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작가는 결론적으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살아가는 힘은 물질이나 자기 계산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사랑과 나눔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근데 진짜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나는 사람은 사람으로 산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스트레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사람이든 내 주변에 있기만 하면 '살 수 있다'가 아니라 / 그 어떤 한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삶을 단순히 영위하는 주체에서 나아가 살아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나 존재의 목표는 그 '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그 '한 사람' 들이 우리의 삶을 함께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이걸 처음 생각하게 된 건 전공 시간에 배운 Emmy E. Werner와 그 동료들이 수행한 'Kauai Longitudinal Study (카우이 섬 종단연구)' 에서였다.
연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복탄력성 (resilience)' 개념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는 역경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잘 적응하거나, 오히려 이를 성장의 계기로 삼는 능력을 뜻한다고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은 아무리 온실 속의 화초로 자란다 하더라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는 환경' 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중요한 건? 어려움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다. 아마 이게 인생의 많은 측면에서의 퀄리티를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 있겠다.
이 연구는 오랜 기간에 걸쳐 피험자들을 추적한 종단 연구다. 당시 하와이의 작고 가난한 섬 Kauai의 아이들은 대개 불우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하와이의 섬이었으나 그 소득이 너무 적고, 인프라가 열악한 섬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기는 참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이 학자들도 '상황/환경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55년 이 섬에서 태어난 약 700명의 아이들을 아동기/청소년기/성인기까지 반복해서 조사한 결과, 예상한 것처럼 그 중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그랬듯 불우한 삶을 반복하고 있었다. 알코올에 중독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낮은 소득을 기록했다.
그 런 데
연구자들은 뭔가뭔가 특이한 지점을 발견한다.
가난, 가정갈등, 부모의 정신건강 문제 등 여러 위험요인에도 불구하고 약 1/3 정도의 아이들은 '잘 성장' 했다. 심지어 보통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보이기도 했다. 왜지?? 단순히 몇몇 아이들의 타고난 기질이 남달라서 .. 라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연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놀라운 결과를 밝혀낸다.
이 아이들이 인생에서 많은 고통/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회복탄력성을 바탕으로 '괜찮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데는 보호요인 (protective factors) 의 힘이 컸다. 아이들의 공통점은, "한 사람 (또는 몇몇 성인) 이 아동을 꾸준히 지지하고 믿어 준 것" 이었다. 부모와의 안정적 애착, 설령 부모가 아니더라도 교사/멘토/이웃의 지지, 종교/지역사회의 안정감이 그 예시가 될 수 있다. 즉 이 아이들이 처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지지"가 위험 환경을 완화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 "위험요인이 있으면 사람들의 삶은 불우해진다"는 결정론적 관점을 반박하고, 어느 정도 개인의 특성과 적어도 한 명의 일관된 지지자가 있다면 우리는 탄력회복성을 바탕으로 역경을 극복해 낼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에게 있어서 '관계 맺기' 와 '안정된 지지자' 가 얼마나 중요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배울 때도 인상깊었어서
오 ... 하면서 공부하기는 했지만 최근에 갑자기 이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나한테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떠올린 예시는 역경도 어려움도 딱히 아니긴 한데
어바웃 글을 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그 중 브런치에는 목표로는 1주일에 한 번 올리겠다는 나름의 다짐으로 지금까지 쭉 글을 써 왔다.
그러나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이
봐 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글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바탕으로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사실 비로소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에 눌리는 공감이나 댓글도 참 좋지만
제일 처음부터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우리 엄마가 계속 댓글을 남겨 주셨다. 지금까지 내가 올린 어바웃 글에 아마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댓글이 달렸을 거다. 집에서 거의 매일 얼굴을 보고 엄마랑 이야기를 하지만 브런치에 달리는 엄마의 댓글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완전한 타자의 이름으로 나타난 엄마의 생각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신기하고 그 생각을 알 수 있어서 글을 쓰는 게 더 좋아진다. 2년 전부터 어바웃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그래도 쓸 수 있었던 데는 이 댓글의 지분도 꽤 크지 않을까??
이것도 어째보면 "한 사람의 지지"를 받고 회복??탄력??성?? 을 키운 예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님말고 ..........
아 무 튼
이 실험을 생각하다 보면 또 <안나 카레니나>의 키티와 레빈이 떠오른다. 세상에서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도 아니지만 서로를 온전히 생각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한 사람들의 모습은 참 보기에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한 커플인데
단순히 연인이나 배우자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참 다양한 종류의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친구로 멘토로 부모로 선후배로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이런 사람을 딱 한 사람만 만나도 그건 정말 성공한 삶 아닐까요??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인데
유튜브에서 참 인상깊은 댓글 하나를 봤다
"사실 우리는 사랑 하나면 되는데"
이걸 조금 바꾸어 보면 사실 우리는 딱 한 사람 하나면 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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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변에는무조건적지지를보내는사람들만왕창있어서예쁨만받는개꿀인생살게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