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가 눈을 크게 떴다. 문고리? 되묻는 주아에게 소희는 찬찬히 설명했다.
“방 문고리를 다 바꿨는데 그 방만 못 바꿔서. 별거 아니지만 거기 하나만 다르니까 거슬리더라고.”
-그래, 상관없지! 나갈 때 원상 복구만 하면 돼!
주아 근처의 음악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목소리를 높이는 주아를 따라 그래! 고마워! 소리 질러 대답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러자 거실이 유난히 적적하게 느껴졌다. 상관없지. 소희는 주아의 말을 되뇌었다. 그건 그 방에 귀중품이나 범법과 일탈의 증거물이 있는 것도, 범죄 현장이 은폐된 것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구나 볼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는 방. 연호가 말했다.
“문고리는 네 개만 샀잖아.”
“하나 더 사면 되지.”
소희는 바로 문고리를 주문했다. 두 번 결제한 배송비는 문고리 하나의 값과 비슷했다.
이틀 뒤 연호가 퇴근하면서 손바닥만 한 택배 상자를 들고 왔다. 소희는 현관에서 간이 의자를 딛고 올라서서 신발장 맨 위 칸의 열쇠를 꺼냈다. 연호는 왜인지 긴장되는 얼굴로 택배 상자를 뜯었지만 소희는 주아가 상관없지! 했을 때부터 방 안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잠긴 문을 열쇠로 열었을 때는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방 안의 물건은 딱 세 가지였다. 실내 자전거, 진녹색 빈백과 큼직한 전신 거울.
“진짜 그냥 물건들이네.”
뒤에서 연호가 김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는 홀린 듯이 안으로 들어가 붙박이장까지 열어보았다. 유행이 지난 명품 가방과 코트가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여기는 주아의 창고였구나. 펜트리나, 다용도실 같은. 버리긴 애매한데 시야에서는 치워 두고 싶은 물건을 보관하는. 소희는 생각하다 말을 꺼냈다.
“주아는 여기보다 훨씬 넓은 집에서 살잖아. 혼자.”
“그래? 나는 잘 모르지.”
“거기도 공간은 많을 텐데 왜 굳이 이 방에 뒀을까?”
“아무리 넓은 집이어도 집 안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두고 싶을 수도 있지. 왜, 요즘에는 세대 창고도 있잖아.”
연호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안쪽에서 문 잠금쇠를 누르고 나온 뒤 문을 닫았다. 연호는 택배 박스를 정리하고 소희는 신발장 맨 위 칸에 원형 문고리 하나를 더 넣어 두었다. 이 년 반을 함께 살면서 그들은 눈앞의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즉시 나눠서 해 왔다. 청년 주택에 살던 때부터 몸으로 익혀 온, 둘이 살기 비좁은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주아에게는 이런 게 방법이었던 모양이다. 몇 번 타다가 귀찮아진 실내 자전거,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으나 취향에 맞지 않는 빈백과 거울을 세를 주는 집에 두는 것. 그냥 버리지. 돈도 많은데 다시 사면 되잖아. 소희는 연호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연호가 뭐라고 대답할지 알 것 같아서였다. 버리지 않고 싶을 수도 있지. 사실 소희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그럴 수 있다면 그랬을 테니까. 버리기도 애매하고 갖고 있기도 싫은 물건을 남는 집에 두고, 세입자에게 이 방은 쓸 수 없다고 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세입자 역할을 맡고 있는 건 소희와 연호였다. 소희는 문고리를 통일하면 그 방도 이 집에 완전히 속하는 느낌이 날 줄 알았다. 긴 막대 열쇠 하나로 모두 열리는, 한 집의 세 방 중 하나로. 그런데 왜 이 집이 그 방에 딸린 것처럼 느껴질까? 그 방뿐만이 아니라 이 집 자체가 주아의 창고인 것처럼. 그냥 창고가 아니라, 뭐라더라. 소희는 연호가 언급한 그 고유명사를 기억해 냈다.
그들은 이 집에 오기 전 집을 보러 다닐 때 세대 창고라는 걸 처음 보았다. 예산이 안 된다는데도 구경만 하라는 공인중개사를 따라간 신축 아파트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인중개사는 그들을 지하 주차장에 데려갔다. 주차장 안쪽에 사람 키만 한 사물함들이 늘어서 있었다. 캠핑 용품이나 계절 이불 따위의 부피가 크고 사용 빈도가 적은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공인중개사가 설명했다. 넓은 집을 더 넓게 쓰는 거죠. 그런 말도 했다. 칸마다 달린 문에는 호수가 적혀 있었고 그런 칸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마치 아파트 단지를 줄여 놓은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문을 열면 텐트와 낚싯대 옆에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