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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경 Dec 24. 2023

230926) 아테네 4일

플라카지구


아테네의 두 번째 숙소에서 맞는 아침.

이게 내 방이다. 캐리어를 펼치면 발 디딜 곳이 없는 작은 방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도아의 방과 툰의 방.






내가 자는 사이 도아와 툰이 나가서 아침거리를 사왔다. 그들의 체력을 돈 주고 사고 싶다.






이러한… 베이커리였다고 한다.

나도 일찍 깼다면 저것들을 고를 수 있었는데….






앞에 캠코더를 켜놓고 갬성 있게 식탁을 차리는데 머랭을 꺼내던 도아가 그대로 부수면서 갬성도 부쉈다. 이런 게 캠코더 찍는 맛이지. 


손만 대도 파스스 부서지는 머랭은 그만큼 입안에서 녹아들었다. 사약처럼 보이는 초콜릿 푸딩도.






아침을 먹고 나가기 전까지 각자 쉬는 시간은 늘 마음이 편했다. 같은 곳에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그 방식이 내가 원하는 공동체의 형태였다.





UFO 치고 구름 같네.





긴 바지를 입었다가 밖에 나가 보고 반바지로 갈아입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저 문을 열고 타는 유럽의 흔한 방식.

이곳이 유일하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본 숙소였다. 

이후에 나올 하니아의 숙소는 여기의 다섯 배는 될 듯한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나 탈 수는 없었다.






아테네의 마지막 날은 두 번째 모노스 데이였다. 점심을 먹고 헤어진 뒤 저녁을 먹을 때 만나기로 했다.





브런치의 [단아함] 보정에 꽂혔다.





Aspro Alogo


아테네에서 유명한 곳 중 하나인 노천 식당.

평점 높은 곳답게 허름한 가게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우리도 몇 분쯤 대기하다가 들어갔다.





비좁은 곳에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주문과 요청이 밀려들었고 사장님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구글 리뷰 중에 서빙을 도와주고 싶을 정도였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그래도 그는 시종일관 친절했다. 우리가 손을 들면 꼭 저스트 투 미닛, 하고 양해를 구했다. 진짜 2분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지중해 사람들 느린 데는 적응이 되어서 괜찮았다. 그냥 넋을 놓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온다.





그래도 음식이 맛있어서 용서했다. 우리 모두 그동안 먹은 문어 중에 여기가 제일 맛있었다. 텔레토비 밥 같은 저것은 가지 샐러드인데 시큼해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툰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와 도아는 괜찮게 먹었다. 짭짤한 해산물과 고기를 먹고 이걸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졌다.





구운 고기를 꼬치에 꿰어서 빵과 함께 먹는 수블라키. 감자튀김과 고기와 빵의 조합도 맛없을 수 없다.

여긴 단백질 바 같은 것과 주스를 후식으로 주는데… 이후에 일어날 일 때문에 아테네에서 찍은 사진은 남은 게 많지 않다. 여기 나온 것들은 거의 도아가 찍은 사진이거나 내가 친구들에게 보내놓은 것들뿐이다.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리고 계산을 다 마치고 나가려고 하면 인원 수대로 차가운 생수를 건네준다. 유럽에서는 공짜로 물을 주는 식당이 흔치 않아서 너무 고맙지만… 식사를 할 때 주시면 안 되나요…?




Le Greche


식후(젤라)또.

우리는 모노스에도 젤라또까지는 같이 먹고 헤어졌다. 다른 가지 맛도 먹어봐야 하니까.


이날 내 선택은 헤이즐넛. 내 아이스크림은 늘 저 색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초콜릿, 헤이즐넛, 카라멜, 쿠앤크, 뭐 그런. 반대로 도아의 아이스크림은 한결같이 알록달록 과일 쪽이었다.





여기서부터 잠시 안녕.





CHOUREAL - Choux & Profiterole


모노스에는 동행인들을 데려갈 수 없는 곳을 가는 게 인지상정. 소금 인간들 사이에서 서러웠던 설탕 인간은 미리 찾아놨던 디저트 카페로 직행해서 당 충전을 했다. 슈 위에 슈크림 위에 카라멜 위에 초콜릿을 얹은… 소금 인간들은 경악할 이 디저트의 사진은 내 Z플립2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이렇게 쓰면 내 지인들은 또 젤라또는 당이 아니고 뭐냐 할 게 뻔하다. 그런데 차가우면 단맛이 덜 느껴진다는 건 객관적 사실이란 말이야.


이날의 수치플 1.

메뉴판을 보고 있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메뉴 고르는 걸 도와주다가 설명을 보충하기 위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알바생을 따라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걸어가다가 문득 뒤돌아본 알바생이 바로 뒤에 있는 나를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놀라며 말했다.

아니, 이 쇼케이스 밖에서 따라오라고!

카운터 옆에 쇼케이스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이 쇼케이스를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알바생의 그림자처럼 뒤에 붙어가고 있었던 나….

순간 놀랐던 알바생은 한참이나 웃었다. 당신의 일상에 작은, 아니 큰 웃음을 선사했다면 그걸로 되었다…. 







몸은 쉬었으니 마음도 쉬러 성당으로.





평온한 무념무상 타임. 여행하다 보면 꼭 필요한 시간.






성당 옆 작은 집.






왜 이렇게 하늘을 합성한 것처럼 나왔지.





도아의 이번 여행 미션이 [납작복숭아 먹어보기]였다면 나의 미션은 [에코백 사기]였다. 마침 에코백이 하나도 없기도 했고, 자주 쓰는 물건일수록 여행지를 추억하기 쉬우니까. 그런데 그리스에서 인기 있는 상징이라는 이 눈알이 어디에나 있어서… 내 미션은 [눈알 없는 에코백 찾기]가 되어버렸다. 악귀를 쫓아주는 눈알이라는데 나를 쫓아내고 있다고.






올리브 오일 가게에 들어가서는 여기서 제일 좋은 걸 달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줄 거냐고 묻는 직원에게 대답했다.

"나의 교수님께 드릴 거야."

직원은 완전히 이해했다는 얼굴로 오케이, 팔로 미, 하고 비장하게 나를 데려갔다. 이게 가장 좋은 거야, 하고 자신 있게 내밀기에 나도 하나 사봤다. 한국 와서 먹어보고는 후회했다. 왜 제일 작은 걸로 샀을까? 두 배 더 큰 것도 있었는데….






히드리아누스 개선문에 걸린 달. 이 앞에서 동행인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이 근처를 산책하다가 다리에 한계가 왔고… 때마침 동행인들과 약속한 시간이 되어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으로 갔다.




Victory


기로스가 유명한 곳인데…






누가 여기서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먹어요!

도아가 먹는다. 한식은 참아도 파스타는 못 참는 파스타 광인.


그런데 뜻밖에도 맛있었다. 내 입맛에 간이 좀 셌을 뿐… 내 입맛에 셌다는 건 소금 인간들에게 딱이었다는 뜻이다. '최고의 볼로네제'가 이날 도아의 키워드 중 하나였다.





물론 기로스도 맛있었다.


이곳의 사장님은 대단한 외향형이었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과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는 결국 내향형만 세 명 있는 테이블까지 진출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벌겋게 익은 팔과 우리의 허여멀건한 팔을 비교하며 너희 정말 하얗다! 는 말로 대뜸 말문을 트고는 우리의 이름을 하나씩 물어봤다. 


그러더니 한 잔씩들 하라며 투명한 술을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딱 봐도 도수가 높아보여서 셋 다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그 술을 받자마자 이쪽까지 독한 냄새가 훅 끼쳐와서 우리에겐 한 잔도 치사량이었겠다고 속닥거렸다.






술 대신 받은 생크림을 얹은 초콜릿 아이스크림.

그리스는 모든 식당에서 고유의 디저트를 내어줘서, 매번 다른 디저트를 맛보는 재미도 있었다.


식당을 나설 때 사장님이 배웅을 나왔다. 셋 중에서 가장 쥐콩만 한 나를 베이비라고 부르면서 폭 안아주었다. 내가 몇 살인지 알면 기절하실 텐데…. 사장님의 동심을 위해 나이는 밝히지 않았다. 사장님은 마지막까지 k-하트를 보여주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고 나도 하트를 되돌려주며 내 안의 외향성을 모두 소진했다.





이게 내가 동행인들 선물로 산 엽서. 세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눠가졌다.


식당에서 줬는데 거기서 찍으려 했더니 도아가 단호하게 안 돼, 하고 가방에 넣었다. 하얀 이불 시트 위에서 찍어야해. 도아는 진정 프로다.





이날의 수치플 2.

툰이 물을 마시겠다고 생수를 가져왔다가 왜 뚜껑이 열려 있냐고 의아해했다. 내가 전날밤에 마셨다고 했더니 이게 뭘 마신 거냐고 어이없어하며 새 생수를 가져왔다. 아니 진짜 조금 마실 수도 있는 거지 새 것과 다른 게 뭐냐고 굳이 비교해서 보여주는 저 집요함 뭐지? 그리고 이게 웃기다고 찍고 있는 애는 또 뭐지? 한 명은 이게 뭐가 달라!!! 하고 있고 한 명은 다르잖아!!!! 이게 더 적잖아!!!! 하고 있고 한 명은 이걸 찍고 있는 광란의 현장.





그 혼파망이 지나간 아테네의 마지막 밤.

너는 나를, 나는 너를 찍어주며 굿나잇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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