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과 서재, 화장실 두 개의 문고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그 방을 자주 흘끔거렸다. 저기에 뭘 뒀을지 추측해 보기도 했다. 명품 가방과 시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험담을 적은 노트.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다는 친어머니-동기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의 유품. 탈세-이것도 소문으로만 들었다-를 위해 묵혀야 하는 현금 다발. 모두 타인에게 세를 준 집에 둘 물건은 아니었다. 차라리 범죄 현장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가설이 제일 유력했다.
그러면 저 안에 피 묻은 시트랑 범행 도구가 있는 거야?
그건 좀 무서운데.
그럼 어떡해?
그래도 살아야지. 그냥 생각하지 말자.
그들은 상상을 그만두었다. 다행히 그 방은 거실이나 부엌, 안방과 서재와는 동떨어진 현관 앞에 있었으므로 자주 생각나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문고리가 다른 그 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집에 있는 방문이 아니라 옆집의 현관문처럼 느껴졌다. 늘 보이지만 열어 볼 수는 없는.
*
그런데 열어 볼 수 있게 된 거잖아? 저녁에 이를 닦으며 소희는 문득 생각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주아가 오기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다. 잠깐 열어 보고 닫은 걸 주아가 알 방법은 없을 텐데. 소희는 욕실에서 나와 그 문을 바라보고 섰다. 이 문은 옆집의 현관문이 아니라는 걸 방금 깨달았다는 듯이. 차가운 금속 열쇠를 손에 쥐어 보고, 문고리의 구멍에 맞춰 보고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 방은 그들의 집 안에 있는 세 개의 방 중 하나였다.
“넌 안 궁금해? 저 방에 뭐가 있는지.”
연호와 거실에서 빨래를 개면서 묻자 연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소희를 보았다.
“저 방이 궁금해졌어? 왜?”
소희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열어 볼 수 있으니까.”
이전까지 그 방을 열어 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그게 불가능해서였다. 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들에게 열쇠가 있었고 그들이 열어 본 걸 알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연호는 회의적이었다.
“괜히 봤다가 갖고 싶어지면 어떡하게.”
“내가 주아 물건을 가지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
“그럼 왜 보고 싶은 건데?”
“그냥 궁금하잖아.”
그게 다였다. 주아 같은 애가, 이런 집을, 데면데면했던 동기 커플에게 임대하고 잠근 방에는 뭐가 있을지가 궁금했다. 빨간 점이 뜬 사진을 눌러 보는 호기심과 비슷했다. 눌러 보지 않으면 친구 목록 상단에서 계속 보이는 게 문제였다. 확인되지 않은 무언가가 자꾸 시야에 걸리니까.
“그 방 안에 CCTV가 있으면 어떡해?”
“거기에 CCTV가 왜 있어?”
“귀중품을 둬서 달아 놨을 수도 있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럴듯하기도 했다. 주아는 그들에게 연락하기 전까지 생판 남에게 세를 주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소희는 자세를 고쳐 앉아 빨래를 각 잡고 개기 시작했다. 하지 못할 이유가 생기면 빨리 포기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연호가 웃으며 말했다. CCTV는 이래서 필요한가 봐.
그런데 CCTV가 정말 있을까? 다음 날에도 소희에게 이런 생각이 때때로 비집고 들어왔다. CCTV까지 들여서 관리해야 할 물건이라면 애초에 그 방에 두지도 않았을 텐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열어 보기엔 좀 께름칙했으므로 소희는 결국 현관의 간이 의자를 밟고 올라서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이 호기심에서 해방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드디어 주아에게 그 열쇠를 줘 버릴 수 있고, 저 방문은 다시 옆집 문이 될 거라고.
일주일에서 하루가 더 지나도 주아는 그들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소희가 보낸 카톡도 읽지 않았다. 소희는 연호와 이야기하다가 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거? 그냥 거기 놔둬! 내가 요즘 바빠서 거기까지 갈 시간이 없네.
어디에 있는지 수화기 너머가 시끄러웠다. 연호를 힐끗 본 소희는 충동적으로 말했다.
“주아야, 그러면 그 방 말이야, 문고리만 바꿔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