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와서 불을 켠 뒤에 그들은 그대로 서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고 제의한 쪽은 소희였지만 소희 역시 이 방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연호가 나가서 무선 청소기를 가져왔다.
“일단 청소부터 하자.”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방이라 쌓인 먼지가 육안으로도 보였다. 연호는 청소기를 돌리고 소희는 창문을 열어 빈백의 먼지를 털었다. 청소를 끝내고 빈백과 거울을 구석으로 몰아 둔 뒤에 그들은 깨끗해진 바닥 한가운데 누웠다.
“애 낳으면 이 방 쓰라고 했는데.”
연호가 지레 찔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소희는 코웃음을 쳤다.
“선녀와 나무꾼이야? 애 낳으면 주게.”
그 동화에서도 선녀는 떠나고 나무꾼은 버려졌다. 소희는 그때부터 이 방에 어떻게든 들어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애 낳으면 이 방을 쓰게 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는, 이 사회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 출생률 저하 문제의 원인인 채로 이 방에 들어와 눕고 싶었다.
“애초에 선녀의 옷이긴 했지.”
연호가 혼잣말했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소희에게 덧붙였다.
“나무꾼이 숨긴 옷 말이야. 원래 선녀의 옷이었다고.”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방도 계약 기간에는 그들의 방이었다. 계약서에 그들이 이 집 전체를 빌린 거로 되어 있으니까. 이건 우리 방이고, 나무꾼이 우리 방을 숨긴 거야. 소희는 그렇게 되뇌었다. 그리고 연호에게 질문을 건넸다.
“넌 방이 하나 더 생긴다면 무슨 방으로 만들고 싶어?”
“어, 글쎄. 갑자기 물어보니까 생각이 안 나네. 영화 보는 방? 그런데 우리는 어차피 영화 잘 안 보고. 그냥 옷방이랑 서재를 분리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아.”
고민하며 대답하는 연호 옆에서 소희는 두 달 전을 떠올렸다. 문고리가 잠겨 안방에 갇혔던 날 업자가 오기까지 소희는 오랜만에 편안함을 느꼈다. 문 너머에 보호자가 있고 내 공간을 누구도 오가지 않는 상태. 그때부터 방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같이 자는 안방, 같이 쓰는 옷방 겸 서재가 아니라, 용도도 없고 이름도 없이 두 시간만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이.
“그런데 그냥 누워 있기만 해도 괜찮네.”
정적 속에서 연호가 중얼거렸다. 소희는 고개를 돌려 연호를 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빈티지 소품도 없고 우리 짐도 없는 방은 여기뿐이잖아.”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호가 몸을 일으켜 불을 끄고 다시 소희의 옆에 누웠다. 두 사람은 침묵 속에서 어둑한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만약 이 방을 창고로 쓸 수 있다면, 소희는 생각했다. 가장 먼저 이 방에 둘 것은 제대로 듣지 못한 연호의 대답이라고. 그건 정말로 결혼식장에서 듣게 될 수도 있었다. 혹은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소희는 아주 로맨틱할 게 분명한 그 대답을 계속 모르고 싶었다. 적어도 이 집에 있는 동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