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직 생각 없어.”
“결혼하면 혜택도 많은데, 왜.”
“너도 안 하면서.”
“난 할 사람이 없잖아.”
주아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슬픈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니까 복 받은 줄 알고 결혼해. 너희 둘 다 서로에게 충분히 좋은 사람들이야. 아이 가질 생각하면 더 빨리해야 하고.”
“아이 방도 없는 걸.”
잠시 정적이 흘렀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소희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주아는 음, 그렇구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아이 낳으면 저 방 써.”
소희는 멍한 얼굴로 주아를 봤다.
“아이가 생기면 방이 세 개는 되어야지, 당연히.”
주아는 그렇게 말했다. 이후 분해한 실내 자전거를 커다란 가방에 챙긴 남자와 집을 나섰다.
그날부터 연호가 결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혼부부 혜택이 정말 많긴 하더라, 라는 식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툭 던지는 말투였다. 어느 사무관님 딸이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정말 귀엽더라, 힘들긴 해도 그렇게 행복하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틈틈이 했다. 그렇구나. 소희는 모든 대답을 그렇구나로 통일했다. 이럴 때는 먼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별생각 없이 한 말인데 네가 예민한 거 같아,를 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평소에는 소희가 자주 졌다. 원체 연호가 생각이 많지 않고 무던한 편이어서였다. 둘 사이에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를 자주 말하는 건 연호 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다더라를 연호가 맡았고 그렇구나를 소희가 맡았다. 그렇다더라와 그렇구나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불리한 건 그렇다더라였다. 그렇구나는 계속 그렇구나여도 되지만 그렇다더라는 매번 새로운 그렇다더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동이 난 그렇다더라가 링 위에 흰 수건을 던졌다. 십이월의 첫날이었다.
“내 얘기 듣고 있는 거야?”
“네 얘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얘기잖아.”
“우리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소희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돌아서서 거실과 주방의 경계에 서 있는 연호를 보았다. 주아가 이쯤에 서서 그들을 보았을까? 이 정도 거리였나. 주방은 어둡고 거실은 밝아서 연호가 너무 환하게 보였다.
“생각해 보겠다며.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했잖아.”
연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삼 년 동안 연호는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9급에서 8급으로 승진했다. 사오 년 안에는 7급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균치가 그렇다고.
“나는 아직 확실하지가 않아.”
“우리 사이가?”
“그런 말이 아니야.”
소희가 부정했지만 연호는 이미 울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안방과 서재 쪽을 보며 머뭇거리다 돌아섰다. 어디든 들어가 방문을 닫고 싶은데 마땅한 방이 없는 모양이었다. 서재로 들어간 연호는 외투를 들고 나와서 집을 나가 버렸다.
*
연호가 우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건 삼 년 전 B급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였다. 소희는 그 자리가 연호의 첫 월급날을 축하하는 자리인 줄 알았다. 9급 공무원의 월급으로 무리한다 싶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철밥통의 밥을 먹게 되어서 든든한가 보다, 그렇게 여겼다.
코스 요리의 마지막 순서에서 차와 디저트가 나온 뒤 연호가 자주색 벨벳 케이스를 내밀었을 때 소희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결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야깃거리일 뿐이었다. 잠깐 상상해 보면 즐거운, 당장 할 일이 아니어서 편안한, 재미있게 대화하고 바로 잊어도 되는 이야기. 소희는 케이스를 열어 보지도 않고 돌려주었다.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잘 알았다. 처음에는 반짝이겠지만 몇 달만 지나도 귀찮고 번거롭고 짐이 될 모든 생활. 그것만은 열어 보고 싶지 않았다. 자라며 봐 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