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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른 방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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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Nov 25. 2023

다른 방 6

“그럼 우리는 세대 창고에 사는 거야?”

연호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웃었다. 재미있는 농담을 발견한 표정으로. 소희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렇게 되나, 하고 얼버무렸다. 흐음. 연호는 고민하는 척 고개를 돌려 거실과 주방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산뜻하게 말했다.

“창고가 32평 아파트라면 누구든 살고 싶어 할걸.”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모든 세입자는 임대인의 남는 방, 남는 집에 사는 거였다. 안방과 서재도 있고 화장실도 두 개나 된다면 남는 집이든 창고든 무슨 상관이겠어. 소희는 혼자 생각했다. 연호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맞는 말을 해서 다행이라고. 소희를 바라보던 연호가 놀리듯이 말을 걸었다.

“거봐, 열어 보면 갖고 싶어질 거라고 했지.”

“난 자전거나 빈백 같은 거 필요 없어.”

“그 방이 갖고 싶어졌잖아.”

소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마셨다. 아까 전부터 목이 말랐다. 한 잔을 다 마시고도 갈증이 남아 있었지만 물병 뚜껑을 닫았다. 

그 이후로 사나흘 간 소희는 자주 자문했다. 나는 정말 그 방을 갖고 싶은가? 그들에게는 청년 주택에 살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공간이 있었다. 방이 하나 더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정작 다른 공간을 쓸 수 있다면 거기서 뭘 하면 좋을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 방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주아는 아직도 그 방을 잘 사용하고 있었다. 주아가 연락했을 때 소희는 사무실에서 B시 주무관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주무관은 B시에서 매년 말에 주최하는 지역 축제 홍보 이벤트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한 뒤 통화가 끝나기 전에 말했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사람이 올 거예요. 제가 출산 휴가에 들어가게 되어서요.

소희는 B시의 주무관이 임산부였다는 걸 전혀 몰랐다. 평일에 거의 매일 통화하는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지금까지 점점 불러 오는 배를 안고 출퇴근을 해 왔다고는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다. 축하한다는 인사에 주무관은 사무적으로 웃고는 구십 일 뒤에 봬요, 하고 끊었다. 구십 일이구나, 출산 휴가가. 중얼거리던 소희는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발견했다.

소희야 지금 집에 있어?

뭐라고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뭐 좀 가지러 가려고!

소희는 얼떨결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쯤 가고 나서야,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빈집에 올 리는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끊을까 망설이는 순간 주아가 전화를 받았다. 주아는 실내 자전거를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해체부터 운반까지 그 친구가 알아서 할 테니 문만 열어 주면 된다고. 어어, 그래그래, 하고 통화를 끊은 뒤 소희는 이것이 주아가 이 방을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이틀 뒤 토요일 오후에 주아는 짙은 금발의 백인 남자를 데리고 왔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라는 그 남자는 피부가 그을려 있었고 덩치가 컸다. 그가 소희와 연호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하이, 하왈 유 두잉, 하자 연호는 반사적으로 목례를 건넸다. 주아가 호탕하게 웃었고 소희도 따라 웃었다.

소희는 거실장에서 긴 막대 열쇠를 가져와 그 방을 열었다. 남자가 실내 자전거를 분해하고 해체하는 동안 주아는 주방에서 물을 마셨다. 연호가 물병을 냉장고에 넣으며 주아에게 물었다.

“남자 친구야?”

“뭐? 아니야.”

주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웃었다. 그리고 싱크대에 기대서서 식탁 건너편의 소희와 연호를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자신과는 많은 게 다른, 미지의 존재를 보는 눈이었다.

“너희는 왜 결혼 안 해?”

그 질문조차 인터뷰 같았다. 소희는 자신을 보는 연호의 시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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