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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Feb 25. 2024

231005) 싱가폴 1일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체크아웃을 했다. 하니아 공항에서 라이언에어라는 저가항공을 타고 아테네공항으로 가서 거기서 싱가폴항공을 타는 일정이었다. 


라이언에어가 연착으로 유명하다고 해서 넉넉하게 이른 시간으로 예매해놓고도 불안했다. 아테네공항에 제때 떨어지지 못하면 그 뒤로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환장하게 만든 건 연착이 아닌 전혀 다른 일이었다.


라이언에어의 체크인카운터에 가서 수속을 밟으려니 직원이 무슨 숫자를 적어주었다. 이곳은 온라인체크인을 하지 않으면 공항에서 체크인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받은 메일에도 그런 말이 없는데 세상에 기가 막혀서… 라이언에어가 유럽에서 괜히 악명 높은 게 아니었다. 






심지어 이렇게 버스터미널처럼 모여 있다가 저기로 걸어가서 직접 비행기에 탑승해야 하는 신기한 방식… 대기하는데 탑승객들이 담배 피우고 정말 내내 헛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은 예뻐서 웃겼다.





일출을 보며 크레타를 떠났다.





아테네에 도착해 버거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의 마지막 식사가 버거킹이 되었군… 이건 툰이 사주었다.






햄버거를 먹으며 캐치마인드를 했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어떡하지 하면서 게임을 한 건데 이거 하다가 시간에 쫓기면서 겨우겨우 체크인을 했다. 아주 위험한 게임이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싱가폴항공의 기내식이 왜 맛없기로 유명한지 모르겠다. 나는 다 맛있었는데.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서 두 번째 갈아타는 비행기여서 기내식을 먹은 뒤 완전히 기절했다. 






휘황찬란한 싱가폴의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경유 시간이 좀 길어서 시내에 숙소를 잡아 짧게라도 잠을 자고 오기로 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그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어서 어쩐지 좀 얼떨떨했다.





Cube Boutique Capsule Hotel @ Kampong Glam


저 파란 천막이 우리가 묵은 캡슐 호텔. 현지 분위기가 아주 물씬 났다.






캡슐 호텔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관짝 같은 데에 들어가 있으니 잠이 잘 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관짝 안에 콘센트가 없다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배터리가 좀 있었으니 망정이지, 여기만 믿고 방전시켜서 왔다가는 큰일날 뻔했다.






그 점만 제외하면 하루 정도 잠깐 지냈다 가기엔 나쁘지 않았다.





Blanco Court Prawn Mee


숙소 근처의 유명한 국수 전문점. 라임 주스도 옆에서 같이 파는데 시원하고 맛있다.

2주 내내 그리스 음식을 먹다가 뜨끈한 국물을 먹으니 내가 한국에 돌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알록달록한 길거리도 왠지 정겨웠다.






싱가폴은 싱가폴인지 국수를 먹고 나니 급격하게 햇빛이 뜨거워졌다. 알아본 카페는 없어져있거나 테이크아웃카페거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빈 자리가 있는 아무데나 들어갔다.





과연 여기만 비어 있는 이유가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희한한 맛의 음료였다.

그저 시원한 곳에 자릿세를 내는 데 의의를….





맛만 본 싱가폴이 아쉬워서 언젠가 오게 될 것 같긴 하다. 물가는 너무 비싸지만.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돌아왔더니 터미널을 잘못 내려서… 식겁했지만 바로 앞에서 전철을 탈 수 있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우리 여행.





그 와중에 이런 걸 찍고 있고 이런 걸 찍고 있는 이들을 찍어주는 친구.






출국장까지 도착하니 이제는 정말로 비행기를 타기만 하면 되는 거라 바로 앞의 카페에 들어갔다. 남은 싱가폴 달러를 탈탈 턽기 위해서 주스를 두 잔 샀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쉬워하다가 유로로도 계산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리고 툰의 유로를 또 털었다. (날강도들)


마침내 만족하며 초콜릿 머핀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가 탈 비행기의 라스트 콜이 떴다.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아 있었는데 황당… 노닥거리고 있다가 급하게 짐을 챙겼다.





비행기를 네 번 타면서 내내 따로 탔는데 마지막 비행기에서 셋이 붙어서 왔다. 내가 가운데 껴서 조금 고통받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즐거웠던 기억이 되었다.






<엘리멘탈>을 여기서 보았다. 귀여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또 한번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에 도착했다.




여행이 끝난 지 세 달이 지났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정말 저곳을 다녀왔나 의심이 들곤 한다. 어쩌면 좋은 꿈을 꾼 걸지도 모른다.


이 여행을 다녀온 뒤 운이 좋게도 첫 소설집을 계약했고, 덕분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부지런하게 소설을 써야만 한다. 그러니 당분간 장기 여행은 갈 수 없겠지만 이 좋은 꿈이 나에게 어떤 기운을 가져다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곳에서 생의 의지를 되찾아 온 덕에 내년까지 열심히 살아갈 일이 또 생긴 거라고.


그러니 살아본다. 이때의 14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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