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소희는 구십 일간의 휴가를 보내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유원지가 아름다운 A시와 지역 축제가 풍성한 B시에 가 볼 일이 없듯이. 전철과 시외버스를 갈아타서 가도 사람은 북적거리고 길거리 음식은 값비쌀 것이다. 혹은 뜻밖의 좋은 날을 보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위해서 주말 하루를 투자할 수는 없었다. 삼 개월 휴가 때문에 인생을 바꿀 수는 없는 것처럼. 소희가 제대로 아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 외에는 많은 게 불확실했다. 여기서 대리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의 평균치는 얼마일지, 그 시간도 엄마가 되면 의미가 없어지는지.
이런 것들을 연호에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럼 아이를 안 가지면 되잖아, 그렇게 합의하려 할 거고, 그러면 소희는 그게 다가 아니야, 라고 대답해야 할 테니까. 결혼을 하는 순간 언제든 사직서를 낼 수 있는 ‘잠재적 애엄마’가 되는 소기업에 대해서, 그리고 사실은 자신도 옆자리 주임을 그렇게 봤던 일에 대해 말하는 대신 소희는 정말 결혼을 원하면 헤어지자고 했다. 연호는 그때도 외투를 챙겨 입고 집에서 나가서 반나절 뒤에 돌아왔다. 그들은 다음 날부터 부동산에 찾아가 집을 보러 다녔다.
왜 자신을 떠나지 않았는지 물었을 때 연호는 소희가 했던 말을 돌려주었다. 나도 몰라. 그건 소희의 나도 몰라와는 달랐다. 연호는 답을 알고 있었고 그 답은 당분간은 연호만의 것이었다. 소희는 언젠가는 그 답을 듣게 될 것 같다고 막연히 짐작해 왔다. 마침내 결혼할 때, 혹은 마침내 이별할 때.
*
그때와 달리 연호는 삼십 분 만에 돌아왔다. 눈가와 귓가, 뺨까지 모두 빨갰다. 소희는 미리 컵에 따라 놓았던 우유를 데워서 건넸다. 거실에서 연호가 우유를 마시는 동안 소희는 그들의 맞은편에 있는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이젤에 거치된 검은 화면에 그들이 비쳤다. 주변의 조명과 몰딩, 어두운 벽지까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주인이 한 땀 한 땀 그려 놓은, 어떻게 되더라도 원상 복구의 의무가 있는 그림. 그들은 거기 안에 있었다. 정적 속에서 소희가 연호의 손을 잡았다.
“우리 재밌는 거 할까?”
연호는 눈썹을 작게 들어 올렸다. 화는 안 풀렸지만 들어는 보겠다는 제스처였다. 소희는 연호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주아가 저 방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는 안 했잖아. 계약서에도 그런 말은 없어.”
맞닿은 어깨에서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 상황에 그 얘기를 꺼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던져진 화두에 잠시 고민하던 연호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은 안 했지만… 우리한테 방 두 개면 되냐고 물어봤잖아. 우린 그렇다고 했어. 그때 우리는 저 방을 안 쓰는 데 동의한 거야.”
“그땐 그랬지. 그땐 방 두 개면 됐어.”
소희는 연호처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방 두 개가 충분하지 않아.”
삼십 분 만에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연호가 눈을 들어 소희와 시선을 맞추었다. 소희는 연호가 다시 반박할 줄 알았지만 연호는 그러지 않았다. 소희는 연호와 눈을 맞추며 한 번 더 말했다.
“우린 다른 게 필요해. 안 그래?”
소희는 소리 내서 말한 뒤에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직 삶의 대부분이 불확실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말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그것만은 진실이었다. 그들에게는 다른 게 필요하다는 것. 소희는 현관의 신발장이 아닌 거실장으로 걸어갔다. 간이 의자를 놓고 올라서지 않고 허리만 살짝 굽혀 서랍을 열어 막대 열쇠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