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 밤에 소희는 현관 신발장의 맨 위 칸에서 열쇠를 발견했다. 사 개월 전 이사 온 이후 들여다본 적 없는, 간이 의자를 딛고 올라서야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황동색 원형 문고리 네 개를 넣어 두다가 손끝에 금속 재질의 작고 납작한 물건이 스쳤다. 소희는 열쇠라는 물건 자체를 아주 오랜만에 보았다. 아마 연호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는 열쇠로 잠그는 무언가가 없었다. 소희는 부엌으로 가서 연호에게 열쇠를 보여 주었다.
“저 방 열쇠인가?”
연호는 설거지를 하면서 복도 너머를 눈짓했다. 소희는 부엌을 나와 복도를 지나 현관 맞은편으로 갔다. 연호가 고무장갑을 낀 채로 따라왔다.
“뭐 해?”
“맞는지 보려고.”
문고리의 구멍에 밀어 넣은 열쇠는 끝까지 들어가 맞물렸다. 그대로 비틀어 잠긴 문을 여는 대신 소희는 주아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길게 이어지는 신호음 사이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연호의 고무장갑에서 떨어진 물이 복도에 점점이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연호가 설거지를 마치는 동안 소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를 받지 않는 주아에게 카톡을 보냈다. 열쇠를 찍은 사진도 첨부해서. 그러다 습관처럼 프로필 사진을 눌렀다. 커다란 성당 앞 광장의 분수대에 선글라스를 쓴 주아가 걸터앉아 있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소희는 검지와 중지로 화면 속 사진을 늘려 보았다.
그곳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라는 건 십 분 뒤에 알게 되었다. 주아는 쾌활한 목소리로 일주일 뒤에 귀국해서 열쇠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뒤 소희는 현관에 간이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신발장 맨 위 칸, 네 개의 문고리 옆에 열쇠를 넣어 두었다.
*
소희와 연호는 주아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소희는 대학 졸업 이후에도 간간이 주아를 볼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프로필 사진이 바뀐 친구를 친구 목록의 상단에 올려 두는 카톡의 서비스가 주아의 순간순간들을 보여 주었다. 새로운 사진 옆에 떠 있는 빨간 점이 사진을 눌러 보게 했다. 눌러 보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는 빨갛고 작은 점이. 소희는 모텔에서 연호가 씻는 사이 침대에 누워서 주아의 사진을 보곤 했다. 그럴 때면 검지와 중지로 사진을 늘려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는 어디일까. 간혹 뒤에 찍힌 유명한 건축물을 알아볼 때도 있었다. 에펠탑이나 루브르박물관 같은.
소희는 파리에 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공식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A시와 B시에도 가 보지 않았다. 복지와 정책부터 문화 축제의 일정도 줄줄이 읊을 수 있고 유원지의 주차장 요금까지 꿰고 있지만 축제의 길거리 음식은 어떤 맛인지, 그 근처의 도로가 얼마나 막히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매번 포스팅을 쓸 때마다 아름다운 도시 A시에 놀러 오세요, 라는 말을 꼭 썼다. 가끔 댓글에 모르는 질문이 달리면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A시 주무관은 활달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고생이 많다며 A시에 오면 꼭 대접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소희는 그럼요, 꼭 한번 갈게요,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년 전이었다.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의 사진을 걸어 놓는 것만으로 소희의 친구 목록 한 칸을 차지하고 있던 주아가 대화 목록에서도 한 칸을 가져갔던 게. 소희는 연호와 프랜차이즈 빙수 전문점에서 인절미 빙수를 먹다가 주아의 메시지를 받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연호는 고개를 빼고 주아와 소희의 대화 창을 보았다.
너희들 집 구하고 있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