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페리 예약
22. 12. 25: Day 10,
입도에 하루, 출도에 하루. 오전 페리 예약이 여의치 않아 오후 페리를 타야 하는 여행자에게 섬과 섬 사이를 오가야 하는 현실은 일정상의 어려움을 더한다. 그러나 어려움이라는 것 역시 페리를 탈 수 있어야 겪는 법, 티켓이 없다면 일정은 늘어질 대로 늘어질 수밖에 없다.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호스텔 주인아저씨께서 돌아오셨고, 한국어 어휘와 스페인어 어휘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알려주며 스몰 토크를 나눴다. 대화 소재가 떨어질 무렵, 다음 날 이사벨라 섬으로 향하는 배편을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문제없다며, 전화를 꺼내 통화를 하시던 아저씨의 얼굴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들려오는 no. 그렇게 첫 번째 전화가 끊겼다.
말 붙일 새도 없이 주인장 아저씨께서는 급히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거셨고, 딱딱히 굳어버린 표정,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았다. 전화를 끊은 아저씨께서는 얼굴을 찡그리시며, "No seats tomorrow. Too late.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산 크리스토발 섬에서 산타 크루즈 섬으로 넘어오는 배편을 구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기에 이해가 어려웠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산타 크루즈 섬으로 넘어오는 배편도, 갈라파고스 공항이 위치한 산 크리스토발 섬으로 넘어가는 배편도 아닌, 가장 개발이 덜 된 이사벨라 섬으로 향하는 티켓이 없다니 아다리가 전혀 안 맞았다.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아,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인 줄 알면서도 배편이 없는 이유를 아저씨께 정중히 여쭈어 봤고, 돌아온 대답은 단어 하나. "Christmas."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마법의 단어였다.
섬 전체의 배편을 어느 사무소의 여성 직원 한 분이 관리하시는 듯했는데, 그 어느 배에도 나 하나 태울 자리가 없다는, 크리스마스로 인해 사람들이 이미 배편 예약을 모두 마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에는 늦게 잡아도 가족 여행이 아닌 이상 한 두 좌석은 남아있기 마련이나, 아저씨께서는 성수기가 겹쳐 좌석이 일찍 다 팔려나간 것 같다며 연신 미안해하셨다. 코로나 이후로 맞는 실질적인 첫 크리스마스라 예측을 못하셨다며...
머리가 지끈거렸다. 산타 크루즈 섬에 계속 머무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고, 이사벨라 섬에서 2박 3일 간 머무를 요량이었기에 다음 날 떠나기도 애매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음을 기약하기에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가볼 곳은 그보다 더 많기에, 일단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넘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저씨께 다음 날 배편과 돌아오는 배편을 알아봐 주실 수 있냐고 여쭈어 봤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배편은 있는데, 가는 배편은 없는 기가 막힌 상황. 가는 사람만큼 오는 사람도 있어야 할 텐데, 상식이 통하질 않았다.
미안해하시는 아저씨께 괜찮다, 여행하면 생기는 일 아니겠는가 투의 이야기를 하며, 털레털레 지친 몸을 끌고 방으로 올라갔다.
예약한 숙소를 무료 취소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고, 산타 크루즈 섬에서 달리 할 만한 투어 혹은 방문할 만한 다른 장소가 있는지를 검색했다. 결과적으로, 숙소 취소는 운에 맡기기로 결심하고 묵고 있는 호스텔에서 추가적으로 며칠 더 머무를 수 있는지 여쭈어 보기 위해 다시금 프런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다가오는 내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이셨는지, 호스텔 주인아저씨께서 잠시 앉아볼 것을 권하며, 한 번 더 배편을 알아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들려오는 스페인어 단어 하나. 꺼삐딴.
생활 스페인어라고 지칭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스페인어를 구사하기에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으나 정황상 배의 선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시고 자리가 있는지 여쭈어 보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두어 번 통화가 오갔을까, 아저씨께서는 씨익 웃으시며, 엄지를 들어 올리셨고, 마지막으로 여직원과의 통화를 마친 후 "I booked one for you."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우여곡절 끝에, 천만다행으로 어떻게 배편을 구하게 되니 행복했고, 온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떠나 저녁식사를 해결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사다난했으나 결국은 어떻게 풀리기는 풀린 하루였다. 럭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