만든 자료들이 리더들의 토론 중심에 놓이는 경험은 짜릿하기까지 했다.


'잘했어.'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다독이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써 내려간 회의록을 보기 좋게 다듬고 대리님에게 발송. 이어서 '메일 쓰기'를 눌렀다. 멤버 모집을 해야 한다. 일단 적어보자.



제목: HR Project 멤버를 모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한 1년 단위의 전사적 개선활동인 “HR Project”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 외부의 환경변화와 직원 만족도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다음의 네 가지 프로젝트가 선정되었으며,

직원 만족도 향상에 따른 더 나은 고객 서비스 제공, 회사 매출과 이익 증대에 기여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




메일을 쭉 쓰고 나니 제대로 실감이 났다. 이제 시작이구나. 일 년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가.

Project Brief 작성부터, 중간 점검, 최종 리뷰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일을 할 때는 잡음이 나기 마련이랬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고.

쉽지 않을테다. 불편한 일도 분명 있을거다. 그래도 믿어보자.

첫 단추를 잘 잠그었으니 다음 단계도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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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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